옛 직장 동료의 퇴직후 화려한 실험정신은 성공입니다 ^^
언제나 차분했던 작가님의 재직시절을 떠 올려본다. 누구에게 이유 없이 한 방 걷어 차여도 그저 미소 지을 뿐, 별다른 반격 의사를 내 비치기는커녕, 하이킥 한 그사람에게 무슨 이유가 있을 것이라며 기꺼이 포용하려는 종교인이나 한 집안의 맏이 같았던 작가님. 몇 년 전 작가님이 퇴직했다는 소리를 풍문에 들었다. 긴긴 세월 잘 견디며 유종의 미를 거둔 노고에 인사치레라도 할까 싶어 그의 카톡을 열었다. 뜻밖에 그 속에는 내 눈길을 끄는 예사롭지 않은 다양한 이미지들이 현재 작가님의 동정을 보여 주고 있는 것 같았다. 어느 부서보다 바쁘게 돌아가는 기자실 근무 환경임에도 불구하고, 예술 활동까지 했다니. 평소 작가님의 처신과 시간을 허투루 보내지 않는 부지런함으로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란 생각이었다. 존경의 마음이 어찌 아니 생길 수 있었겠는가. 격한 감동을 받은 나머지 나의 작고 보잘 것 없는 눈매무새는 메스 도움 하나 받지 않고도 받은 것이나 다름 없는 요즘 소통상담가로 대세인 김창옥님의 눈망울로 변신하는 행운을 거머쥐었다. 순간적이긴 했지만. 대~~~~박. ^^
이런 점에서 다분히 작가님의 퇴직후 일상은 인적 드문 어느 조용한 공간에서 시간 나는대로 마음 내키는대로 수행자가 수행 삼매경에 빠지듯, 작가님도 그림 삼매경에 빠져 있을 줄로 알았다. 작가님의 자녀 결혼식에서 잠깐 얼굴을 본 후 훌쩍 1년 이상의 세월이 흐른 시점이었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려니 생각하고 있던 차, 작가님으로부터 “생존보고”라는 괴문자?를 받았다. 그 순간 오지 탐험가 한비야님이 떠 올랐다. 혹시 그녀 처럼 아프리카 오지에 갔다가 위험한 상황에서 구사일생했다는 이야기인가 싶어 고개가 갸우뚱 하면서 순간 걱정이 되었다. 서둘러 생존보고 내용을 더블 클릭하고서야 낭보임을 알고 미소 짓게 되었다. 무소식이 희소식이었던 것이다. 생활 속에서 체득한 우리 조상들의 지혜로운 언어 유희는 후손들의 삶 속에서 필요할 때 언제나 짠하고 나타나 의미 전달에 강력한 힘을 실어준다. 이런 조상들의 지혜에 의하면 무소식은 희소식과 다르지 않은 동의어였던 것이다. 신우선 작가님의 생존보고 속에 담긴 또 다른 의미는 작가님이 삶에서 이래 저래 엮였던 여러 인연들과 의도적으로 잠시 침묵하고 소원했던 1년이었음을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 1년간 시쳇말로 잠수 타고 은거만 했던 것이 아니라 세상에 오롯이 존재할 하나의 보물을 탄생시키기 위해 왕성한 물밑 집필 활동을 했던 것이다.
생존 보고서 내용은 2023년도 후반, 작가님의 단짝 친구들과 35일의 여정으로 유럽 여행을 다녀온 이야기였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이지만 가시적인 결과물까지 만들어 내는 것까지는 흔하지 않은 일이다. 작가님은 여행 당시 눈에 담았던 생생한 모습 그대로의 기억들을 한 순간도 놓치지 않았던 것 같았다. 즐기는 눈요기에만 그치지 않고 타고난 그리기 재능에 각고의 노력까지 더한 끝에 『버스타고 산티아고』 라는 소중한 책이 존재가 되어 세상에 나온 것이다.
생존보고 소식을 접하고 바로 책 주문을 했다. 몇 일 후 내 손에 쥐어진 책표지에는 카톡에서 보았던 눈에 익은 그림 기법의 이미지가 역시 나의 시선을 사로 잡았다. 책표지만으로도 누구나 선 듯 책에 손길이 가지 않을까 싶었다. 겉표지부터가 여느 책과 확연히 달랐기에. 글에 그림이 보태진 책을 가끔 만나긴 하지만 작가님은 대부분 두 분이다. 그러니 책표지에는 당연히 두 분 작가의 이름이 나란히 오른다. 이와 달리 『버스타고 산티아고』 의 표지에는 글과 그림의 저자가 한 분이었다. 1타 쌍피. 수입 더블. 여기서 잠깐, 작가님은 남들이 하나도 갖기 어려운 재능을 둘이나 가진 욕심쟁이. 나는 한 개인이 태생적으로 부여받은 재능의 불공평성을 개그 차원에서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작가님 자신 조차도 모르게 쌓은 선업을 강조하려는 것이다. 전생에 좋은 일 많이 한 결과로 재능을 받은 당연한 결과를 말하려는 것이다. 너무 종교적으로 나갔나? 어떤 종교든 좋은 일을 하면 좋은 결과로 보답 받을 수 있다고 가르치는 점에서 대동소이하니 별 문제는 없을 듯.
많은 사람들은 이성상으로 외모보다 성격을 말한다. 전혀 틀린 말은 아니지만 대체로 틀렸다고 할 수 있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은 경우가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물론 예외는 어디에나 있다. 그래서 겉모양이 중요하지 않다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거짓말로 단정 지어도 무방할 것이다. 맞을 확률 99.9%일테니까. 이런 점에서 나는 작가님이 그림이라는 무기와 글이 조합된 책을 펴낸 점을 높이 평가하고 싶다.
나는 작가님이 자신의 관리에 작은 소홀함도 없는 것으로 안다. 평소 보여준 언행으로 충분히 확신할 수 있다. 그런 성향의 소유자인 만큼 자신의 자식에 비견되는 이 번 책에서 작가님은 완벽에 가까운 절제미로 책의 격조를 한층 높였다고 생각한다. 책 속의 글과 그림은 환상의 조합이 되어 한 권의 빛나는 여행 에세이로 탄생한 것이리라.
아무리 훌륭한 책도 분량이 너무 많거나 길면 읽다가 지친다. 그나마 글 내용과 어울리는 그림이 동거하고 있다면 다소 기울기가 상쇄되기는 하겠지만. 만연체에 그림조차 없는 삭막한 책이란 어휴! 생각하기 싫다. 이런 책이 누구의 어떤 책이든지 말이다. 한 마디로 너무 긴 글이나 책은 학문용도가 아닌 이상 일반 독자들에게 외면 받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래서 젊은 사람들의 전유물인 SNS에서 숏츠가 대세인가! 숏츠가 요즘 사람들에게 대세라 하더라도 숏츠의 단점도 있는 만큼 옹호하려는 마음은 추호도 없다. 만연체가 독자로부터 외면 받을 가능성이 있는 것은 글쓴이의 재능 문제라기 보다 인간의 천성이 지루한 것을 싫어하는 동물이라는 것에 더 주된 원인이 있지 싶다. 이런 점에서도 신우선 작가님의 버스타고 산티아고라는 책은 탁월했다.
나는 독자에게 관심 받을 무기로 둘을 선택하라고 한다면 재미와 숏츠를 선택하지 싶다. 총칼이 부딪치는 전쟁터이든 연필끼리 부딪치는 출판 전쟁터이든 성능 좋은 무기는 반드시 필요하니까. 결과를 빨리 얻으려는 숏츠 애호자와 마냥 웃고 즐기려는 재미 선호자에게는 숏츠와 재미이외 무슨 답이 필요하겠는가. 하지만 이 무기를 손에 쥐는 일은 참 쉽지 않은 과제다. 그런데 작가님의 『버스타고 산티아고』에는 이 두 마리 토끼가 노닐고 있었다.
작가님에게 이런 의미가 내포된 뜻으로 기대된다고 했더니, 한사코 말로 말사래를 쳤다. 내가 읽고 느낀 바 작가님의 말사래는 겸손의 표시였다. 여행 에세이답게 부담 없는 가벼움으로 무거운 기색은 어디에도 찾을 수 없었다. 세 명의 친구가 낯선 이국 땅에서 겪은 발길, 손길, 눈길에 따른 좌충우돌의 재미가 소소하고도 재미있게 표현되어 있었다. 잘 쓴 책은 물 흐르듯 페이지가 넘어 가는 법이다. 다소 느린 독서 습관을 가진 내가 『버스타고 산티아고』를 손에 쥔 후 책갈피 한 번도 끼우지 않고 독파한 것이다.
작가님은 책에서 40여년간의 직장생활도 만족한다고 했지만, 한편 그 동안 잠재된 글쓰기와 그리기 재능이 의도치는 않게 눌려져 있었던 만큼 아쉬워할 법도 하다. 그러나 얼마나 다행인가. 태생적으로 주어진 재능의 존재여부 조차 모르고 살아가는 사람이 부지기수인데. 작가님은 이래 저래 복 받은 사람이다.
이제 작가님은 인생 2막을 알리는 북과 종소리를 온누리에 울렸다. 즐기는 일과 앞을 향해 나아가는 일만 남았다. 그 나이에 무슨이라고 태클 거는 사람도 있을 수 있으나, 그 사람은 아마도 작가님을 무진장 부러워 할 것이다. 작가님의 인생 2막에서 대주제는 글쓰기와 그림이니 만큼 제대로 재능 가진 임자에게 걸려든 셈이다. 그래서 작가님은 전반부보다 후반부 인생이 더욱 주목 받을 것이다. 권력에 비해 예술의 힘은 크고 대단하다. 옛 직장 동료가 잉태한 처녀 작품이라 입에 꿀 바르고 하는 아첨의 소리가 아니다. 내가 이 나이에 무슨 영광을 볼 것이라고 없는 말을 하겠는가.
『버스타고 산티아고』는 강은경 작가의 『아이슬란드가 아니었다면』과 우리가 익히 잘 아는 방송인 손미나 작가의 『여행이 아니면 알 수 없는 것들』과 같은 베스트셀러와 견주어도 전혀 손색이 없는 작품이라 생각한다. 해외여행 에세이란 여행자 자국의 전통, 역사, 관습, 언어 등 많은 것들이 다를 뿐 아니라, 밟아 보지 않은 미지의 땅에서 일어난 이야기를 표현하는 것인 만큼, 때론 독자가 글만으로 의미 파악을 하기 어려운 경우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이때 이해를 위한 버퍼링이 길어진다면 독자는 자신도 모르게 책장을 건성으로 넘기거나 책표지를 아예 덮어 버리는 극단의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이때 해결사가 필요한 것이다. 그 해결사는 다름 아닌 이미지(그림)다. 글과 그림이 알맞게 잘 버무러진 환상의 콜라보 작품 신우선 작가님의 『버스타고 산티아고』는 그래서 날개 달고 훨훨 날라 다닐 일만 남았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