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코로나19가 한창 기승을 부리던 때 이야기다.
가을바람에 우수수 떨어진 낙엽이 갈 길을 잃고 이리저리 헤맨다. 사람들 발걸음에 밟힌 바싹 마른 낙엽은 으스러지는 소리로 울부짖는다. 고개 들어 하늘을 보노라면 낙엽 떨어진 그곳에는 화살대 같은 앙상한 가지만 덩그러하다. 사람 사는 세상도 건조한 모습으로 변해 가면서 습기 한점 찾기 어려울 정도로 메마르다. 과학기술의 발전에 힘입어 세상은 갈수록 살기 좋고 편리하다고 야단법석이지만, 사람과 사람 간의 정은 갈수록 메말라 정 쪼가리 한 닢조차 궁하다. 어느 때보다 사람 간 주고받는 단맛 나는 온정이 필요한 때다.
코로나 이전에는 자주 목욕탕에 들러 삶이라는 전투에서 쌓인 긴장한 육체와 사회관계 속에서 꼬이고 설킨 마음을 풀어주곤 했다. 삶의 테두리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도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몇 안 되는 방법 중 하나가 목욕이었다. 코로나는 이렇게 당연히 여기던 사람의 일상에 큰 타격을 주었다. 1주일에 못해도 한 번은 들리던 목욕탕이었는데 코로나19가 한창이던 그때는 목욕탕 가는 일이 화중지병이 되고 말았다.
2021년 2월 코로나에 첫 감염되고 완치 판정을 받은 후, 그해 3월 어느 날 마스크로 중무장하고 그렇게 가고 싶었던 목욕탕에 다녀왔다. 극락은 결코 서방 세계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만족하고 행복을 느끼면 그곳이 천상이고 극락이었다. 코로나 이전엔 마음만 내면 언제든지 갈 수 있던 곳이 목욕탕이었다. 그때는 목욕탕의 고마움을 알지 못했다. 산소나 햇빛의 고마움을 모르고 살았던 것처럼. 우리 주변에는 매사에 늘 감사한 마음을 가지며 살아야 하는 경우가 무수히 많다. 다만 모르거나 잊고 있을 뿐.
당시 코로나19는 끈질기게 인간의 멱살을 부여잡고 생떼를 어지간히도 부렸다. 나는 첫 코로나 감염 후 재감염을 감수하고서 얼떨결에 목욕탕에 다녀오긴 했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 또다시 목욕탕 행을 감행하려니 1차 감염 때 너무 고생한 생각이 불현듯 떠올라 선 뜻 용기가 나지 않았다. 두렵기도 했고 당시는 여름철이기도 하여 찬 바람이 옷깃을 스칠 즈음에나 가야겠다고 생각을 바꾸었다.
코로나는 여전한 가운데 어느 새 더위가 물러가니 입동이 왔다. 입동이 지난 아침과 저녁 기온은 사뭇 달랐다. 손톱 가장자리에는 꺼시렁이 일어나고 손등도 꺼칠해갔다. 이에 뒤질세라 발뒤꿈치도 가뭄에 쩍쩍 갈라진 논바닥같이 민망스러울 지경이었다. 갈라진 발뒤꿈치가 손바닥에 느껴지는 그 까칠함이 너무 싫다. 사정이 이러하니 잊고 있던 목욕탕이 그리웠다. 당시 코로나가 주춤하기는 했지만 여전히 무시하기는 시기상조였다. 언제까지 일상의 소소한 행복을 포기하고 살 수는 없었다. 늘 좋은 사람 이미지만 심어주면 사람도 바이러스도 바보 천치 취급한다. 만용인지 용기인지 목욕탕 행을 다시 결심했다. 재감염을 감수하고 행동에 나선 것이다.
코로나 여파인지 물가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오른다며 연일 매스컴은 경고 등을 울리지만 나는 그저 무덤덤했다. 백수의 행동반경 한계로 체감물가 체험 기회가 원천 봉쇄되었기 때문이다. 백수의 슬픈 특권이기도 하다. 오늘은 체감물가를 느껴보는 날이다. 목욕비가 코로나 이전보다 많이 인상된 것을 보고 물가의 드높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하지만 목욕비는 가성비 측면에서 불만의 대상은 아니지 싶다. 목욕탕에서 무료로 나눠주는 마스크를 형식적으로 착용하고 목욕탕에 입장했다. 평일이라 젊은이들은 시야에 잡히지 않았다. 탑골공원에만 어르신들이 모이는 곳인 줄 알았더니 목욕탕도 어르신들 놀이터였다. 연세 드신 어르신들이 삐거덕거리는 몸을 겨우 지탱하며 가까스로 움직이는 모습이 보였다. 이분들도 다른 놀이보다 부담이 덜하기에 목욕탕을 휴식처로 삼았으리라. 그러나 연세가 있는지라 미끄러질까 봐 걱정도 되었다. 목욕비 포함하여 택시비는 여전히 가성비 좋은 품목이다. 서민이 주로 이용하는 품목이니 당연히 그래야 하는 것 아닌가 싶다.
누구나 목욕탕에 가면 때를 밀든 피로를 풀든 나름의 목욕탕 이용 패턴이 있다. 나는 제일 먼저 샤워를 하고 사우나실에 입장하는 편이다. 모래시계 한 번 돌리는 시간만큼 사우나실 열기를 온몸으로 받아들인다. 눈을 감고 생각의 꼬리를 따라 다양한 번뇌 여행을 해본다. 사우나실에 아무도 없을 때는 서둘러 팔 굽혀 펴기도 하고 스쾃도 해 본다. 모래시계가 한 바퀴를 넘어 두 바퀴 째 돌면 맨손으로 사우나실 문을 잡기가 버거울 정도로 뜨겁다. 그래서 서둘러 나온다. 땀구멍이 완전히 개방되어 온몸엔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힌다. 사우나실에서 나와 샤워를 한 다음 39도에서 41도 사이 온탕에서 잠시 신선 흉내를 내 본다. 지그시 눈 감고 멍 때리면 영락없는 신선이다. 열탕에서 희끄무레하게 올라오는 수증기가 신선의 배경 역할을 한다. 10여 분 몸을 푹 불리고 나온다. 아직 사지가 멀쩡한지라 목욕탕 전용 세신사를 이용해 본 적은 없다. 앞으로도 이용하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 마음같이 될지는 모르겠다. 나이를 무슨 수로 거스를 것인가.
목욕탕 전체 규모에 비해 사람들이 많지 않아 때를 밀 수 있는 자리는 여유로웠다. 한적한 구석에 자리를 잡고 앉는다. 이미 퉁퉁 불대로 불은 때는 아무 저항 없이 미는 대로 밀린다. 발부터 몸 위쪽으로 올라가면서 야금야금 때를 정복한다. 때는 털의 결과 반대 방향에서 밀어야 잘 밀린다고 예전 어른들이 그랬다. 삶의 흔적인 때는 오랜만에 목욕탕 들린 티라도 내는 듯 국숫발처럼 굵고 긴 가락이 대팻밥 쏟아지듯 한다. 피부까지 벗겨질 기세다. 이 글을 보는 분이 식사시간 전후라면 죄송하다. 때도 밀었을 때 적당히 나와 줘야 미는 맛이 난다. 때 미는 맛을 느끼는 것도 중요하지만 오랜만의 목욕인지라 저축되어 있는 때가 너~무 많았다. 행여 옆 사람이 볼까 염려한 나머지 연신 샤워기로 굵고 긴 국수가락 같은 때의 흔적을 하수구로 흘려보낸다. 역부족이다. 에라 모르겠다. 보면 보라지, 자기들도 나 못지않을 것이란 생각에 남 눈치는 뒷전으로 감추었다. 이렇게 온몸 구석구석을 닦고 또 닦았다. 왼쪽 몸은 오른손으로 오른쪽 몸은 왼손으로 번갈아 닦았다.
그런데 딱 한 군데 만은 좌우 어느 손으로도 때를 닦을 수 없었다. 등 뒤쪽으로 양팔 교차가 되지 않는 나 같이 뻣뻣한 사람은 등판 때는 닦을 재간이 없다. 등판 때를 밀어야만 완성된 목욕이라 할 수 있다.
옛날 옛적 등판 때밀이 품앗이 시절이 그리웠다. 그 언제부터인가 등을 밀지 못한 아쉬움을 가진 채 목욕탕 문을 나서야만 했다. 나만 그런 것일까. 아니다. 많은 사람이 그런 생각이었을 것이다. 호랑이 담배 피우던 그 시절엔 등 때밀이 품앗이가 목욕탕에서는 일상이었다. 그런데 인간의 정이 메말라 가다 보니 등 때밀이 품앗이 같은 아름다운 풍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만 것이다. 세신사가 많지 않던 시절에는 등 때밀이 품앗이가 사라진 자리에 자동 등때밀이 기계가 대신한 적도 있다. 동그란 판에 파란색 또는 노란색 때수건이 감겨 있었다. 등을 이 자동 등때밀이 기계판에 갖다 대면 자동으로 등의 때가 밀렸다. 때도 밀렸지만 무엇보다 시원했다. 당시에는 꿩대신 닭이었다. 세심사가 목욕탕에 상주하게 된 후에는 이 마저도 사라져 늘 등짝은 손길 한번 받지 못한 가운데 목욕탕 문을 나서야 했다. 사정이 이러하니 특히 목욕탕에서 소소한 정이 그리웠다. 그동안 세상이 변했으니 응당 이런 일에서도 순응해야 된다고 생각했다. 코로나가 오기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때를 밀어 달라는 부탁을 하면 흔쾌히 응해 주는 사람이 있어서 품앗이를 한 경험이 있다. 그러나 세상의 정은 갈수록 가을 낙엽 부스러기가 울고 갈 정도로 무미건조함이 더해져 이젠 손 쓸 수 조차 없는 지경까지 이렀다. 긴 때 수건을 말하는 사람도 있겠으나 고사리손보다 나을 게 하나 없다. 오호통재라 애달프고 애달픈 현실.
사정이 이러하니 어렵게 방문한 오늘의 목욕도 반쪽 짜리로 마침표를 찍어야만 하는 순간이었다. 체념하고 마스크를 벗고 면도 하려는 순간이었다. 한 칸 건너 옆에서 때를 밀고 있던 군살 하나 없는 늘씬한 몸매의 30대 후반쯤으로 보이는 젊은이가 나에게 말을 거는 것이 아닌가. “저 선생님 혹시 등 밀지 않았으면 밀어 드릴까요?” 목욕탕에서 등을 밀어주겠다는 것은 등 때밀이 품앗이를 하자는 의미다. 목욕탕에서 들을 수 있는 말 중 가장 듣고 싶은 말이 이 소리가 아닐까. 나는 만면에 웃음을 띠며 “아, 네 그래 주시면 감사하죠”라고 상기된 모습으로 대답했다. 젊은이는 건장한 체격만큼 야무지게 내 등짝을 밀었다. 목 뒷덜미에서부터 아래쪽으로 때를 순차적으로 밀었다. 등짝 구석구석 어느 한 군데도 빠트리지 않고 꼼꼼하게 밀었다. 정말 정말 그렇게 시원할 수가 없었다. 십 년 묵은 체증이 내려가는 듯했다. 아니 진짜로 십 년 묵은 체증이 내려갔다. 마지막 용의 눈을 찍는 화룡점정이 되어야 그림이 완성되듯 등판을 밀어야만 목욕이 완성되는 것이다. 생각지도 않았던 등 때밀이 품앗이를 하게 되다니, 그날은 운수 대통한 날이었다. 다른 부위 때는 밀어도 그만 밀지 않아도 그만일 정도로 등판 때 밀기와는 차원이 다르다. 등판은 다른 세상인 것이다. 대나무로 만든 효자손 등 긁기의 시원함과도 감히 비교 거부다.
등때밀이 품앗이는 되살려야 하는 우리의 비공식적인 아름다운 전통문화라 생각된다. 살려내어 등때밀이의 시원함도 만끽하고 때도 밀고 사라져 가는 인간의 아름다운 정도 복원하면 얼마나 좋을까. 사실 어렵지 않다. 썩 내키지 않을 수도 있지만, 목욕탕 가면 혼자 목욕 온 옆 사람에게 먼저 “등 밀지 않았으면 제가 밀어 드릴까요?”라고 공손하게 말해 보면 어떨까. "아니요 괜찮습니다"라고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혹시 그런 사람이 있더라도 개의치 말고 다른 사람에게 또 부탁해 보자. 작은 이 한마디의 시작이 우리 사회를 사람 사는 맛을 느끼게 하는 아름다운 세상으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이제 목욕탕에 가면 내가 먼저 “등 밀지 않았으면 밀어 드릴까요”라고 꼭 말할 것이다. 목욕 가는 날이 기다려진다. 오늘은 진짜 운수 대통한 날이 확실하다. 기분이 매우 좋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