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홀로즘(니힐리즘+나홀로족)
음악에는, 듣기 좋은 음악과 즐길 수 있는 음악이 있다. 그런데 ‘화분’의 음악은 가히 이 둘 모두에 해당한다. 공연을 보는 내내 잘 알지 못하는 음악에 오롯이 집중하고, 삼바에 점차 물들어갔던 것을 보면 그렇다. 마치 지쳐있던 일상에서 벗어나 한가로운 휴양지를 다녀온 것 같은 시간이었다. 2018년 11월 11일, 알록에피소드(aloq Episode)에서 펼쳐진 삼바 밴드 화분의 공연 <여기, 삼바>는 그동안 밴드가 갈고 닦은 삼바의 매력을 만개(滿開)시킨 알찬 축제의 현장이었다.
브라질의 삼바(Samba)는 아프리카에서 기원한 브라질의 음악, 춤의 장르이다. 노예무역과 아프리카 종교 문화를 통해 전파되었다. 20세기에 들어 아프리카의 색채보다 브라질의 전통적인 요소가 더욱 강조되면서 현재는 브라질을 대표하는 음악과 춤이 되었고, 아예 브라질 자체를 의미하는 애칭으로 칭해지기도 한다. 참고로 표준 표기는 삼바이지만, 표준 발음은 우리가 알고 있는 쌈바다. 이처럼 삼바는 브라질 민간에서 누구나 즐기는 음악 중 하나로, 4분의 2박자를 기본으로 하여 어렵지 않게 부르는 보편적인 노래라고 볼 수 있다. 즉, 다양한 주제와 리듬으로 만들어진 브라질 민요인 것이다. 삼바는 가사도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어서 작사와 작곡에 있어서 표현을 다채롭게 할 수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또한, 생각보다 다양한 빠르기와 분위기를 가지고 있다.
흔히 사람들이 생각하는 삼바는 카니발 축제의 화려함을 떠올린다. 아마도 공식적인 행사에서 선보인 삼바가 우리에게 익숙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는 한국의 전통예술이라고 하면 농악이나 사물놀이, 그리고 아리랑을 떠올리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삼바는 생각보다 다채로웠다. 그래서일까? 브라질을 가본 적도 없고 잘 접해보지 못했는데도 불구하고, 어느새 삼바가 친숙하게 느껴지면서 그 매력에 빠지게 되었다.
삼바 밴드 화분은 드럼의 ‘이종호’, 베이스와 까바끼뉴를 맡은 ‘강상훈’, 기타의 ‘이태훈’, 보컬과 피아노를 맡은 ‘이지연’, 퍼커션의 ‘유이엽’등 총 5명으로 이루어진 팀이다. 우리나라에 삼바 밴드가 있었다니... 생소한 이 음악을 하는 밴드는 왜 하필 삼바였을까 하는 의문을 품게 했다. 삼바 밴드 화분이 결성된 것은 시간을 거슬러 10여 년쯤, 우연히 고등학교에서 배운 삼바에 취해 시작한 ‘이지연’과 ‘유이엽’이 삼바 음악을 하기로 하였고, 삼바 학교인 ‘에스꼴라 알레그리아(Escola Alegria)’에서 만난 ‘강상훈’과 함께 트리오로 활동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후 시간이 흘러 2명의 팀원이 더 합류하게 되면서 지금의 완성형 삼바 밴드 화분이 되었다. 이들은 오랫동안 같은 길을 걸으며, 정규앨범 3장과 싱글앨범 2장을 발매한 기반이 탄탄한 음악가들이다. 음악을 업으로 하면서 산다는 것, 그것이 녹록하지 않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기에... 삼바 밴드 화분이 얼마나 큰 열정을 가지고 함께 해왔을지, 그리고 그 시간만큼 관계와 음악성이 얼마나 단단해졌을지, 퍽 와닿는다.
삼바 밴드 화분은 2018년 11월 11일, 알록에피소드(aloq Episode)에서 삼바란 꽃을 피웠다. 이번 공연 제목은 화분의 3집 주제곡인 “여기, 삼바”였다. 삼바 밴드 화분을 잘 나타낸 <화분삼바(Samba de Hwabun)>를 첫 곡으로, 브라질 대서양 바다에서 듣는 듯한 <파도(Wave)>, 서랍 속 비밀스러운 일기장의 이야기를 표현한 것 같은 재즈풍 느낌의 <서랍(A Drawer)>으로 공연 시작부터 관객들의 귀를 즐겁게 했다. 누구나 한 번쯤 생각해볼 만한 이야기 <누구나(For anyone)>, 상큼한 칵테일 같은 느낌의 <아과젤라다(Agua Gelada)>, 반려동물과 산책하는 모습이 연상되는 경쾌한 <발걸음(A Stroll)> 등 다채로운 음악을 선사하였다.
이번 공연에서 화분은 정통 삼바는 물론, 재즈나 발라드와 같은 느낌의 삼바 등 다양한 음악을 선보였다. 절로 흥이 나는 선율과 가사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어느새 삼바의 매력에 빠졌다. 삼바가 한국인 고유의 ‘흥’과 비슷함을 느끼며, 한국의 민요와 브라질의 삼바가 닮아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민중이 즐기는 음악이라는 점과 그들의 이야기를 노래로 표현했다는 점이 꽤 흡사하기 때문이다. 또한, 악기의 사용에서도 그렇다. 삼바 음악에서는 브라질의 타악기인 ‘빤데이루(pandeiro)’가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한국의 민속악에서 타악기가 자주 사용되는 것과 비슷하다.
공연 시작 전에 나눠준 달걀같이 생긴 ‘셰이커’를 워크숍을 통해 배우는 시간이 있었다. 이 ‘셰이커’는 쉽고, 빠르게 배울 수 있고, 이를 통해 관객이 공연에 참여할 수 있다는 점에서 흥미로웠다. 워크숍에서 배운 셰이커로 함께 연주해본 <여기 삼바(Samba Aqui)>에 이어, 자는 연인을 보며 드는 복잡 미묘한 감정을 담담하게 표현한 것 같은 <그 때(That time)>, 그리고 빗소리를 표현한 악기가 특징적인 감성적 음악인 <오늘은 비(Wish it would rain today)>까지 들으며 분위기는 가을 저녁처럼 점차 무르익어갔다.
중간에 삼바 밴드 ‘화분’의 인터뷰를 통해 그들의 음악적 소견에 대해 듣고 알아가며, 관객과의 거리를 좁혀갔다. 사회를 맡은 배우 ‘차영남’의 수려한 소통실력과 함께 ‘화분’의 말솜씨가 버무려진 유쾌한 시간이었다.
화창한 여름 휴일에 아버지와 손을 잡고 즐거운 산책을 하면서 듣고 싶은 <썬샤인 파파(Sunshine Papa)>와 어린 시절 문방구 앞에서 하던 추억 속 너구리 게임 속 뛰어다니는 너구리가 연상되는 <너구리(Neoguri)>까지 듣고 나니, 공연이 곧 끝난다는 것이 이내 아쉬웠다. 필자를 포함한 관객 모두가 같은 마음이었을까? 기존에 예상했던 공연 시간이 지났는데도 열기의 온도가 뜨거웠다. 마지막 앵콜곡인 <서교호텔(Hotel Seokyo)>까지 듣고서야 알찬 공연이 마무리되었다.
이번 “여기, 삼바” 공연은 브라질 삼바 음악을 재발견하는 시간이었다. 또 화분의 삼바 음악에 대한 애정에 대해 느낄 수 있었으며, 흔하지 않은 음악 경로를 택해서 정진하는 그들의 우직함과 열정을 발견할 수 있었다. 앞으로 한국화된 브라질 삼바 음악을 통해 독보적인 삼바 밴드로 나아갈 화분의 행보와 발전을 기대한다.
* 이 글은 서울문화재단의 사업의 일환 중 하나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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