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우즈베키스탄
#1. 떠날 것인가 말 것인가, 그것이 문제로다
떠날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아니 떠나고 싶었다. 전쟁 같은 일상을 살면서도 "그래, 괜찮아." 같은 자기 주문을 걸며 이겨내려 버둥거리는 일이 왠지 거추장스럽다고 느낄 무렵이었다. 대개 우리는 잘 닦인 도로를 달리듯 무탈하게 사는 것이 좋다고 여긴다. 하도 롤러코스터 같은 인생의 우여곡절을 주변에서 많이 봐왔으니까. 평균이란 궤도에서 미끌어지지만 않으면 다행이라는 생각도 종종 한다. 그러나 사실 그건 언젠가 깨질 게 분명한, 매우 무미건조한 평화다.
세계적으로 기승을 부리던 지독한 폭염이 지겹도록 이어진 지난 여름, 문득 나는 평온이란 이름의 자기 위안을 걷어차고 싶었다.
그렇게 우리 가족은 다시 홀연히 떠났다. 인천에서 날아오른 비행기는 주행한 지 일곱 시간이 지나자 우리가 닿을 목적지에 서서히 가까워지고 있었다. 저녁 어스름에 파란색 불빛의 공항 간판이 선명히 눈에 들어온다. 여기는 타슈켄트. 실크로드의 심장이 살아 숨 쉬는 땅, 우즈베키스탄에 도착하는 순간이었다.
시베리아횡단열차를 타고 바이칼호로 일주일간 가족여행을 다녀온 지 2년이 지난 시점이다. 세계 여행객의 로망이라던 열차를 타고 성스러운 샤머니즘의 땅에서 보냈던 기억이 강렬했던지라 다시 떠날 여행지를 고르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그런데 어렵사리 우즈베키스탄을 점지해놓고도 한동안 떠날지 말지 망설였던 건 45도를 훌쩍 넘는 현지의 기후 때문이었다. 휴양보다는 걷는 여행을 즐기는 우리 가족에게 45도는 도무지 가늠이 안 되는 세계였으니까. 물을 많이 찾는 아홉 살 둘째가 배겨낼 수 있을지도 의문이었다.
떠날 것인가 말 것인가, 아내와 함께 이랬다가 저랬다가를 반복했다. 그러다가 결심했다. 떠나기로 말이다. 아니, 떠나고 싶은데 이리 재고 저리 재다간 아무것도 할 수 없으리란 걸 이젠 알기에.
사실 학교에 다니는 어린 자녀들과 직장 생활을 하는 부모가 휴가 기간을 이용해 떠날 수 있는 최대치가 바로 일주일이다. 게다가 우리 사회에서 일하는 사람의 휴가는 어찌 된 일인지 거의 '7말 8초' 한여름에 쏠려 있다. 우리 가족도 이 한여름의 일주일을 피할 수 없었던 게다.
피할 수 없다면 떠나는 것이 상책이리라. 가고 싶다면 지금 이 순간이 최상의 시간이리라. 그렇게 서로 용기를 불어넣으니 안 가는 게 이상한 일이 되었다.
그리하여 우리 가족은 45도의 불타는 땅을 향하여 떠났다. 중앙아시아를 호령한 티무르 제국의 숨결을 느끼며, 이슬람 문명과 동서를 가로지르는 실크로드의 심장 속으로 서서히 빨려 들어갔다.
아직 우즈베키스탄은 한국의 여행객들에게 덜 알려진 곳이다. 우리도 부족한 정보 때문에 적잖이 고생할 수밖에 없었으니까. 그러나 타슈켄트에서 히바, 그리고 부하라를 거쳐 사마르칸트, 다시 타슈켄트로 이어진 일주일의 여정을 통해 이제는 너무나도 친숙해진 곳이 되었다.
아직 우즈베키스탄을 잘 모르는 분들을 위해, 특히 아이들과 함께 떠나는 실크로드 여행을 위해 괜찮은 길라잡이가 된다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이 글을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