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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영우 Jul 31. 2020

푸른 도시의 익숙한 환대

앗살로무 알라이쿰


#2. 푸른 도시의 익숙한 환대



별로 기다리는 시간 없이 비교적 간단하게 입국 수속을 마친 우리 네 식구. 실크로드의 옛길과 아라비아 상인의 숨결이 머문 우즈베키스탄에 첫 발을 내딛는 순간이다. 첫째(태민, 14세)와 함께 휴대폰의 유심칩을 현지용으로 모두 갈아 끼웠다. 이방인의 땅에서 행여 길을 잃게 되더라도 우리 가족을 서로 잇게 하는 생존의 무기렷다. 이런 긴장도 이제 즐길 때가 되었다. 언제나 그렇듯이 낯선 곳으로 떠나는 여행은 싱그러운 기대를 품게 한다.






블루 칼라의 땅

금세 밤이 다가와 어두워졌지만 사라진 하늘빛 대신 푸른빛의 네온이 청사를 비춘다. 공항의 가장 높은 곳에서 휘날리는 국기도 그렇고 이곳 사람들이 입고 있는 옷도 유난히 푸르다. 가만히 보니 이륙을 앞두고 줄지어 대기하는 국적기의 색깔도 그렇구나. 나중에야 우즈벡이 간직해 온 천년의 빛깔이란 걸 알았지만 그저 우리를 환대하는 희망의 인사라고 반기며 한 걸음 한 걸음 가뿐가뿐하게 나아간다.


 



그러나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미지의 나라로 가족을 데리고 떠나는 아빠의 입장에서는 기대에 앞선 긴장이 찌릿찌릿 전류를 타듯 몸을 휘감을 때가 있다. 바로 지금 이 순간.



공항 청사를 나선 바로 그 순간, 덩치 큰 사내들이 우리 쪽으로 성큼성큼 밀려오는 걸 봤다. 알아듣지 못할 말을 건네는 오버액션이 심상찮아 보인다. 때로는 자기들끼리 다투는 목소리도 들리는 것 같다. 그리고 드디어 우리 네 식구를 에워쌌을 때.

나는 마치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이, 아주 자연스러운 표정을 짓고 어설픈 영어와 손가락을 굴려 가며 보디랭귀지를 시도했다. 이내 가장 앞에 선 자를 지목하며 그의 눈 앞에 손가락 다섯 개를 모두 펼쳤다. 그 사내는 살짝 당황하는 척하더니만 그 무리들 밖으로 우리 가족을 빼내고는 어서 타라고 손짓한다.


    

그들은 택시기사였다. 내가 부른 건 5달러. 적지 않은 흥정이라 여긴 그가 알아서 상황을 정리해 우리를 안전하게 실어 날랐다. 우리가 첫날을 보낼 숙소까지는 3Km도 안 되는 거리. 3달러도 비싸다는 걸 알았지만 첫 여행의 관문을 스피디하게 통과하기 위한 나의 준비된 모션이었다고나 할까. 하하하



아내는 왜 그렇게 비싸게 주냐면서 제대로 흥정하란 눈치였지만 나는 아랑곳 않고 관철해 간다. 이럴 때는 안전이 제일이다. 저 건장한 사내들의 숲을 빠져나오는 게 우선이었으니까. 먼 길을 날아온 우리 식구들이 조금이라도 빨리 방에 누울 수만 있다면 된 것이다. 어둔 골목길을 돌고 돌아 우리가 머물 호스텔 앞에 택시가 정차한 순간. 모두 안도한다.



호스텔의 주인장이 데스크로 들어오는 우리를 반갑게 맞이했다. 그런데 이상하네. 그를 어디선가 만난 것 같은 느낌이라니. 처음인데도 마치 아닌 것처럼, 우리가 간 게 아니라 그가 우리에게 온 것처럼 그렇게 우리는 익숙한 환대의 세계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앗살로무 알라이쿰, 우즈베크! 그의 인사에 우리도 따뜻이 응대한다. 안내를 따라 올라간 계단에는 비단으로 짠 양탄자가 깔려 있다. 혹시나 오늘 밤 아이들이 꾸는 꿈에 알라딘의  요술램프가 나오지는 않을까. 신비한 첫날밤이 그렇게 깊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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