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뜨니 어느새 아침햇살이 곧게 뻗은 창을 뚫고 들어오고 있었다. 하얀 침대 시트에 쏟아져 내리는 게 갈수록 눈부시다. 아직 7시도 되지 않았지만 해가 중천에 떴다 해도 모를 만큼 밝아 오는 우즈베크에서의 첫 아침. 먼 나라까지 날아오느라 피곤했는지 등을 까고 자는 아이들은 깨어날 기척이 없다. 나는 웃음 지으며 방을 나갔다.
1층 데스크로 내려가 볼 참이었다. 이 호스텔의 호스트에게 오늘 다닐 타슈켄트에 대해 이리저리 물어보려고 했는데, 어? 귀에 참 익숙한 소리가 들리는 게 아닌가. 아니, 들리는 게 아니라 아예 진동한다고 말하는 편이 옳을지도. 아무도 보이지 않는 로비에서 소리 나는 곳을 찾아가서야 나는 이 둔탁한 진동의 주인공을 알아낼 수 있었다.
라카트 호스텔에서 올라가는 아내. 계단에는 비단으로 짠 양탄자가 깔려 있다.
어젯밤 우리 식구를 환대해 준 인상 좋은 청년, 이 호스텔의 호스트였다. 역시 긴 소파에 누워 우리 아이들처럼 등을 까고 쿨쿨 자고 있다. 휴대폰으로 도시를 검색하며 얼마간 기다려 보았지만 그는 당분간 일어날 기색이 없어 보였다.
한여름의 평균 기온이 45도를 오르락내리락하는, 한국에서는 상상도 못 할 뜨거운 나라. 우리도 나중에 적응했지만 이곳 사람들은 높은 열기로 데워진 땅이 식어 가는 밤에 가장 왕성한 활동을 하는 것 같았다. 우리가 모르는 간밤에 역시 많은 일을 했을 그. 나이는 18살이다.
사실 깜짝 놀랐다
18살이면 한국 나이로 이제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때다. 그런데도 이 작지 않은 호스텔에서 주인 노릇을 하고 있다니. 우즈베크 청년들은 스무 살이 되기 전에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결혼도 일찍 한다. 그래서 40대에 이미 손자, 손녀를 둔 할아버지·할머니가 되는 일이 빈번하다. 물론 대학을 다니는 학생들도 적지 않다. 거리를 돌아다니다 보면 우리에게 영어나 한국어로 어쭙잖게 말을 걸어오는 경우를 만나게 되는데 대체로 대학생들이다. 그들은 미국이나 한국을 선망한다고 말했다. 돈을 벌고 싶어 했다. 한국말을 잘 배워서 관광가이드가 되고 싶다는 이도 있었다.
우리 아이들과 함께 기념 촬영. 부하라에서 만난 아미르(맨 오른쪽). 한국에 꼭 가보고 싶다고 말했다.
열네 살 첫째. 스무 살까지 5년 남짓한 시간이 흐르도록 아마도 가장 많이 하고 듣는 말이 어느 대학을 가겠는지에 대해서일 것이다. 취업이 어려우니 또다시 대학원으로 갈 만큼 공부중독 사회가 된 대한민국. 그런 점에서 보면 일찍부터 진로를 정해 사회에 뛰어드는 우즈베크 청년들이 대견해 보였다. 해가 중천에 떴는지도 모른 채 코를 골며 쿨쿨 자는 저 호스트 청년조차도!
아이들이 일어났다.
자, 이제 출발이다. 우리는 우즈베키스탄의 수도 타슈켄트에서의 첫 여정을 티무르 박물관에서 시작하기로 한다. 콜택시를 불렀다. 타슈켄트에서는 얀덱스 택시 서비스를 이용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