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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영우 Aug 01. 2020

아빠, 나에게 다가오고 있어. 어떡해?

너에게 선물하는 다정한 인사

#4. 아빠, 나에게 다가오고 있어. 어떡해?



유럽의 고즈넉한 도시를 걷다 보면 어디선가 반드시 만나게 되는 곳이 있다. 바로 광장이다. 어느덧 하나둘 사라지는 광장의 자리에 성냥갑 같은 아파트촌이 빽빽이 들어선 한국과는 달리 탁 펼쳐진 그들의 거리에 섰을 때는, 광장의 역사를 수놓았던 숱한 주인공을 다시 만나는 상상을 다.



이르쿠츠크의 키로프 광장에 서게 되면 짜르 왕정의 박해를 피해 보석 같은 도시를 일군 데카브리스트를 만날 것만 같고, 까를교에서 바이올린 악사가 들려주는 스메타나의 <나의 조국>을 듣다 보면 프라하의 구시가지 광장에서 독립을 염원하며 무수히 외쳤을 체코 민중이 떠오른다. 만나는 광장마다 인류 역사의 위대한 보물창고인 로마는 또 말해서 무엇하랴. 아이들과 함께 머물렀던 그 광장에서 잠시 쉬어가며 먹었던 아이스크림 생각도 나는구나. 프라하의 젤라토는 그야말로 일품이었는데.



둘째의 얼굴에 서서히 짜증이 일기 시작했다



그렇다. 바로 지금.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한 건 아! 아이스크림이다. 아, 물만으로 이 타는 갈증을 절대로 해소할 수는  없다. 이글거리는 태양과 한창 달구어진 아스팔트가 뿜는 위아래의 압착은 우리의 폐부를 쭈그러지게 했고, 등줄기 아래 쏴쏴 흘러내리는 땀방울은 바지 윗단을 넘어 엉치뼈까지 젖게 할 심산이었다. 갑작스러운 폭염이 아니라 한여름의 일상이 이 정도라니, 각오는 했지만 45도의 위용이란 실로 대단한 것이었다.



우즈베크의 위대한 통치자, 아무르 티무르 광장으로 가는 길. 9시가 넘도록 문을 여는 가게가 별로 없다. 겨우 찾은 노점에서 산 물도 한국의 얼음장 같은 느낌은 나지 않는다. 역사고 티무르고 뭐고 다 필요 없었다. 게다가 둘째(태윤, 9세)는 아이스크림을 사 달라며 계속 보채기까지 했다. 그런 간절함이 닿았는지 마침내 우리는 아이스크림이 그려진 가게를 찾고야 말았다. 저마다의 식도에 강 같은 평화가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얼마 후 태민이가 말한다. 아빠, 쟤가 자꾸 우릴 쳐다봐.



그들과 태민이의 시선이 마주치는 순간



그러고 보니 그런 것 같다. 언젠가부터 누군가 우리를 쳐다보는 눈초리를 느꼈으니까. 우리가 기대고 있던 벤치 저쪽에는 한 꼬마 여아와 할머니로 보이는 분이 앉아서 한 번씩 이쪽으로 고개를 돌려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던 게다. 아이스크림 때문만은 아닌 것 같은데.

앗, 그들이 일어나 우리 쪽으로 걸어오기 시작한다. 저벅, 저벅, 저벅. 태윤이가 말했다. 아빠, 지금 이쪽으로 오고 있어. 나 어떡해?




어떡하기는 태윤아. 우리 함께 인사하면 되지

나는 우즈베키스탄 사람들이 함께 사진 찍기를 무척 좋아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가족여행에서 항상 사진을 담당하는 내가 DSLR을 들고 요리조리 찍고 있으니, 그게 궁금했나 보다. 마침내 그들과 우리의 거리가 1m도 안 되었을 때 태윤이가 쭈뼛거리며 슬쩍 일어섰다. 간단히 눈인사를 하고 익숙하게 사진을 찍는 우리. 브이 대신에 태윤이는 먹고 있던 아이스크림을 들었다.



다시 만나게 된다면 꼭 사진을 주고 싶다



그 이후 우리는 여행 내내 우즈베크 사람들과 참 많은 사진을 찍었다. 찍힌 사진을 바로 인화해 받을 수 없어도 그들은 환한 얼굴로 DSLR 뷰 파인더에 나온 자신을 확인하며 기뻐했다. 멀리서 온 이방인을 환대하는 그들의 독특한 인사법이다. 우리는 다르지만 여기, 함께 있다는 의미일까. 문화유산에 대한 기억과 독특한 음식이 남는 다른 여행과는 달리 우즈베크는 유난히 사람들에 대한 아련함이 남는 것 같다.



    

사마르칸트 비비 하늠 모스크에서 만난 가족들과
아무르 티무르 광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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