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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영우 Mar 02. 2021

느리거나 혹은 맛있거나

#5. 느리거나 혹은 맛있거나



타슈켄트 거리의 곳곳을 거닐다 보면 한국을 연상하게 되는 풍경을 많이 만난다. 도로에는 옛 대우나 현대기아 같은 한국기업의 차가 즐비하고, 의류 가게의 광고판에도 버젓이 코리아를 강조한 이미지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어디에서 왔냐고 물어보는 사람에게 한국이라 말하면 그럴 줄 알았다면서 다정한 인사를 받는 것도 예사다. 그들이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생활가전에도 한국에서 들여온 걸 익숙하게 볼 수 있다. 이곳 사람들에게 한국은 그만큼 친숙한 나라가 되어 있었다. 원래 따뜻한 환대가 자연스러운 데다 경계심 없이 우리를 대하니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미지의 세계로 떠난 이 여행의 안전도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우즈베크에 머문 일주일 내내 단 한 번도 위기를 겪은 일이 없을 만큼.



익숙한 KOREA를 만나다




단, 느리게 느리게 여행해야 한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한다.

본격적으로 시작된 여행의 첫날, 점심을 먹으며(아니, 무한정 기다리며) 뼈저리게 느껴야 했던 진실이다.



거리의 아이스크림으로 타는 갈증을 달랜 우리는 타슈켄트에서의 첫 식사를 위해 또 두리번두리번 걷기 시작했다. 여기는 브로드웨이 부근,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거리라고 들었는데 우리의 늦은 아침을 해결해 줄 식당은 이내 눈에 띄지 않는다. 24시간 해장국 가게가 즐비한 우리나라를 떠올려서는 곤란하다. 점점 뜨거워지는 태양열이 우리의 등판에 직사되고 아이스크림이 지나간 혀와 입의 향연도 파리하게 말라가 우리의 인내심을 막 자극할 때쯤.



식당 찾아 삼만리. 한국의 그 흔한 24시간 콩나물해장국집이 그리워지다니 



"찾았다!"



역시 스마트한 첫째의 구글링으로 일찍 문을 여는 식당이 가까이 있다는 걸 알고 발걸음을 총총 옮긴다. 마치 심마니가 보물을 캔 듯한  외마디에 다들 감탄하며 첫째의 휴대폰 주변으로 몰려드는 모양새가 우습기까지 하지만 금강산도 식후경이렷다!



그 옛날 실크로드 상인이 다루었을 법한 꽃무늬 천으로 예쁘게 싸인 의자와 자줏빛 비단이 식탁보로 놓인 식당. 물을 뿌리지 않으면 숨이 턱턱 막힐 만큼 가열된 거리를 벗어나 아라비안 나이트의 세계로 들어오니, 이제  본격적인 우즈베크라 여겨져 자못 흥미진진해지는 순간이었다. 자, 이젠 이국의 음식으로 우리 배부터 채워 보자고.



"꼬르륵"



그런데 말이다. 우아하게 주문을 넣은 지 한 시간이 지나도록 음식은 나오지 않았다. 차마 오해는 마시라. 1시간여를 기다리면서 '어험, 에헴' 하며 눈치를 준 적은 있어도 한국의 '빨리, 빨리'로 보챈 적은 결단코 없었으니까.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왜 안 나오느냐는 몸짓을 날렸더니 '뜨리 미니트'라 답한다. 그래, 그래. 이제 3분이야......



그래 이 맛이야



그렇게 그런 3분을 다섯 번도 더 보내고 나서야 음식이 나왔다. 그래, 이것도 우즈베크의 환대라고 치자. 좀 특별한 건 배를 곯아 본 사람만이 진실을 알 수 있다는 사실이다. 식당에서는 결코 서둘지 않아야 한다는 것 그리고 그들의 '뜨리 미니트'는 3분이 아니라 30분이라는 사실을 알고야 만 것이다. 대단한 발견 하셨다.

알고 보니 그 식당은 관광객들에게 이 거리의 맛집으로 알려진 'Navvat Lounge Bar'였다. 물론 음식 맛은 좋다. 우리는 마스타바Mastava라는 우즈베키스탄식 수프랑 만두와 흡사한 만티Manti 그리고 스테이크를 시켜 실컷 먹었다. 포만감으로 행복해하는 막내를 보니 이 정도면 진짜 준비가 된 것 같다는 판단을 내린다. 이제 그분을 뵈러 갈 때인 것이다. 첫 번째 영접이라 생각하니 벌써부터 가슴이 쿵쾅쿵쾅 떨리기 시작했다.



아무르 티무르 동상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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