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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영우 Mar 06. 2020

마스크 사회학

미지의 바이러스가 도시를 배회하고 있다.



익숙하지 않은 것에 대한 무방비가 길어지면서 일상의 회복도 지연되고 있다. 우리가 누려온 과학의 발달조차 오늘의 위기를 금세 넘기엔 힘이 모자라 보인다.



생각 못한 위험은 다양한 불신을 만들기 시작했다. 과학도 못 미더운 세상이니 얼토당토않은 가짜 뉴스가 맹위를 떨친다. 사람 관계까지 예리하게 파고든다. 저 사람, 평소 어딘가 이상하게 보였는데 혹시 신천지 교인이 아닐까. 의심은 나 안에서 끝나지 않고 너를 통해 우리로 전염된다. 그렇게 전염된 우리는 다시 나에게로 골몰한다. 과학도 국가도 결국 나를 지켜줄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불신이 퍼지니 지푸라기 하나가 희망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하나라도 더 잡으려고 아우성이 되었다. '지푸라기로 다가와 어느덧 섬이 되어버린' 마스크다. 이제 코로나19 박멸의 최후 보루는 깨어 있는 산 자의 축적된 마스크다. 



이 마스크를 어떻게 다루는가에 따라 정치가 극명하게 달라지고 있다. 한쪽에서는 마스크를 통해 공포를 양산한다. 황교안이 대표적이다. 마스크를 사기 위해 긴 줄을 섰지만 번호표만 받았다면서 '무정부 상태'라고 핏대를 세웠다. 그런데 그는 왜 그 긴 줄에 끼어 있었던 걸까. 마스크를 사기 위해서가 아니라 마스크를 빼앗겼다고 말하고 싶어서였을 것이다. 마스크에 담긴 나의 생명을 정부가 빼앗아갔다는, 극도의 공포를 불러오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남을 죽여서라도 저만 살겠다는 파렴치다.



그런데 국민에게 마스크를 빼앗으려던 세력이 누구였더라. 황교안의 자유한국당이었잖아. 2019년에 비해 증액된 380억 원을 삭감하자고 말한 것도, 애초 574억 원 마스크 예산 전액을 전면 백지화하려던 것도 다 드러나 있는데 오히려 누명을 씌우고 있으니 그야말로 후안무치다.



미래를 위한다고 통합을 내건 사람들이 흘러간 호러 좀비 영화를 찍지 못해 매일 같이 안달이다. '우한'을 끌고 오더니 이제 '마스크'에 재미 들였나 보다. 생명으로 장난을 치려는 몰염치다.



공포는 익숙하지 못한 것에 대한 무방비에서 온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대구시민들은 코로나19에 점점 익숙해지고 있다. 나의 일이 아니고 먼 데 있는 줄만 알았는데 하루가 다르게 가까이 다가오는 느낌이다. 내 동료의 친척이 확진을 받았고 확진자를 접촉한 동료의 동료가 나의 동선에 있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그럴수록 우리는 들뜨지 않는다. 냉정하고 차분하게 대응하기 위해서라도 평상을 유지할 뿐이다.



그런데 황교안은 말할 것도 없고 지금 미래통합당의 정치인들은 좀비가 나타났다며 떼로 흥분하고 있다. 그러나 정말 알았으면 좋겠다. 정작 좀비는 공포를 막무가내 확장시키고픈 본인들이라는 사실을.



대구를 사랑하고 여기를 지켜가려는 우리 시민들에게 공포의 정치는 하나도 이롭지 않다. 진보와 보수의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대구를 지켜가는 것은 공포를 물리치고 너나없이 연대와 나눔을 확장하고 있는 공동체의 시민들이다. 김밥을 말고 반찬을 나르며 마스크를 만들어 행여 있을지 모를 빈틈을 메워나가는 사연들에 희망과 용기를 얻는다.


 

그렇다. 지금은 반(反)공포의 정치가, 반(反)공포의 말이 공동체를 구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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