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이 사망했다. 죽음 앞에서는 누구나 한 번쯤은 경건해지기 마련인데 이 인간의 죽음에는 경악만 있을 뿐이다. 그는 생을 마감할 때까지 사과는커녕 항의하는 국민에게 오히려 호통을 치는 등 피로 물든 광주의 희생을 철저히 외면했고 민주주의의 역사를 내내 부정했다. 밝혀지지 않은 진실을 묻은 채 영영 고얀 입을 닫아버린 전 씨. 살아생전 응징당하지 않은 그의 죽음을 두고 절대다수가 '지옥에나 떨어져라'며 맹비난하고 있는 이때, 정말 그가 지옥에 간다면 어떤 고통을 당하게 될지 따져보고 싶다.
다행스럽게도 700년 전 단테는 '신곡'(지옥·연옥·천국)을 발표해 지옥도를 생생히 묘사해놓았으니 이를 통해 전 씨가 받을 죗값을 미리 예상해 보련다.
지옥은 모두 9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 번째로 접하는 1원은 '림보'라 부르는데 예수 탄생 이전에 태어난 성현들(호메로스, 소크라테스, 플라톤 등)과 너무 어린 까닭에 미처 세례를 받지 않고 죽은 어린이들에게 가벼운 마음으로 죄를 묻는 곳이다. 전 씨랑 상관없으니 일단 패스.
2원 애욕의 지옥
말하자면 육욕에 눈먼 자들이다. 그런데 전 씨로 따지자면 개인적 차원을 떠나 온 사회를 육욕으로 물들게 한 자가 아닌가. 민중의 이성을 갉아먹기 위해 그가 뿌려놓은 질퍽한 그물망이 떠오른다. 바로 '3S'(섹스, 스포츠, 스크린) 정책. 이 죄의 형벌은 지옥에서 불어오는 태풍이 사정없이 갈겨대는 회초리 세례다. 이렇게 두들겨 맞은 영혼은 벼랑 끝으로 떨어지고 만다.
3원 탐욕의 지옥
분위기부터 음침한 게 심상찮은 곳이다. 거대한 우박과 구정물이 눈과 뒤섞여 영겁의 비를 뿌리고 있다. 탐욕 역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전두환. 그는 천문학적인 뇌물수수로 재판을 통해 추징금을 2,205억 원이나 맞았다. 여기서는 지하세계의 신인 하데스의 감옥을 지키는 개, 케르베로스가 떡하니 버티고 있네. 두려움에 떠는 죄인들끼리 서로 벗어나려고 발버둥 치나 결국 케르베로스가 그 영혼들을 할퀴고 뜯고 찢어발긴다.
4원 인색함의 지옥
두말할 것도 없다. 29만 원으로 퉁 치자. 죄인들은 서로 반대 방향으로 거대한 돌을 굴리며 깔려 죽지 않기 위해 버둥댄다.
5원 분노의 지옥
여기서도 이 한 마디면 충분한 것 같다. 발포 명령 부인하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그가 날린 분노의 일성.
"이거 왜 이래"
분노에 이글거리는 죄인들끼리 서로 때리고 물어뜯는다. 승자도 패자도 없이 영원히.
6원 이교도의 지옥
이 대목은 신곡에서도 논란이 되는 장이다. 예수를 믿지 않는 이교도, 특히 무슬림에 대한 혐오로 연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전 씨 아들인 재용 씨가 목사가 되었다는 뉴스를 봤다. 뉴시스 보도에 따르면 재용 씨는 아버지가 "네가 목사님이 되면 네가 섬긴 교회를 출석하겠다"는 말을 했다는 게다. 그리고 그 말을 듣는 순간 목사가 꼭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는데. 이게 사실이라면 전두환 씨는 단순한 이교도보다 더한 파렴치 같다. 알다시피 이 죄의 형벌은 화형.
7원 폭력의 지옥
학살자 전두환. 그는 1980년 광주에서 저지른 최악의 폭력인 집단적 살인의 총본산이다. 무시무시한 괴물인 미노타우로스(반인반우)와 켄타우로스(반인반마)가 길길이 날뛰며 이 지옥에 떨어진 자들을 위협한다. 그리고 그들을 펄펄 달아오른 강물로 삶아버린다. 주변마다 뻘겋게 끓는 피가 흥건한 이유는 살인자들이 뿌린 그 붉은 피만큼의 값을 되받아내기 위해서다.
이 죄에는 자연에 대한 폭력도 엄하게 다스리는데 죄인들을 깎아지른 절벽 아래로 마구 던져버린다. 이쯤에서 떠오르는 건 아마도 '평화의 댐' 사건이 아닐까. 멀쩡하게 흐르는 자연의 강물에도 색깔론을 입혀 전 국민을 오도한 죄 되겠다.
8원 기만의 지옥
이 지옥에서는 다양한 유형의 죄인에 대한 벌이 나오는데 뚜쟁이에게 대한 응징은 더러운 똥의 투척, 탐관오리에게는 금빛으로 물든 겉과 달리 안에는 납으로 가득 찬 옷을 입게 해 그 무거움으로 끊임없이 고개를 숙여야 하는 죗값 등이 있다. 한편 도둑놈에겐 그 손을 뒤로 묶게 하는데, 말하자면 속수무책이다. 전 씨의 경우 모두 해당된다고 보여 종합세트로 당할 가능성이 클 것 같다.
9원 배반의 지옥
이제 마지막이다. 단테는 배반을 가장 무거운 죄로 보았다. 피렌체에서 인간사의 우여곡절을 경험한 그가 이 배반에 얼마나 치를 떨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하물며 전두환의 경우는 어떤가. 민족과 민중을 배반하고 여러 기회를 주었는데도 마지막 순간까지 사과조차 않으며 눈을 감지 않았나. 이 지독한 인간 윤리의 배반은 정말이지 용서받지 못할 중죄다. 전 씨는 지금 어디쯤 있을까.
사악한 악마 루키페르가 이 배반의 죄인들을 잡아먹기 위해 지금도 침을 삼키며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