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시(布施)

사랑엔 중고가 없다

by 어뉘


최진실이 생을 달리 했을 때

나는 슬펐고, 슬픈 후에

내가 예쁘지 않아서 고마웠고

남의 시선에 머뭇거리지 않아도 좋은

무명인이어서 조금은 함부로

내 삶을 살 수 있어서 다행으로 여겼다


정몽헌이 생을 달리 했을 때

나는 안타까웠고, 안타까운 뒤에

내가 돈과는 거리가 있는 보통 사람이어서

열심히 사는 척만 하는 삶이

그다지 나쁘지 않다는 것을 확인했다


심지어 나는 유영철에게서도

내가 어떻게 겸손하게

주어진 시간을 살아야 하는지 배웠다


그들이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내게 무언가를 가르쳤듯이

'나' 역시 누군가의 보시일 건 분명하다


누군가는 나를 비난하면서,

누군가는 나를 애호하면서

자신에게 보다 나은 삶을

주려고 애쓸 테다


마찬가지로

나는 그대를 사랑하면서,

그대를 미워하면서

그대로 인해 더 나은

나의 삶이 뭔가를 배울 테다


또한, 내 삶의 궤적에서

나처럼 살지 않겠다는

그대의 의지를 볼 수도 있겠고,

그대의 삶이 좋아 그대처럼 살겠다고

내 삶을 다잡을 수도 있겠다


우리는 서로

사랑하지 않아도 좋은

자유를 부여하면서

서로를 사랑해도 좋다는

암묵적 동의를 하고 있다


그것을 서로의 삶에

보시라 하지 않으면 뭐랄 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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