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추와 망각의 해석

사랑엔 중고가 없다

by 어뉘


그대가 그와의 모든 것을

다 기억할 건 없지만

기억한다고 해도

그대 자신은 더 이상

그 기억의 주인은 아니다


버릴 수 없는 의미가

그대의 가슴에

똬리를 틀고 있어도

기억에게 그대는 무의미하다


그대가 할 수 있는 건

기껏 망각이다


다만, 인간이 망각하는 법은

역사에 기록된 것을

없애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마침내 기억이

주검처럼 창백해질 때까지

열심히 기억하고 수없이

기억을 다시 써야 한다


숨 가쁜 더딤을 견뎌야 해도

진화생리적 방어 기제라고

이해하면 별것 없다


달리 보면, 추억을 앓는 것은

그대가 아주 건강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다시 겪지 않기 위한,

혹은 다시 사랑하기 위한

저항력을 기르는 것일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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