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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이 시쳇말로 '구라, '
아니면 비빔일 때
시와 수필은
삶의 잡탕이라고 봅니다
어쩌면 장르 구별은 무의미하지요
포르노 소설에서도
삶의 지혜를 얻을 수 있는 우리에게
글은, 한 마디 쪽지에서 수만 장
원고지를 채운 이야기까지,
그대라는 인간이 가졌던
지성의 흔적으로서 유의미합니다
<The wound is the place where the light enters you.> ---Rumi
상처(고통)는 빛이 그대를 파고드는 곳이다.
<Goodbyes are only for those who love with their eyes.
Because for those who love with heart and soul,
there is no seperation.> ---Rumi.
안녕은 오직 자신의 눈으로만 사랑하는 이의 것이다.
가슴과 영혼으로 사랑하는 이에게 별리(別離)는 없다.
앞의 문장은 시, 뒤의 것은 수필로 봅니다
13세기에 쓰인 것이지만,
그 의미와는 별개로 글은
세월을 비웃고 있습니다
상처는 자신의 이기가 초래한 것일 때 가장 아프다. ---어뉘
이것은 수필입니다 물론
제대로 알고 하는 소리가 아니지요
배우는 게 삶인 게 맞다면
알고 말할 게 아니긴 합니다
느닷없이 머리를 치는 겁니다
스무 살 때의 글을 서른 살에 읽으면
글에 다닥다닥 붙은 유치함을
견디기 어렵습니다
그대가 나이를 먹은 것이겠지요
그러나 스무 살에 쓴 그 글을
스무 살의 다른 이가 읽으면
그 글은 스무 살의 그에게
이해할 만한 글로서 읽힐 겁니다
나이 먹지 않는 글을
잘 썼다고 하는 것이지만,
그대의 삶이 현재에 있는 것처럼
오늘 쓴 글은 그대의
오늘의 역사라고 봅니다
그대가 어떻게 산 것은
독자, 또는 타인의
평가 자료가 아닙니다
흔히 말하듯이,
그대를 사는 건 그대입니다
역사가 말하는 건
'그랬다'는 겁니다
먹고, 자고, 싸다 간 그대는
그저 세월의 뒤꼍에 버려졌다 해도
틀릴 말은 아닐 겁니다
그러나 그대의 글은
세월을 비웃은 것과 같아서
'그랬다'라고 쓰고 있는
그대의 '현재'가 그 글에
고스란히 존재합니다
그리고, 훗날 누군가가
그대를 사랑한다면
'그랬다'라고 쓰는 그때의,
바로 그대를 사랑할 겁니다
적어도 세월이 가져간
그대는 아닐 겁니다
글은 함부로 써도 좋다고 봅니다
다만, 당장 또는
그대가 흙으로 돌아갔을 먼 훗날,
그대를 읽을 누군가를 위해
쓴다는 것만 염두에 두면
그대는 좋은 글을 쓸 수밖에,
아니면, 그렇게 쓰지 않을 수 없는
그대가 되지 않나 싶습니다
새해에도 말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