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수와 민희> 관람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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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뉘


<상수와 민희> 관람 중



대개 삶의 덤인 게 사랑이어서

사랑을 담아도 삶이 남는다


서로 만나기 앞서

구접스럽게 살았든 간동하게 살았든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도

사랑을 채우는 데에

삶이 모자를 까닭이 없다


우리가 흔히 아는

<철수와 영희>가 하는 사랑이

삶을 배경으로 쓸 때,

<상수와 민희>가 하는 것은

사랑을 삶의 배경으로

쓰는 모양새여서

사랑에 담기지 않는

삶이 남는다


<상수와 민희>가

불륜의 속성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은

남아있는 삶을 채울 곳을

마련해놓지 않은 탓이다


<상수와 민희>가

오늘을 있게 한 삶을

백안시하려는 시도가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거나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는

정서적 해리가 있다 해도

자기 합리화의 *오나니즘으로

보이는 이유다


윤리의 문제일 뿐

한 번뿐인 인생 아니냐 해도

서로 사랑하는 게 맞다면,

서로를 비난해야 할듯하다


민희가 상수의 삶을 무시하는 것처럼

상수 역시 민희의 삶을 무시하는 것이

서로 양해되었다 해도,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릴 수 있는

수많은 <너와 나> 가운데,

민희와 상수 역시

배척될 수 없다는 것을

상정하는 것이어서 그렇다





사랑한다면, <나>는

<내가 너를 사랑한다는 것으로

네가 비난받는 것을

견딜 수 없어야> 하지 않을까


사랑에 빠진 우리는

자신의 불행에는 무뎌도

사랑하는 상대의 불행에는

견디기 어렵고,

나를 향한 비난에는 익숙해져도

나로 비롯된 비난을 받아내는

<그>의 모습에는 도저히

익숙해질 수 없지 않던가


그렇다 해도 사랑은

사랑으로 느끼는 이가

하는 것이어서

정언적 정의만을 가진

우리의 삶에

그들이 사랑이라면

<아, 그런가> 할 수밖에 없다


그들 서로가 서로의

모자란 사랑을

비난하지 않는 한

그들에의 비난으로

그들이 사는 이야기가

바뀌지는 않을 테며,

그 줄거리는 처음부터

그들의 삶이었을 뿐

우리는 관객에 불과하다


또한, 오늘은 아니어도

상수를 사랑했었다는

민희의 소식이나,

사랑인 줄 알았다는

상수의 소식이 들리면

군것진 것으로 쳐버릴 밖에

관객이 할 일은 없을 듯하다


그러나,

긍정적으로든 부정적으로든

그들의 삶이 관객을 위한

보시인 건 분명해서,

우리가 사랑할 때는 각자 삶을

있는 그대로 품어야 하는

까닭을 배울 수도 있겠다






*오나니즘(Onanism):

구약성서 중의 인물 <Onan>에서 비롯된 말.

수음 자체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성교 중 체외 사정하는 방식으로,

가족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려는 행위를 일컫기도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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