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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개 삶의 덤인 게 사랑이어서
사랑을 담아도 삶이 남는다
서로 만나기 앞서
구접스럽게 살았든 간동하게 살았든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도
사랑을 채우는 데에
삶이 모자를 까닭이 없다
우리가 흔히 아는
<철수와 영희>가 하는 사랑이
삶을 배경으로 쓸 때,
<상수와 민희>가 하는 것은
사랑에 담기지 않는
삶이 남는다
<상수와 민희>가
불륜의 속성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은
남아있는 삶을 채울 곳을
마련해놓지 않은 탓이다
<상수와 민희>가
오늘을 있게 한 삶을
백안시하려는 시도가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거나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는
정서적 해리가 있다 해도
자기 합리화의 *오나니즘으로
보이는 이유다
윤리의 문제일 뿐
한 번뿐인 인생 아니냐 해도
서로 사랑하는 게 맞다면,
서로를 비난해야 할듯하다
민희가 상수의 삶을 무시하는 것처럼
상수 역시 민희의 삶을 무시하는 것이
서로 양해되었다 해도,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릴 수 있는
수많은 <너와 나> 가운데,
민희와 상수 역시
배척될 수 없다는 것을
상정하는 것이어서 그렇다
사랑한다면, <나>는
<내가 너를 사랑한다는 것으로
네가 비난받는 것을
견딜 수 없어야> 하지 않을까
사랑에 빠진 우리는
그렇다 해도 사랑은
사랑으로 느끼는 이가
하는 것이어서
정언적 정의만을 가진
우리의 삶에
그들이 사랑이라면
<아, 그런가> 할 수밖에 없다
그들 서로가 서로의
모자란 사랑을
비난하지 않는 한
그들에의 비난으로
그들이 사는 이야기가
바뀌지는 않을 테며,
그 줄거리는 처음부터
그들의 삶이었을 뿐
우리는 관객에 불과하다
또한, 오늘은 아니어도
상수를 사랑했었다는
민희의 소식이나,
사랑인 줄 알았다는
상수의 소식이 들리면
군것진 것으로 쳐버릴 밖에
관객이 할 일은 없을 듯하다
우리가 사랑할 때는 각자 삶을
있는 그대로 품어야 하는
까닭을 배울 수도 있겠다
*오나니즘(Onanism):
구약성서 중의 인물 <Onan>에서 비롯된 말.
수음 자체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성교 중 체외 사정하는 방식으로,
가족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려는 행위를 일컫기도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