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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뉘 Apr 26. 2018

사랑 죽이기

생각편의점


사랑 죽이기




무슨 말이냐 싶겠지만,

그대가 기왕

사람을 죽이기로 했다면

거기에는

인정사정이 없어야 합니다


무참하게 죽이다

처참하게 죽이다


요즘 쉽게 상상되지 않는

강력 사건 덕분에

흔히 듣는 말들인데,

인간으로서의 됨됨이를

강하게 비난하기 위해

제삼자의 관점에서

쓰는 표현들이겠지만,

그렇게 말하는 그대가

더 잔인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인정과 사정을 보면서

죽여야 했다고

자신의 인간적 정을

드러내려는 것으로

들리기는 해도,

죽이기로 했다면

고통조차 느낄

짬을 주지 않는

완벽한 방법을 찾는 게

좀 더 인간적입니다


그래서

총으로 죽이는 것보다

회칼로 죽이려는 그대가

더 잔인하고

회칼로 죽이는 것보다

과도로 죽이려는 것이

더욱 잔인하며

과도로 죽이는 것보다

주먹으로 죽이는 것이

더 잔인합니다


혹시 그대가 한 번쯤

죽음을 생각해 봤다면,

고통도 느끼지 못할

짧은 순간에 

생의 기미를 멈출 수 있는

가장 간단하면서도

치명적인 방법을

따져보게 되지 않던가요


죽는 두려움보다

죽기 바로 전의, 

육체적이든 정신적이든,

그대를 죽일(?) 듯한 고통이

죽는 것보다 더 두렵습니다


그래, 그대의

정신건강을 위해서

아예 누군가를 죽일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습니다



사랑도 마찬가지여서

끝내기로 했다면,

"사랑하지 않는다"

눈을 들여다보며

그가 확인했는지 확인합니다


사랑을 끝내는 그대에게

비련은 있을 수 없습니다

사랑을 끝낼 수 없는

이의 것이 비련입니다

어쩔 수 없어서

사랑을 멈춘 그대가 아니라

어쩔 수 있는 데도

어쩌지 않은 저열한

모습의 인간으로 그대를 

그의 가슴속에 남겨두는 겁니다


사랑하는 것과

사랑하지 않는 것,

그 사이의 비난은

어울리지 않습니다

따져보면, 그래야

사랑할 맛이 나는 법입니다

다만, 사랑한다면서

사랑하지 않는 그대의

야비함이 메스껍습니다


사랑을 제대로 살피면,

사랑하지 않을 때

사랑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이

착한 짓이란 게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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