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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뉘 Mar 28. 2018

비관주의자의 선택

생각편의점


비관주의자의 선택




겉이든 속이든

아름다움을 자각하고

그것을 잃지 않으려는

그대의 노고에 대해, 항상

측은지심을 갖게 되는 나는

비관주의자가 틀림없다


낙관주의자라면, 혹시

오늘이 가장 초라하다며

그대의 오늘을 소중히

여기지 않을 수도 있지만,

나는 당장의 아름다움을

즐기지 못하는 그대에게

쓴웃음을 흘릴 뿐

시비를 걸 말이 없다


그 대신에 나는

그대의 아름다움이

스러지기 전, 당장

오늘의 그대를

사랑하기로 하고 있다


인간의 사랑이 가진

여러 재능 가운데

그 아름다움을

바래지 않게 하는

오늘만 쓰는 

'각인'을 새긴다


모든 게 세월을 따라가도

늙지 않는 마음이 그렇듯

시간과는 무관하게

스물한 살 때 본 그대를

일흔셋에도 보며

'그때와 똑같아'라고

확인하게 하는

재주를 부릴 수 있으며,

여든둘이 되어서도

일흔셋에 시작한 사랑으로

'도대체 늙지를 않네'라며

자신의 눈을 탓하기도 할 터다 


그러므로, 오늘이 어제보다

더 나아야 할 이유가 없는

비관주의자의

사랑 안에 있는 한

그대의 아름다움이

스러지는 일은 없다


과거밖에 남지 않는

사랑을 하는 데는

비관주의적인 게 어울리는데,

내일이 없는 오늘인 것처럼

그대를 즐길 수 있겠기 때문이다


바꿔 말하면, 

우연에 따른 기대감을 버리기가 

거의 불가능한 삶은

유쾌한 낙관주의자로 사는 게

가장 그럴듯 할 때, 

마치 오늘이 그대와의 

처음이고 마지막 날인 듯

비관주의자처럼 그대를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이미 나는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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