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에 필요한 예의

생각편의점

by 어뉘


내가 너와의 만남과 동시에

헤어짐을 떠올린 것은 언젠가

네가 헤어짐을 말할 때를 대비해서다

네가 그럴 줄은 <전혀> 몰랐다고

함부로 따질 구실을 벌써 마련해 둔다


울고불고 매달리겠다는 건가 하면,

아니, 그건 전혀 아니다

굳이 네 말에 따라서

헤어져야 한다는 법은 없지만,

나는 너와 헤어질 테다


다만, 너는 내가 사랑하는 이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네게 줄 수 있는 <소확행>으로서

처음부터 헤어짐을 생각할 만큼

너를 사랑했다고 주장할 참이다

너의 사랑스러움에 빠진 동안

너와 헤어질 줄 벌써 알았기에

헤어지지 않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해왔다는 정도는

네가 충분히 추론하게 할 생각이다


너는 나와 헤어지는 게 옳다

처음 너를 눈에 담을 때,

내 <분별력>이 떨어졌던 것을

네 탓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아직 네가 헤어짐을

말하지 않은 것을 보면

내 분별력이 제법 쓸만한 것이겠지?




사랑이 가진 터부는 한 가지,

사랑하지 않는 것뿐인 만큼

사랑하는 동안에는

바퀴벌레 산책시키기도

사랑스러운 취미가 될 수 있다




나는 그대로인데, 너에게

내가 그대로가 아닌 게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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