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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뉘 Feb 19. 2020

다정한 시각

생각편의점

다정한 시각




그가 누구든 그를 보면 우선,

멋지다는 것을 인정해도 좋겠다

저 인간은 왜 저럴까?

그렇게 지나친 수많은 그에게 미안하다

그때의 나는 오만했다

나와 마찬가지로 그도

그를 보일 때, 또는 보일 수밖에 없을 때

굳이 보여줄 필요가 없을 때보다

뭔가 더 괜찮은 모습으로 나선 거다


그걸 알아보지 못하는 건

그렇게 바라본 나의 문제다

(그가 그대를 사랑하는데,

그것을 모르는 건

그대를 사랑하는 그의 문제가 아니다

그대 자신의 문제로 본다)


출근하는 그는 출근길에,

커피를 마시려는 그는 커피를 마시는 길에,

도서관에 가는 그는 도서관길에, 

혹은 책 읽기 좋도록,

포장마차에 가는 그는 

플라스틱 의자에 앉기 좋도록,

시장 가는 그는 시장길에,

글을 쓰는 그는 글을 쓰는 데 좋도록,

혹시 어울리지 않거나 맞지 않다 해도, 

그가 생각하는

그럴듯한 모습으로 자신을 드러낼 터다


벌거벗고서도 우리는 <나의 눈>에

최선의 모습으로 보이기를 기대하지 않던가


걸인의 겉모습이 걸인처럼 

보여야 하는 이유도 명백하다

그는 누구든 자신에게서 혐오를 느끼게끔,

푼돈을 던지고 군말 없이 달아나게끔

걸인으로서 가장 어울린 모습을 

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역설적으로 그가 

넥타이에 슈트를 입고 구걸을 할 때,

그 깔끔함이 오히려 비난받아야 할 터다)


평소의 그가 더럽다거나

혐오스럽다고 하는 건 적절하지 않다

그런 그대라면, 그대는 그의 앞을

행인 1 또는 행인 2로

지나갈 만한 자격이 없는 거다




어쨌든, 누구든 <그>가 보여준 것과

그대가 본 것이 어떻게 다르든 간에,

그리고 그가 그대에게 어떤 의미이든 간에

길 위에 나선 그는 예의를 다하고 있다

그게 그가 비난받는 이유가 되면 안 된다

그에게 작위가 있지 않는 한, 그렇다

혹시 그대가 보기에 마뜩잖다 해도

적어도 마뜩잖음을 최소화하려고 애쓴

그 수고를 인정해야 한다


그러면 그에게 무심하게 건네주어도 좋은

다정함은 부담 없이 준비할 수 있을 터다


(그렇게 생각이 이어지다 보니,

인간에 대한 시각이 아무리 긍정적이라 해도,

우리, 인간이 애를 쓰며 산다는 건

부정하기 어렵다는 생각도 들었다)




생각편의점 안에

<다정한 시각>이 진열된

동기는 아래와 같다


전철 안에도 겨울이다

대개 무채색의, 

비슷한 겉옷을 걸치고 있어서

그가 잘 보이지 않고, 장삼이사로 보인다

로우키(Low-key)로 장면을 잡으면

어제도 했던 강제노동에 끌려가는 분위기가 

쉽게 드러날 듯한 그 밋밋한 그림에서, 그러나

금방 <그>를 구별하게 하는 것이 있다

신발이다 

다름을 신발이 말한다 

겨울철, <나>를 드러내기 좋은

<잇템>은 신발인가 싶었다


장삼이사로 묻히지 않으려는

우리의 노고를 위로할 이는

우리 자신밖에 없는 걸 본다


다정함은 그래서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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