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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뉘 Jul 21. 2021

'아이' 유감

생각편의점

'아이' 유감





아주 특별한 때를 제외하고

3인칭 대이름씨로 '그'를 쓰며,

2인칭으로는 '당신, ' '너, '

또는 '그대'를 써왔습니다


'당신'은 심리적 원근을 품고 있고

'그대'는 애정이 담긴 문어로 보입니다만,

'당신'이 어울리는 자리가 있고,

'그대'가 어울리는 글이 있을 뿐

이 둘을 구별하지 않습니다


이 대이름씨들의 성은 오직 사람입니다

'남자, ' '여자, ' '그녀, ' '그' 등*

의미의 명확성을 높이기 위해

함부로 썼어도 오해가

없던 때가 있었습니다만,

대이름씨로 거론되는 누구든

성을 구분하지 않는 우리말로는

그 어떤 성이어도 좋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사람이고 싶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남성, 또는

여성이고 싶어 하면서 삽니다만,

우리 사회에는 우선 사람이 살고,

그 가운데 남성과 여성이 삽니다


그가 사랑하기 전의

당신은 그에게 '사람'이지만,

그렇다고 당신이 꾸준히

사람으로 남아 있기를

강요하려는 그는 없습니다


관계라는 게, 참 묘해서,

사람 사이로 남는 게 좋은 때도 있고,

그걸 견딜 수 없어서

자신의 남성이나 여성을

자랑하고 싶어지는 관계가 있는 겁니다

그렇게, 우리의 사랑은

사람으로 사랑을 시작해서 서로의

남자 또는 여자가 되는 과정을 밟습니다


사람이 여성과 남성으로 나뉘는 것이지,

여성과 남성이 사람으로 불리는 게 아닙니다

가끔, 우리를 사람으로 보기보다, 먼저

성으로 구별하는 이들이 없지 않은데,

당신이 그런 사람이라

인간적인 거부감을 견뎌야 할 겁니다


당신이 태어날 때도 그랬듯이

우리는 항상, '아이'로 태어납니다




*'그'와는 달리, '그녀'라는 말은

   일본어에서 온 게 아닐까 싶은데,

   남한에서만 쓰이며, 우리도

   쓴지는 얼마 되지 않습니다

   북한에는 없는 말이라고 합니다





할 말 많은 이들 나름의

똑똑함 덕분에 그 생각에 관한

책 두께만 두꺼워지는 듯한

페미니즘이 내겐 어렵습니다만,

여성의 입장이라면, 페미니즘이

굴욕적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삶을 어떻게 바라보든,

우리가 '사람'에서 벗어날 수 없다면,

남성과 여성이 비슷할 수밖에 없으며

동시에 사뭇 다른 게 당연하므로

서로 호혜적일 수밖에 없는데,

그 다름과 같음을 수용하지 않으면

페미니즘은, 자신의 성에 대한

자기 비하가 되지 않나 싶습니다


자기 선택이 아닌 것을,

굳이 성으로 인간을 구별해서는

여성주의, 남성주의 모두 구차해집니다


페미니즘이 여성을 설명하기 위한

도구로서 쓰이는 데에 거부감이 없다면,

같은 페미니즘으로 남성을 설명하는 것도

가능해야 하지 않을까 싶은 겁니다




보는 이의 관점에 따라 다르겠지만

대체로 발전이라고 부르는 것은,

여성의 삶을 개선함으로써

여유를 갖게 된 여성에 의해

남성의 삶이 개선되는 식으로

이루어져 오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 결과로, 인간이 쉽게 죽지 않고,

고단한 삶에 쾌락은 그대로 둔 채

되도록 수고 없이 일상을

누리고 있지 않은가 여깁니다


(공작과 같은 멋진 깃털을

가질 수 없는 인간 수컷이

할 수 있고, 한 일 운데,

어떤 고상한 이유를 달고 있든,

최종적으로 남성성을 으스대며

여성의 호의를 얻기 위한 일이

아닌 게 별로 없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여성을 기다리는 꽃을 든 남성이

낭만적으로 보이는 것은, 그것이 '전혀'

남성성을 강조하지 않기 때문일 겁니다)


다만, 지구를 약 올릴 대로 올려

열을 받게 만들고,

지구와 우리 자신의

공멸을 가져올 듯한 요즘의 발전은

결이 달라 보입니다만,

지금까지의 발전을 달리 보면

여성을 현실에 안주하게 하는 것으로,

그 자체가 여성에 대한 도전이지만

거부감을 갖기보다는 대체로

호의로 받아들여졌습니다

이런 시각에서 보면, 페미니즘은

그런 남성성에 익숙해지기 전,

19세기 훨씬 이전에

관심을 받았어야 합니다


모두가 모두와 어울려 사는 게

이상적인 사회라고 평가된다면,

사회는 페미니즘적이 아니면 안 될 겁니다

매스큘리즘(남성주의)이 페미니즘에

적대적으로 쓰이지 않는 건 다행입니다


성의 어울림이 자연스러울 때,

어떤 성이든 같이 살고 싶다면

그렇게 하고, 기생하고 싶다면

그렇게 하고, 기생하게 하고 싶다면

그렇게 하고, 같이 살고 싶지 않다면

혼자 사는 것이 특별한 게 아닐 때

즐거운 페미니즘에 대해

말해도 좋은 때가 아닐까 싶습니다


사회가 누군가를 돌봐야 하고,

돌보기 위해 끊임없이

불합리를 지적하고, 합리를 찾는 것은,

그 자체로 진전하는 것이고,

온전한 페미니즘에 조금씩이나마

다가가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인간 소외의 문제를 고려한

인본주의에 따라, 다르니까

다르게 봐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훨씬 영리해 보이고, 또다시,

다르니까 다르게 봐야 한다고,

사안과 상황에 따른 요구와

능력에 맞는 대우가

필요하다고 말하는 데에,

페미니즘은 필요가 없을 겁니다


더디다고 해도

사회가 바뀌고 있고,

당신이 내게 사람이고

내가 당신에게 사람이면

서로 사랑하지 않아도

어울려 살 정도의,

경계하지 않아도 좋은 사람살이는

괜찮지 않을까 싶습니다

쉬운 말로, 페미니즘이

사람으로 살자는 거라면

머리띠 두를 이유가 되는 건 아닐 겁니다


또한, 우리가 똑똑해진 탓이긴 하지만,

여성 혐오, 남성 혐오는 페미니즘과

무관해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우리는 여성이나 남성이 아니라

아직도 '아이'로 태어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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