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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뉘 Aug 04. 2021

삶으로서의 소확행에는

생각편의점

삶으로서의 소확행




자족은,  그대로

능동적 태도, 또는 행위로써,

원하면 떤 환경에서든

자신을 타자로 놔둘 수 있는

적극적인 해방 상태이며, 당장의

행복을 깨는 것이 자신뿐일 때

우리는 자족을 즐긴다고 합니다


자족과 다를 게 별로 없는

소확행이 화두가 되었을 때

우리 사회가 늙은 건가 했습니다

세상을 좀 살아본 인간이

가질 수 있는 피로감도 보이고,

막말로 이 사에 대해

'지랄'이랄 정도는 아니어도

반항이나 거부감을 보이기도 전에

그 안에  자진해서 스며드는

느낌이었기 때문니다

얼핏 생각하면, 속칭 '꼰대'들의

"있는 거 잘 챙기면서 살아"라는

잔소리에 고개 숙인 듯하니까요


그러나, 우리가 자진해서

추락하려고 살지 않는 한

열심히 살지 않는다는 소리를

들을 이유는 없어 보입니다


사회가 평가하는 대부분을

꼰대들이 갖고 있기는 합니다만,

그들이 이 세상에서 스러지면서

모든 것을 움켜쥔 채 가는 게 아니라면

움켜쥐었던 것들은 필히
뒤에 남은 우리 주위에 남아 있으며,

그 뒤를 잇는 새로운 꼰대들이

그것들을 나눠 갖거나,

'헤쳐 모여'를 하게 되고, 언젠가는

우리 자신이 그들과 같은 꼰대가 되어

달콤한 맛이든 쓴맛이든

그 맛을 즐기게 되는 게 삶일 겁니다

우리는 그들이 살다 간

시절을 답습할 수 없을 뿐

나태하거나 무기력한 건 아닌 겁니다


어쨌든 각각 삶의 국면마다 소확행이란 것도

다양할 것이라는 게 충분히 예상됩니다

자신의 경제 상황에 맞추든,

철학적 성찰에 따르든

소확행이 모두 같을 수 없을 겁니다

'소소하다'는 건 사적 판단이라는 겁니다


그대가, 이리저리

사람 드물 시간을 잰 뒤 찾아간

승봉도*의 해변에서 느낀 해방감을

확행이라고 한다면

구색 다 맞춰 우주 어딘가에서

지구를 잠시 내려다본 만장자가

느낀 경이감도 그로서는

소확행일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하고 싶지만 하지 않는 게 좋겠다"는

강박을 깼을 때 소확행이 되는 거지요

소확행은 강제된 무기력이 아니라

자발적인 선택인 게 맞을 겁니다


그러나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행복과

하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하는 행복 가운데

어느 행복을 우선에 두는가는 취향으로 본다 해도,

하나 빠진 것, 내가 선택하지 않은 '나'는 어떨까요


오롯이 자신을 산다면서,

소확행을 삶의 형식으로 삼으면

"럼, 사랑은 해본 거네"라며

그저 흐뭇하면 좋겠습니다만,

숙고한 결정 여부에 관계없이

사랑에 무심할 수 있는가에 따라

선택한 소확행의 삶이 유지될 겁니다


삶의 일부로서 한 때

'사람에 미쳐' 헤어날 수

없겠다 싶은 사랑을 겪고

어떤 식으로든 빠져나온 뒤에,

해볼 건 다 해본 '내'가 되어야

자기 주도적 안녕을

즐길 수 있지 않나 싶은 겁니다


제대로 한 사랑은,

흔히 단어로만 알거나,

책이나 드라마로 벌써 아는 듯한

환희, 열정, 매혹, 소중함, 운명,

존재의 당위성, 이타심, 치졸함

유치함, 애호, 혐오, 절망, 종말,

구속의 즐거움과 예속의 즐거움,

오로지 성욕이라고만 할 수 없는 정욕 등,
삶이 만나는 극적인 감정들을

한꺼번에 가져다주고, 즐기도록 해 줍니다


단순히 삶만으로도, 겉으로는

자족을 보여줄 수 있겠지만,

관객이 있을 때의 이야기로,

그 연극이 끝난 뒤 조명 꺼진 무대에

홀로 남은 '나'는 다른 이야기입니다


여타의 생명체와는 다르게

우리가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얼핏 봐도, 동물과 식물은

본태, 본능적으로

소확행의 삶을 삽니다

할 수 있는 만큼 끈질기지만

자연이 거부하면 받아들입니다

하지만, 알다시피 우리는

자연의 거부를 수용하지 않으면서

정복자로서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 태도를 바꿀 것 같지 않습니다


여덟 살에 당한 수모를

여든 살이 되어서라도 갚으려는

집착을 가진 게 별로 이상하지 않고,

굳이 남의 설명을 듣지 않아도

우리가 B사감이나 콰지모도*를

비웃기만 할 수 없는 이유를

알듯한 건 그 덕분입니다


그대가 혼자 산다지만,

외로움을 견뎌내는 것일 뿐

혼자 사는 건 아닐 겁니다

그저 외로이 사는 거지요


흔한 연애라는 것과 달리,

사랑을 해보지 않은 삶을

삭막하다고 하는 까닭은,

치열한 삶에서 휘적취적 돌아와

항상 불을 켜줘야 할 방 앞에 서서

세월에 빛바랜 '그 사람' 하나 없는

나를 볼 것 같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자족이나 소확행과 달리,

그대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원합니다

소확행을 삶의 테마로 삼으려면, 우선

사랑을 해봐야 하는 이유가 거기 있습니다

마치 그대가 차를 좋아하고

새 차를 오래 타려면, 우선

폐차 직전의 중고차를

적어도 반년 정도는 타면서

다뤄봐야 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소확행이나 자족은 결국, 삶을

사랑하려는 몸부림입니다


온전한 자족은, 사랑하지 않을 자유를

안 뒤 갖게 되는 마음의 여유입니다

사랑의 범주가 너무 좁아 보인다면,

만상에 대한 정념으로서의 사랑에서

해방되고 나서야 더 이상

세상에 맞추기보다 나에게 맞춘

자족이나 소확행을

즐길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인천 옹진군 자월면에 속한 작은 섬

*현진건의 소설, <B사감과 러브레터>의 주인공과

    빅토르 위고의 소설,

   <파리의 노트르담(노트르담의 꼽추)>의 주인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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