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어뉘 Jul 07. 2021

자학은 무슨, 관조라도(feat. 책)

생각편의점

자학은 무슨, 관조라도(feat. 책)




우리는 끊임없이

무엇엔가 얽매이며 삽니다

먹는 것, 입는 것, 잠을 못 자는 것,

사랑, 죽음 등 모든 것에

(심지어 공기에도)

얽매어 자신을 괴롭힙니다

좀 떨어져서 보면

자학, 아니면 피학입니다




행복한 순간에 죽는 것


그래서 우리가 행복하고,

거기에 똑똑하기까지 하다면

더 살아야 할 이유가 없을 겁니


한 여름,

아이스크림 콘을 받아 든 아이가

행복에 빠져 한입 베어 문 순간,

꼬인 발끝에 휘청거리다가

손에 든 콘을 흙바닥에 팽개쳤을 때의

아이가 느낄 절망 같지는 않더라도

곧 생소한 불행이 찾아올 거라는 걸

알 정도는 되어야 똑똑한 것일 테니까요


죽음이, 삶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하는 선택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없지 않습니다

현실은, 아주 미련한 이들이,

그리고 아주 드물게

다가온 행복을 지키기 위해,

또는 흔히 불행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것을 선택하는 경우가 흔합니다만,

우리는 그들보다는 똑똑한 편이어서

행복이든, 불행이든 어느 하나가

영원하지 않다는 걸 벌써 알고 있습니다




가진 게 '나'밖에 없는 삶에, 그나마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게 하는 수단은

타인의 시각 또는 관점을 경험하는 것이고,

그러기 위한 수단이 독서일 겁니다*

베르테르는 자신을 불행하다고 읽었고,

달리 읽을 것이 없었습니다

(늘 하는 이야기입니다만,

누가 누구를 사랑한 요?

로테의 태도 때문에

베르테르에게 동정심을

갖고 있던 이들은 아쉽겠지만,

사랑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고려하면

사랑 때문에 죽지 않을 사람을 선택한

로테의 선택이 옳았다고 봅니다

사랑은 항상 '너'에 대한 겁니다

'나'에 대한 '너'가 되면

주장이나 집착이 되어 버립니다)


우리는 행·불행이 한 때라는 것을 알고,

그것이 필히 가고 올 것이며,

일정 주기도 없이

대차대조표처럼 그 들락거림이

균형을 이루지는 않아도

되풀이될 것을 아는 불행한 사람으로,

베르테르와는 달리, 불행을 팽할 줄도 아는

(그러나 자신이 사는 지구를

지구 상의 생물 가운데

유일하게 함부로 다루는)

적당히 똑똑한 사람입니다




남들 만큼 책을 읽었다고

언젠가 떠벌인 적이 있습니다만,

흔히 호기심이 많다고 하는데

좋게 말해서 그렇게 보는 것이고,

내가 모르는 타인의 이야기이고

내가 겪을 수 없는 이야기로

주어진 삶을 벗어나려는

몸부림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 독서가 불행을 그럭저럭 넘겨온 힘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럴 수도 있지."


내 경험으로는, 책을

많이 읽을수록 불행에 인색해집니다

속말로 맷집이 붙는 것이겠지요

함부로 불행을 인정하지 않게 되는 겁니다




행복한 이야기는 재미가 없습니다

몇 마디로 모든 것을 말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삼백예순 네 쪽의 삶이

불행으로 차고 넘쳤어도, 오늘

삼백예순 다섯 쪽에 몇 줄의 행복을 넣어주면

불행에 익숙해진 우리는 충분히 행복해집니다


"시작이야 어찌 됐든, 잘 되어서 끝나잖아!"


흥행을 작정하고 있는 대개의

드라마나 영화의 엔딩이, 주인공들의

포옹이나 입맞춤을 '클로스 업'하고

카메라를 '트랙백_Track back_'하면서

전체 화면으로 주위를 모두 담은 뒤

페이드 아웃하거나 엔딩 크레디트를

올리는 까닭도 그와 같은 이유일 겁니다


행복한 이들이 제 행복을 분석하는

책을 썼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 없고

행복을 자랑하려고 책을 낸다는

모자란 이들은 본 적이 없습니다


글발 좋은 소설가가 그렇고

전문서적이나 자기 계발서 등도

우리의 모자람, 불행을 이용합니다

자의적이든, 타의적이든 말이지요

'내'가 자족하고, 행복하다면 우리는

굳이 책을 읽지 않을 테니까요

(행복한 사람이 남의 불행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유와 같습니다)


대개의 책은, 우리 삶이

불행하다는 증거로 쓸 수 있다고

오지랖 넓은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만,

대체로 죽기에는 젊은 사람이 읽습니다

뒤집어 보면, 행복하려는 이들이,

마음이 젊은 사람들이 책을 읽습니다

표현은 각각이어도, 그 끝에는

'이제, 당신의 선택에 달렸다'라거나,

'Que Sera, Sera_뭐든 되겠지'라거나

'C'est la vie_산다는 게 그렇지'라고,

흔히 우리를 위로하고 있는 이유일 겁니다


미개인이 되지 않으려면

서둘러 사야 할 것 같은 세탁기,

갈아타면 세상이 부러운 눈으로

나를 뒤돌아 볼 듯한 자동차,

마셔 보면 세상을 마신 것 같 음료 등,

수없이 쏟아지는 광고뿐 아니라,

우리의 귀를 파고드는 사회 정의, 이를 테면,

차 한 대 값의 손지갑, 재벌 3세의 갑질,

쓰레기 통에 버려진 백설기 이야기처럼

우리를 불행하게 하는 현실과 어울리다 보면,

우리가 가질 수 있는 행복을 느낄 이야기는  

누군가 나를 사랑한다는 이야기 정도일 겁니다


가진 것과 갖지 못한 것, 그 모두가

역설적으로 우리를 불행하게 합니다

심지어 책이 좋아 책을 읽는다 해도

하필 그 책에 얽매인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게, 불행을 '먹고'

행복을 '싸면서' 사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평소 불행을 울지 않으며

전혀 불행을 느끼지 않고도

'어떻게 분노를 다스릴 것인가, '

'매력이 경쟁력이다'라는 책을 읽으려고

말짱한 얼굴로 서점의 문을 열거나,

도서관 회원증을 꺼냅니다


그렇다면, 각할 점은 이걸 겁니다

나름의 처지에 따라 우리가

불행으로 인지하지 않는 불행을

위무해줄 책이 있을 수 있습니다만,

"그들 가운데 읽은 게 별로 없어도

아직 잘 살고 있는 것을 보면,

우리가 가진 대개의 불행

불행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것 말입니다




"불행에는 차갑게"에서 한 이야기입니다만

우리 자신의 인지 여부와 상관없이

우리가, 불행을 사는 건 틀림없어 보입니다

그래서 삶을 탓하거나 함부로,

불행으로 읽게 되지 않나 싶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자학을 즐기는 걸까요?

심지어 자위(Masturbation)를

자기 학대라고 하는 이도 있으니 말이지요

(신의 존재에 대해서는 회의적입니다만, 있다면

죽음과 함께 그, 또는 그녀가 인간을 사랑한,

가장 기발한 선물이 아닐까 싶습니다)


누구도 우리에게 불행하라거나

행복하라고 강요하지 않습니다

왜 우리의 삶이 불행한가는

불행에 관대한 우리

자신에게 물어야 할 겁니다


흔히 듣는 이야기,

우리의 관점이 정직할 때라도

우리의 태도가 삶의 행·불행을

결정한다는 걸 모르는 이가

있겠나 싶기는 합니다만,

그런 태도나 여유를 부리는 게

쉽지가 않면,

남 보기에도 그럴듯한 관조,

조금 웃고 조금 찡그리면서

그냥, 놔두는 것도 어려울까요?


"행복이든, 불행이든,

지 배알 꼬인 대로 놀다 가겠지."




최근에 도서관에서 빌린 책은

잘 쓰이지 않는

순우리말에 관한 것으로,

내게는 어려운 어린이 책입니다

어휘에 관한 욕심은 언젠가

적재적소에 쓰는 행복을

예약한 것이기도 합니다


그 책에는

'찔레꽃머리'라는 말도

싣고 있는데

'찔레꽃이 필 무렵'을 뜻하는 말로,

'초여름'을 뜻한다고 합니다


"사랑은 계절의 꼬리를 밟지 않는다

  찔레꽃머리라 해도,

  그의 눈이 시린 건

  햇볕 탓만은 아니었다"


이렇게 쓰일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 모두 느끼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그 해결책이 굳이 독서라는 이유는 글이 유능해서가 아니라, 글자로 된 매체는, 논리나 그 상황에 대한 서술이 섬세하면, 우리가 팩트체크 없이 사실로 받아들이기 쉽다고 합니다. 기록은 생각이나 사고의 불가역적 현시로서 '모두'에게 공유되는 대중성과 위엄을 갖게 되기 때문일 겁니다.


베르테르로서는, 로테에 대한 감정이 생기기 전이라면 몰라도, 당장 로테를 염두에 둔 편지는 쓸 수 있었어도, 무엇으로든 자신을 객관 하기는 이미 늦었을 겁니다.  

한편, 자신의 머리에 총을 쏜 것은 로테에의 사랑과는 무관한 자학으로 봅니다. 자신의 기분을 드러내기 위해 끼니를 거부한 아이와 다를 게 없었다고 봅니다. 그러나 그가 꾸준히 살아, 로테의 행복을 지켜주었다면, 소설은 금방 잊혔을 겁니다. 괴테도 그건 이야깃거리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을 테지요.

우리가 불행한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