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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뉘 May 05. 2021

생각의 시작

생각편의점

생각의 시작



어려서는, 딱히 공부에

신경 써주는 이가 없었어도

성적이 나쁘지 않았던 것은

글로 출제되는 시험이므로, 어쩌면

닥치는 대로 읽던 책 덕분에 

글에 대한 독해력이 

좋았기 때문일 겁니다

지금 생각하니 그렇다는 겁니다


초5학년 즈음 몽정을 겪은 이후

책에 대한 욕심이 

생기지 않았나 기억합니다

성악을 하겠다며 줄곧 

알아듣지 못하는 가곡을 멋지게 부르던

옆집 고2 형의 책장에 

빡빡하게 꽂힌 책을 탐냈고,

책이라면 가리지 않고 읽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책을 좋아했던 건

'참 잘했다'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성악을 하려면

돈이 필요하다더군요 그 형은 결국, 

음대에 들어가지 못했고,

진로를 바꿨다고 전해 들었습니다)


서대문의 영천시장에는 중고서점이

두어 군데 있었습니다

물론, 도로가에는

신간 서점도 있었는데

들어간 기억은 있어도

새 책을 산 기억이 없습니다

헌책방의 오래된 책 냄새가 좋았고

백열등 아래에서 시장의

통로 쪽으로 펼쳐놓은 헌책을

뒤적거리는 건 늘 재미가 있었습니다


헌책방을 두어 번 들린 적이 있다면

벌써 알겠지만, 그 책이 읽을만한가, 

아니면, 재미있는가는 

외양이 헐어 있는 정도로

쉽게 눈에 띕니다


나는 지금까지도 신문과 방송에서

속칭 베스트셀러라고 

떠드는 책을 읽은 적이 없는데,

그 깨달음 덕분일 겁니다

좀 시간이 걸리기는 하지만

시간을 타는 책이라면

일부러 읽지 않아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낡은 책을 들고 있는 이를 보면

한정된 시간을 영리하게 

쓰는구나 싶어 지는 거지요

그저, 내 느낌입니다


어쨌든, 내가 가진 용돈으로는

살만한 책이 많지 않았습니다

되도록이면 값이 쌀듯한,

그러나, 재미있을만한

낡은 책을 고르고 골랐지요

다른 건 기억하지 못하고,

용돈 값을 한 것은, 

넓이는 문고판 정도에  

키가 약간 더 컸던 책인데, 책이름이, 

'남을 괴롭히고 죽어라'였습니다

마침 그때, 그 어린 나이에

죽이고 싶은 인간이 있어서

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하지만 그는 죽을 수밖에 없는 

나이에 죽었습니다)

'부도덕 교육강좌 69'의

해적판이었을 겁니다


책을 닥치는 대로 읽는다는 건

장르를 가리지 않았다는 건데,

포르노로 부르는 시대를 삽니다만,

야한 소설이 예외는 될 수 없지요

중국 명나라 말에서

청 나라 초기 사이를 살던

문예비평가 김성탄이,

눈 내린 하얀 밤에

문을 꼭 닫아걸고 금서를 읽는 것이

인생 최대의 쾌락이라 했다지요

그가 살았던 시대의 금서에는

'금병매'도 포함될 텐데,

나는 아직 읽지 못했습니다

김성탄이, 뭐, 나를 염두에 두고 

그 말을 한 건 아니겠지만,

전적으로 그의 의견에 동감합니다


성서도 마치 옛날이야기처럼

구약과 신약을 읽었습니다

미션계통의 학교를 다녔으므로

어쩔 수 없었던 면도 있습니다

많은 이야기 가운데, 

설명될 수 없는 이야기는

아무도 설명해 주지 않았습니다

'신이 한 일이다'라는 한마디로

모두 해결되는 일이기에 그랬을 겁니다

<설명되지 않는 일> 가운데,

내가 믿는 건 사랑밖에 없으므로

신은 나를 설득하는 데에

결과적으로, 실패했습니다 

그럼에도, 

모든 것이 신의 뜻인 게 맞다면,

신은 그런 나를 기꺼워해야 합니다

신의 뜻대로 된 것일 테니까요


그리고 '생활의 발견'을 만납니다

내가 읽은 건 뉴욕에서 발간된

1937년 판을 번역했다는 것이었는데,

린위탕 자신이 

'독서술(The Art of Reading)'에서 쓰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는 누구나 읽어야 할 책은 없어도, 특정한 때, 특정한 곳에서, 주어진 삶의 특정한 시기에 읽어야 할 책만은 있다. '독서'라는 것은 결혼처럼  운명이나 인연으로 정해진다고, 나는 생각하는 편이다. 성서처럼 모두가 읽어야 하는 책이라 해도, 그걸 읽어야 할 때가 있다._(1937년 판 원본 379쪽에서 옮김)


초등학교 운동장 구석에 있는

철봉대 옆에서 만나 

삶을 통틀어 교류하는 친구가 된 이의

권유로 읽은 책입니다

읽은 때는 중2였지요 

거웃이 듬성듬성 보일 때였습니다

린위탕의 표현대로

그 책이 내게 읽혀야 할,

운명적인 책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물론, 그가 먼저 읽었겠는데

그와 나는 같은 책을 읽었지만

그에게는 읽어 볼만한 책이었고,

내게는 읽어야 하는 책이었던 겁니다


왕성한 호기심 덕분에

남이 번역 출판한 것이 그렇다면, 

그 원문은 어떻게 되어 있나 궁금해서

수년 뒤 확인한 적이 있으며,

삶을 맨눈으로 보게 해 준

단 하나의 문장을 꼽으라면, 나는

23 쪽에 실려 있는 이것을 꼽습니다

(린 유탕의 성찰은 아니지만, 

그 책의 원저자가 붙인 책 이름,

'The Importance of Living'과

잘 어울리는 인용이 아닌가 싶습니다)

 

As Chinese illiterate women put it,

"Others gave birth to us and

we give birth to others.

What else are we to do?"

(글 모르는 중국의 아낙들이 내뱉는 말이다,

"누군가가 우리를 낳았고,

우리가 누군가를 낳잖아.

그밖에 우리가 뭘 해야 한다는 거야?" )


밑줄 긋고, 옆줄 그었습니다

사춘기가 시작되면서

삶이 뭔가 대단한 줄 알던 때,

읽을 당시에도 뒤통수를

얻어맞은 느낌이었습니다

그렇게 어른이 되면서

그 말만큼 단순하면서도 

선명한 삶에 대한 태도가

달리 있겠나 생각하고 있습니다

거기에 유구한 자연을 곁들이면

인간의 삶이 더욱 명쾌해집니다


예의 중국 아낙의 힐난은,

나를 낳게 한 누군가가

사천여 년 전에도 살았으며,

나를 기대하지는 않았겠지만,

그로 인해 그를 닮은 얼굴로

내가 존재한다는 것이며,

모든 존재가 이 세상에 있어야 할 

이유를 찾을 수 있게 합니다


그렇게, 내가 이 세상에 

있는 이유가 명백해지면, 삶은

잔머리 굴리지 않고

무작위 하게 살아도

누가 뭐랄 수 없는 게 됩니다

'나'는 죽습니다

그것은, 나를 있게 한 수많은 선대의 

'나'가 겪은 수고를 생각해서라도

즐겁게 살아야 할 이유가 되지 않나요?


그런 게 인간이라면

인간에게, 왜 행복보다 불행이 

더 흔한가에 대한 답도

아낙의 힐난이 해주고 있습니다

그저 살다 가려는 것 같지만, 

우리는 아낙과 같은 

심적 여유가 없는 것이며,

인생에게 바라는 뭔가가 

더 있다는 게 분명해집니다


생각편의점을 개점한지는 

얼마 되지 않지만,

내게, 생각은 그렇게 

오래전에 시작되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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