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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뉘 Feb 17. 2021

잠깐,

생각편의점


잠깐,



뭔가 일상이 아닌 상황에서

어울리게 된 상대와

고락을 함께한 뒤 호감을 갖는 건

나무랄 일이 전혀 없을 겁니다


예를 들어, 함께 작업하던 영화인들이

'이 사람, 나와 잘 맞는다' 하다가

일상으로 돌아와 시각이 넓어지면,

쉽게 열렸던 마음이 그만큼씩

닫히게 되는 현상 말입니다


예외가 없지 않겠지만,

배역이 없어지면서

볼 것도, 보여줄 것도 없어진 후

'내가 나에게 속았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이겠지요



사랑은, 일상이어야 하며,

일상으로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랑을 일탈이라고 쓴 적이 있는데,

그것과 모순되는 것 아니냐 하겠지만,

알다시피, 일탈은

일상이 없다면 일어나지 않는 일입니다


내가 그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대에 대한 사랑이

나로서는 어쩔 수 없는

삶의 일상이라는 의미일 겁니다

그렇게, 억제할 수 없는 사랑이

시나브로 내 일상이 되면

어떤 식으로든 나는 사랑을

고백하게 될 겁니다


그 사랑이 나로서는 일상이지만,

조금이라도 나를 아는 누군가는

내게서 일탈을 보게 되는 것이지요



사랑에는 일상적인

두 사람의 역사가 필요하지만,

서로를 알게 된 시간의 길이를

단순하게 역사라고 착각하거나

그에 따른 익숙함으로

사랑이 익었다고 착각하면

훗날, 무척 아플 수 있습니다


그대가 가진 익숙함이란 것은

그가 '보여준 것'에 따라 형성된

익숙함이며, 그대가 한 것이라고는

그가 마련한 무대 아래 앉아

그것을 즐긴 결과에 지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한편, 그를 사랑하면,

내가 아플 일은 없을 겁니다

대개는 나를 사랑해서 아픕니다

그가 나를 아프게 한다는 착각과,

그를 사랑하는 것으로

내가 사랑받을 만하다는 착각을

늘 조심해야 합니다


사랑은 약속 없이, 내 멋대로 하는 것으로,

그가 나를 사랑할 만한 것이 분명해도

그것이 그의 의무일 수 없는 겁니다



내가 가진 현재의 삶은

내가 그를 사랑하는 조건이 되지 않습니다

오직 그가 나를 사랑할 때, 그에게는

내 삶이 조건일 수도 있겠는데,

그건 그의 문제로서

내가 마음 쓸 건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사랑이라면, 선남선녀의 것인 줄 알지만

세상의 모든 '나'의 것으로, 누구든

그 '나'의 환경과 처지에 자격지심을 느낀다면

사랑하기엔 어린것이라고 봅니다

'나'를 받아주기를 구걸하는 게 아니라

내가 그를 보듬으려는 게 사랑이니 말입니다


'아들, 딸 구별 않고' 낳은

열한 아이들의 홀어미인 내가

브래드 피트에게 사랑을 고백하면,

뭐, 어떻습니까

베개 머리맡에 비듬뿐인 노총각인 내가,

키이라 나이틀리를 사랑하는 데도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받은 사랑을 되돌려주는가는

그들의 문제이기 때문에

내가 관여할 일이 아닌 겁니다


그들이 나를 사랑하려면

현재의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게 나이니까요


아니면, 현재의 나를 있게 한

무수한 선택과 결정으로 이룬 삶이

부정되는 것으로 나의 쓸모를 본다는 건데,

그걸 사랑인 줄 알면, 그가 나를 비웃겠지요


"얘, 바보구나"


거기 더해, 내가 그를 사랑함으로써

오히려 그 사랑에 나 자신이 구속되어

(그렇게 되는 이가 드물지 않습니다)

사랑을 구걸하는 바보가 되면,

그는 물론, 세상 사는 이가 비웃겠지요


"잠깐, 그게 응석 부릴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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