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가 받았어야 할 편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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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뉘

그대가 받았어야 할 편지 1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데에

쓸데없이 주저하지 않은 이유는

사랑에 관한 한

비관주의자이기 때문이라는 건

벌써 이야기한 적이 있어요


맞아요, 항상 오늘만큼 당신이

사랑스러운 적이 없으니까

비관주의자가 될 수밖에요

그것이 내가 가진 당신이에요


그러나, 꼭 사랑을 비관적으로

하지 않더라도 말이에요,

당신에게 내가 느닷없이

무의미해질 수도 있다는

불확실성을 무서워하는 건

사랑에 빠진 이의 어쩔 수 없는

소심함 때문이기도 해서,

응석밖에 없는 인간의 사랑에,

내가 바랄 수 있는 것은

당신 역시 비관주의자로서

사랑해주기를 바라는 것인데,

아주 이상한 건 아닐 거에요


당신의 사랑스러움 덕분에

세상을 새로 보게 된 나과 달리

당신의 눈에 당신처럼

사랑스럽지 않은 내가

하염없이 응석하는 동안에도,

내 눈동자에 새긴 당신의 모습을

당신 자신이 봐주는 것이 나는 달콤해요


그러나 당신을 사랑하는 동안

사랑해 달라고 조르지는 않을 건데,

사랑하는 게 더 자유롭거든요

그때쯤 당신이 내게 의미가 된 것은

당신의 사랑스러움이

응석을 부렸던 때문이라고

나는 주장하게 될 거예요


당신이 나를 구속한 게 맞아요

왜냐 하면, 당신과 마찬가지로,

나는 사랑할 누군가를,

(물론 여기서는 당신인데,)

마음대로 고를 수 없었어요

사랑스러운 이는 내가 아닌

당신이었고, 나를 사랑하게 한 건

당신이었으니까 말이에요


내가 사랑스러움을 느낀 건

내 기호의 문제가 아닌,

당신이 가진 사랑스러움을

내게 보여준 게 문제였어요


그런 내게 사랑을 그만두라고

요구할 권리가 없다는 건 알지요?

세상 어딘가에 있는 줄도 모르던

당신을 사랑하려고

오늘까지 살아왔겠어요?

내 사랑을 비난할 수 없는

이유를 알겠지요? 어쨌든

당신이 내 눈에 사랑스러워 놓고

그런 당신을 사랑하지 말라는 건

내게 너무 잔인하잖아요?


다만, 비관주의자의 사랑에는

흔한 바람이나 기대 같은 게

거의 없어서 당신은

때로, 차갑게 느낄 텐데,

어쩌다 내가 다정해져서

영원을 입에 담으면,

나를 꾸짖어도 좋아요

영원은 죽음과 친구일 뿐 아니라,

사랑과는 어울리지 않아요

그 많은 시간만큼

당신을 사랑하는 데에

나태해질 게 뻔하잖아요


그래서, 왜 당신을 사랑하냐고

묻는 게 가장 싱거운 질문일 거예요

당신에게서 당신이 모르는

당신의 사랑스러움을 보는 것이,

오늘뿐일 수 있기 때문이라는 답밖에,

비관주의자가 가진 건 없거든요


또한, 어쩌다

당신이 좀 더 다정해져서,

있는 그대로 사랑하도록

놔두기를 바라는 것도

기대가 아니냐고 따지면,

어쩔 수 없이, 나는

"사랑이 그런 걸 알면,

그렇게 해 주려는 거예요?"

기쁘게 되물을 테니까

"사랑하는가"만 물어주세요


당신을 사랑하는 게

내 탓이 아닌 건 분명하니까,

그걸 확인하려는 당신이

더욱 사랑스러워서

내가 어쩔 줄 모를 텐데,

그런 내 모습에 당신이 즐거워진다면,

내가 장담하는데, 곧 당신도

나를 사랑하게 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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