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불러주기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데에
쓸데없이 주저하지 않은 이유는
사랑에 관한 한
비관주의자이기 때문이라는 건
벌써 이야기한 적이 있어요
맞아요, 항상 오늘만큼 당신이
사랑스러운 적이 없으니까
비관주의자가 될 수밖에요
그것이 내가 가진 당신이에요
그러나, 꼭 사랑을 비관적으로
하지 않더라도 말이에요,
당신에게 내가 느닷없이
무의미해질 수도 있다는
불확실성을 무서워하는 건
사랑에 빠진 이의 어쩔 수 없는
소심함 때문이기도 해서,
응석밖에 없는 인간의 사랑에,
내가 바랄 수 있는 것은
당신 역시 비관주의자로서
사랑해주기를 바라는 것인데,
아주 이상한 건 아닐 거에요
당신의 사랑스러움 덕분에
세상을 새로 보게 된 나과 달리
당신의 눈에 당신처럼
사랑스럽지 않은 내가
하염없이 응석하는 동안에도,
내 눈동자에 새긴 당신의 모습을
당신 자신이 봐주는 것이 나는 달콤해요
그러나 당신을 사랑하는 동안
사랑해 달라고 조르지는 않을 건데,
사랑하는 게 더 자유롭거든요
그때쯤 당신이 내게 의미가 된 것은
당신의 사랑스러움이
응석을 부렸던 때문이라고
나는 주장하게 될 거예요
당신이 나를 구속한 게 맞아요
왜냐 하면, 당신과 마찬가지로,
나는 사랑할 누군가를,
(물론 여기서는 당신인데,)
마음대로 고를 수 없었어요
사랑스러운 이는 내가 아닌
당신이었고, 나를 사랑하게 한 건
당신이었으니까 말이에요
내가 사랑스러움을 느낀 건
내 기호의 문제가 아닌,
당신이 가진 사랑스러움을
내게 보여준 게 문제였어요
그런 내게 사랑을 그만두라고
요구할 권리가 없다는 건 알지요?
세상 어딘가에 있는 줄도 모르던
당신을 사랑하려고
오늘까지 살아왔겠어요?
내 사랑을 비난할 수 없는
이유를 알겠지요? 어쨌든
당신이 내 눈에 사랑스러워 놓고
그런 당신을 사랑하지 말라는 건
내게 너무 잔인하잖아요?
다만, 비관주의자의 사랑에는
흔한 바람이나 기대 같은 게
거의 없어서 당신은
때로, 차갑게 느낄 텐데,
어쩌다 내가 다정해져서
영원을 입에 담으면,
나를 꾸짖어도 좋아요
영원은 죽음과 친구일 뿐 아니라,
사랑과는 어울리지 않아요
그 많은 시간만큼
당신을 사랑하는 데에
나태해질 게 뻔하잖아요
그래서, 왜 당신을 사랑하냐고
묻는 게 가장 싱거운 질문일 거예요
당신에게서 당신이 모르는
당신의 사랑스러움을 보는 것이,
오늘뿐일 수 있기 때문이라는 답밖에,
비관주의자가 가진 건 없거든요
또한, 어쩌다
당신이 좀 더 다정해져서,
있는 그대로 사랑하도록
놔두기를 바라는 것도
기대가 아니냐고 따지면,
어쩔 수 없이, 나는
"사랑이 그런 걸 알면,
그렇게 해 주려는 거예요?"
기쁘게 되물을 테니까
"사랑하는가"만 물어주세요
당신을 사랑하는 게
내 탓이 아닌 건 분명하니까,
그걸 확인하려는 당신이
더욱 사랑스러워서
내가 어쩔 줄 모를 텐데,
그런 내 모습에 당신이 즐거워진다면,
내가 장담하는데, 곧 당신도
나를 사랑하게 될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