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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뉘 Jun 08. 2022

치우쳐도 좋음, 편애

생각편의점

치우쳐도 좋음, 편애




어릴 때와 달리, 요즘의 나는
대체로 누구든 그의 
뒷모습을 즐기는 편입니다

여름이 끝날 즈음, 
마른 나뭇가지 하나
높이 쳐들고 기다리면
어쩌다 그 끝에
가볍게 앉아 쉬는 잠자리는, 대개
내 의도를 이해하지 못한 겁니다
그러나,
사람의 발길이 잦은 생태농장에서
내 손가락 끝에 앉아
손바닥의 먹이를
여유롭게 쪼아 먹으며
나를 살피지 않는 작은 새나,
머뭇머뭇 내게 다가와 
내 손의 건초를 대강 먹어치우고 
등을 돌리는 산양들의 태도는
나에 대한 믿음이 있기 때문일 겁니다

학습이 되어 있기 때문이긴 해도,

내가 의도했든 그가
무의식적으로 내게 등을 보였든

그만큼 나를 믿는 것이기도 하므로

나는 느긋하게
그의 뒷모습을 바라봐도 좋습니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누군가가 등을 보인 건

그를 보고 있는 '나'에게

그를 맡긴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거기엔 그에 관한
여러 그림이 있습니다


그대와 나는 아직 

앞모습을 보는 단계이지만,

그대도 나의 그가 된다면,
내 눈에 그대의 뒷모습이
모두 '털리게' 될 거라는 
각오를 해야 할 겁니다


나는 그가 보이는 그대로
그를 볼 수 있습니다

내가 그를 사랑한다면
그는 그의 앞을 꾸미기 위해
애쓸 게 없다는 것도 알겠지요

그가 나를 돌아보거나
나를 마주 볼 때는
나의 수줍음 탓에 그를 
내 눈만으로 보는 건 어렵습니다

그래도 모든 것이 달콤할 때는

이런 동안이긴 합니다만,

풀어 말하면,

내가 보는 그와 나를 마주 보는 그,
이 둘 가운데 누구를 사랑하는지

나는 때로 헷갈리며 당황하기 마련입니다


내가 보는 그가
나를 사랑에 빠지게 하지만,

내게는, 비로소 함부로 보이는 
뒷모습의 사랑스러움과 견줄 수 없습니다
그를 모두 차지한 느낌이 듭니다


다시 말하지만, 마주 보는 그는
다양하며, 화려할 수 있어도

뒷모습을 보이는 그는
그가 아니라 나 자신이 감정을
세밀하게 보여줍니다

그를 사랑하는 것이나, 
그를 사랑하지 않는 것이
나라는 것을 늘 반추하는 건

그가 나를 버릴 때에도
내게 상처를 입히지 않을 겁니다

또한, 그가 사랑스럽다면

그의 뒷모습에도, 발뒤꿈치마저도
사랑스러움이 덕지덕지 붙어있을 테고
내가 그를 사랑하지 않게 될 때도
그는 아무런 상처를 입지 않겠지요
그의 사랑스러움은
원래 그의 것이니까요
아니면, 그의 사랑이
잘 못된 탓일 겁니다


그러니까 그가 돌아섰을 때
내게 그가 사랑스러울 가능성이
사랑스럽지 않을 가능성에 비해
한참 떨어져 있어도 좋습니다

다들 아는 사실입니다만,
아예 돌아보지 않는 그는
미울 수 있어도,
돌아보는 그는 사랑스럽습니다
그런 그가 사랑스럽지 않은 경우는
사실, '거의' 없습니다

그 '거의'에 포함되지 않는 경우는,
다시 말해, 나를 돌아보는 그가
확실히 사랑스럽지 않은 경우는
그가 나를 버리고 가면서,
쓸데없이 돌아볼 때뿐일 겁니다




굳이 덧붙여야 하나 싶지만,
그의 뒷모습이 아니라
거꾸로 그대의 뒷모습을
그에게 내주어 보면
곁눈으로 보이는
어깨너머의 그의 시선이, 그가
그대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몇 가지 정도 확인시켜 줄 겁니다

아, 벌써 알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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