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어뉘 Jul 27. 2022

스토커가 되지 못하는 사정

생각편의점

스토커가 되지 못하는 사정



연애를 잘하는 사람이란

사랑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을 잘 다루는 사람이라 해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겁니다

그가 그대를 즐겁게 한다면,

그대를 사랑하고 있을 수도 있지만,

그대를 잘 다루고 있을 수 있습니다


그대가 명시적으로 기대하고 있는 것이나

무의식적으로 기대하고 있는 것을

'괜히' 채워주는 사람이기 때문일 겁니다

여기의, '괜히'가 참 간사한데,

'나'를 이해하는 사람처럼 보일 테지요


그와 달리, 그대를 사랑하는 사람은

되도록이면 그대를 있는 그대로

즐기는 사람일 겁니다


그는 연애를 잘하는 사람에 비해

그대가 느끼는 즐거움에는

상대적으로 무심할 수 있습니다

그대가 그의 사랑으로 즐겁기보다는

스스로 하는 사랑으로 즐거울 수 있다면,

그래야 한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그의 사랑으로 그대가 즐겁다는 건

그가 자신의 사랑을 도구로 그대를

구속하고 있는 것일 수 있으니까요


그대는 그의 사랑이 아니어도

얼마든지 즐거울 수 있는 사람으로 

존재해야 하는 겁니다

언제 그 자신의 사랑이 끝날지

그 자신도 알 수 없다는 겁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하는 이유는,

우리의 무의식 속에 있는,

'누구든 우리의 사랑을 

거부할 자유를 갖고 있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역설적이지만, 이 말은 그럴듯합니다

거기에는 그 자신의 사랑도 포함됩니다

그도 그대를 거부할 자유를 갖고

사랑에 빠진 것이니까요

그는 이 사랑의 패러독스를 압니다

그래서 그에게는 연애가 어렵습니다


사실, 그는

연애를 잘하지 못합니다

한다면, 사랑을 합니다

그는 그대를 사랑하고 있는 그 자신을

즐기는 사람이서, 그대의 일상과 행복을

훼손한다는 생각만으로도

도저히 스토커가 될 수 없는 겁니다


그대가 그를 거부한다면

상심이 전혀 없지는 않겠지만

그대를 사랑하는 이로서,

오히려 그대 마음을 다독여 줄

누군가를 찾아줘야 할 의무감을

느끼게 될지도 모릅니다


언젠가 <나현> 님이 지적하기를,

뭐 그렇게 어렵게 말을 하냐 해서

흔히 하는 말로 다시 쓰면 이렇습니다

"보내줄 테니, 행복하자"


그가 스토커가 되는 이유를 헤아려보면,

그대가 어쩌다, 혹은 고의로,

혹은 장난처럼 그에게 건넨 

그를 사랑한다는 느낌에 대한

애착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에게 거부는 '사랑'이 아니라,

그라는 인간에 대한 모멸로 받아들입니다

상처 입은 자신의 사랑때문이 아니라

바짝 마른 한여름의 모래같은 자존감이

바람에 날려갈까 두려운 것일 수 있습니다


일상에서나 회사에서도

자주 목격하는 풍경인데,

자존감 낮은 이들이 흔히 그러듯

스스로 자존감을 높이기보다

타인의 굴욕을 강요하려 하지만,

우리는 우리보다

우월하지 않은 인간에게서는

혹시 굴욕을 당해도, 굴욕감은

거의 느끼지 않습니다

인간의 순수한 영혼은, 누구든

우리에게 굴욕을 강요하는 것이

우리의 우월성에 자극을 받은

그의 열등감을 희석하려는,

졸렬하고 유치한 생떼라는 것을 알아챕니다


한마디로, 그는 타인을 사랑하기엔

한참 모자란 인간일 수 있습니다


그런 면으로 보면, 현대를 사는 우리가

사랑에도 전략적이어야 하나 싶은데,

애초에 그를 모를 때부터

그대의 스토커가 되지 않게 하는 방법은

그대를 사랑하게 만드는 걸 겁니다

그래서, 사귀다가 헤어지는 게 아니라

사랑하다가 헤어지는 겁니다


먼저, 그대를 즐겁게 하는 사람과는

제법 사이를 두어도 좋을 겁니다

익숙함과 쉽게 타협하는 우리의 속성 덕분에 

태도를 오래 견지하기가 어렵습니다만

그를 사랑하게 될 때까지, 아니면

사랑하지 않는 것을 확인할 때까지

그게 몇 년이 걸리든 말이지요


그리고 사랑하게 되면 모를까,

'사랑하는 척'은 하지 않습니다

그대가 즐기고 싶은 사람은,

그가 그대를 사랑하게 될 때까지

그를 사랑하는 겁니다

연구자들이 아직도, '왜 사랑이

이타적인 행동을 유발하는가'에 대한

답을 얻지 못했다 해도,

사랑에 빠지면 이타적이 되는 건 분명하니까

심리적 태도나 정신적인 문제를 떠나,

스토킹이 왜 그 자신에게 수치인지를

알려 주는 건 사랑일 테니까요

'나'가 아닌 '너'를 사랑하는 게

사랑인 걸 모르는 건 범죄일 수 있다는 걸

그도 배우지 않을까 싶습니다




"인간에게서 이런 느낌은 처음이야"


한편, 이 말이

그대 자신의 신중함이나

순수성을 드러낼 것으로

생각하고 뱉으려는 말이라면,

그러지 않는 게 좋을 겁니다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이고,

상식적인 사람에게는

그저 사랑으로 충분하고,

그대가 그에게 해줄 게

사랑밖에 없는 것으로 좋을 겁니다

노파심에서 덧붙이면,

그대가 사랑하는 것을

그가 알아채지 못한다면

그대는 그를 제대로

사랑하지 않는 겁니다


따져보면, 처음이라는 것은

미래의 두 번째 사랑을 

머리에 두고 있는 것으로

듣는 이에 따라서는

제법 불쾌할 수 있습니다

또한, 생각과는 다르게

그의 느낌이나 감정을 미리

헤아리지 못할 수도 있다는

그대 자신의 두려움이나 안타까움에

미리 양해와 사랑을 구걸해 두려고

처음임을 말할 수도 있겠지만,

셀프 핸디캡핑 심리의 아류로 보입니다


지나간 사랑으로서

이름만 남은 이들이 아닌,

당장 앞에 있는 그를 사랑하다면

그런 수사가 쓸데없습니다

자신을 꾸밀 이유가 없습니다

아니, 처음이므로 아예

꾸미는 방법도 몰라야겠지요


지금 그와 그대에게 스며드는

그대들의 사랑은 그대들에게

처음이 아닐 수 없기 때문에

당연히 서툽니다

사실, 그를 사랑하느냐, 아니냐,

그 판단에도 서툴 겁니다

나름 고되고 척박한 삶에

사랑이 신나는 이유일 겁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치우쳐도 좋음, 편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