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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뉘 Aug 05. 2022

역음유행(驛音流行)

생각편의점


역음유행(驛音流行)




요즘을 사는 비둘기 가운데는

인간의 무모한 애정에

오랫동안 익숙해져서,

언제 뿌려질지 모르는

과자 부스러기를 기대하며

인간과의 사이에

한 걸음에 잡히지 않을 정도의

거리만 유지하고

건들거리며 사는 놈들이 있는데,

어쩌다 차도로 나서서

'이 정도는 이해해주겠지' 싶은

속셈이었는가는 모르겠지만,

다가오는 자동차를 무시하다가

자살하듯 삶을 마감하는 놈도 있습니다



세상이 하는 이야기가 

너무 많다고 느끼는 건

요즘의 일이 아닐 겁니다

수많은 매스미디어가

대단한 정보인 것처럼

무언가를 밤낮으로 떠들어대는데,

제 딴에는 머리 좀 썼다 싶겠지만,

얼핏 봐도 뻔한 것을

애면글면 호도하려 하거나

사람의 속을 긁으려는 게

빤히 보입니다

그런 그들의 소리에

귀가 얇아 긁히면

흔히 속물이 되거나,

제 생각이 모자란

바보가 되기 십상입니다

덕분에, 마이크를 통해 들리는

대개의 이야기를

눈으로 소비하는 요령을

배운 지 한참 됩니다


그래도, 그 가운데에

사람이 만드는 이야기와 달리,

사람인 척하는 것들이

만들어내는 이야기를

구별하기는 어렵지 않은데,

사실, 그 수월함이 더 기분 나쁩니다

다 아는 것이지만, 사람은

사람인 척할 필요가 없으니

살던 대로 살면 그만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되다 만 인간이

기어이 사람인 척 '사람하려는' 것이 

뻔히 보이는 건, 견디기 어렵습니다



법정이 생전에 이렇게 썼습니다


<매스미디어는 현대인들에게

획일적인 속물이 되어달라고

몹시도 보챈다.

자기 언어를 갖지 못하고,

동작뿐 아니라 사고까지도

서로 닮아간다.

미디어는 그 매체마다

각각의 소리를 내는 듯하지만

외부의 소음으로

자기 내심의 소리를 듣지 못한다는 것은

분명 현대인의 비극이다.


소음에 묻혀 허우적거리는 우리들은

접촉의 과소에서가 아니라

오히려 그 과다에서 인간적인 허탈에 빠지는 것이다.

인간의 말은 침묵에서 나와야 할 것이다.>

                            (현대문학, 1972.12.)



반 세기 정도가 지나, 이걸 지금 읽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게 뭔 일인가 싶다가,

법정과 우리가 같이 늙는 건가 싶다가,

사람이 다르니 사는 모양이

달랐어야 하지 않나, 하는 마음에

괜히, 미안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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