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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뉘 Nov 17. 2023

별 걸 다

생각편의점

별 걸 다




겨울을 나기 위해

스스로 물길을 끊어

고사하는 나뭇잎을 보며

활활 불타고 있다고

우리는 가을을 읽습니다


인간이 죽을 때는

대략 일주일 전부터

먹지를 않는다고 합니다

혹은, 못 먹는 겁니다


아쉽게도, 몸은

'나'를 무시한 채,

나와 나라는 인간을

죽이는 방법을 

벌써 아는 겁니다


죽음은 그런 몸을 가진 '나'가

삶에 매달리게 하는 것 이외에

아무것도 해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죽음과 친하지 않은 걸 겁니다


그런 죽음에도

데커레이션이 필요할까요 




삶이 한 번뿐이어서

추억할 수 없는 것 가운데 

하나가 죽음입니다

죽음을 추억할 수 없는 것은

살아있기 때문이지요

그래도, 죽음을 추억하고 있다면

'나' 아닌 누군가의 죽음을

추억하고 있을 겁니다


늙는 것은 내 몸이

시간과의 약속을 지킨 겁니다

그런데, 오히려 시간이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때, 노년에 남는 건 

이벤트가 없어진

삶의 권태뿐인 한편,

젊음에게 경계를 가르칩니다


그래서, 늙어서 죽을 만해도

죽지 않는 것을 불행으로,

오히려 죽음을, 

인간에의 축복이라고 

보는 시각이 있기도 합니다




생각이 없으면

삶의 불이 꺼진 겁니다

그때는 훗날

죽어있는 시절로

새겨질 수 있습니다

"왜 그렇게 살았을까, 그때는"


이것을 약간 비틀어 보면,

철없이 산다는 말과 달리

생각 없이 산다는 말은

표면적 의미와 달리,

격렬하게 산다는 뜻입니다


흔히, 사랑에 빠졌을 때도

그렇게 말할 수 있는데,

사랑이 우리가 가진

독특한 감정이란 건

부정할 수 없을 겁니다




살기 위해 간 것이

분명해서 그런지, 병원에서는

흔히 연명치료거부서로 알려진,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을

까맣게 잊고 돌아옵니다


거기 갈 일이 없는 평범한 날에는

엄중히 작정을 해두고 있다가

병원에 들르면 까맣게 잊는 겁니다


다시 삶에 섞여

부산히 움직이는

수많은 '나'를 보며

혀를 차고 마는데,

죽음을 경계하는 곳이라

오히려 죽음을 가볍게 만드는

함정 덕분일 겁니다


우연이건 필연이건

삶을 깔끔하게 정리해 줄

종이가 아닐까 싶은 그 확인증은 

나를 동정의 대상에서

해방시킬 수 있는 

괜찮은 종이일 겁니다

(실제는 플라스틱 카드입니다만)


일상에서 죽음을 

인지하는 사람

그러지 않는 사람보다

 합리적인 생각과

적절한 행동을 하며,

삶을 대하는 태도 역시

긍정적이라고 합니다


삶의 한가운데 서서

죽음을 염두에 두면 보이는 것은, 

갖고 있지 않은 

가질 수 있는 것보다

가진 것을 제대로 즐기며

삶의 대차대조표 상

차변과 대변의 합이

'0(零, 혹은 無)'로 

수렴해 놓아야 할 자신의 

모습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래서 한참 더

소중할 수밖에 없는 

당신사랑하는 데도 

보다 합리적일 수 있다고

두 눈을 반짝이며

자랑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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