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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뉘 Oct 20. 2023

어쩌다 이상할 게 없다

생각편의점

어쩌다 이상할 게 없다




나는 어쩌다

기꺼이 정의뒤집

기법을 영리하게 배워

사람을 미혹하거나,

남 모를 치사함으로
협박이나 공갈을

일상 작업의 도구로 쓰며,

만인에게는 위법이 맞지만,

성추행이나 성폭행을 해도

대체로 철창 뒤에

갇히는 일이 거의 없는

사람으로 사는데,

일상으로 쓰는

'법대로!'라는 말이

보통 사람 쓰는 것과 달리

뭔 말인지 모르게 해 놓고

콘크리트 벽에 가둘 사람과

구두에 술을 따를 사람으로

입맛대로 솎아내는 도구로 쓰며,

법 외우는 시험 하나로

좋은 세상이기를 바라는

그저 좋은 사람들 앞에서

정의와 형평을

입에 담던 사명감을

한때의 객기로 여기면서

법 부리는 기술자가 된, 

강약약강의 기회주의자로서

다시 말하지만, 내가

어쩌다 대한민국

검사여도 이상할 게 없다



나는 어쩌다

비장한 공부 끝에

남 다른 문해력을 갖게 되어

그 능력으로

사회적 존경을 받고 있지만,

'인간을 읽는' 데는

거의 무관심한 덕분에,

상처받은 삶이 수상하므로

제대로 다시 살아보라고

등을 토닥여줘도 좋을 사람은

철창 안에 가두고,

제 주머니 채우느라 정신없던

동네 친구들에게는

느닷없이 자신이

별것에 관심을 갖고 있던

속깊은 애국자가 된 듯,

뉴스 헤드라인 몇 줄 읽은

알량한 기억은 감춘 채

"나라의 돈줄과 먹을 것이  
바닥나게 될 엄중한 시기에

국가 경제 안보의 측면에서라도

엄벌에 처하는 게 마땅하지만,

'이런 죄는 처음' 저지른 데다

잘못했다, 뉘우친다는 말을

좀 더 듣기 좋게 했다"

징역을 살

한참 살아야 할

지저분한 인간에게는,

집행유예이면

충분하다고 떠들고는

나라를 구한 듯
거만을 떨기도 하는데,

열받은 사람들이

그게 죄를 물은 거냐,
핏대를 세우며 따지면

그제야 제가 한 짓이

뭔지 잘 모르는 게

분명한 어조로, 법자(法者)의

독립성을 훼손한다느니,

생뚱맞게 '법에 맞게'가 아니라
오직 자신의 양심에 따른 게

뭔 죄냐 볼멘소리를 하기도 하는

강약약강의 기회주의자로 사는데,

그런 내가

어쩌다 대한민국
판사여도 이상할 게 없다



나는 어쩌다

속칭, 법을 쥐고 흔드는

주먹들의 사랑을 받으려고

주는 떡을 받는 요령을 익힌 뒤

들 발아래 턱 받치고 앉아

쓸 거리를 찾는 재주보다는

은폐, 기망, 협잡의 요령을 익혀서

핑계에 따라, 또는 대상에 따라

소식통을 만들거나,

세상사를 유사 소설로 쓰듯

남의 글에 토시 몇 덧붙이는,

복붙 전문가의 면모를 자랑하며

정서적으로 피식민지의

요령 좋은 완장 찬

인간으로 살지만,

그래도 되는 환경을

즐기는 게 뭔 죄냐

되잖은 심사에 더해,

나라 꼴이 어떻게 되든

압수수색을 할 때는

무슨 짜장면을 먹는지를

필히 알아두면 좋은

취재 소재로 여기며, 

혹시 국민의 대학에

'공정복붙'과(科)가 개설되면

그 분야의 고수로 초빙되어

'어떤 떡고물이 팩트건 아니건,

아무데나 쳐발라도 좋다'는

몰염치를 감추지 않는

강약약강의 기회주의자인 내가,

어쩌다 대한민국

기자여도 이상할 게 없다



나는 어쩌다

모든 생명을
가엾게 여겨야 하게 됐지만,

불가피함을 주장할 수 있다면,

꼭 그래야 할 필요를
느끼는 데에 회의를 갖고 있어도

성추행이나 성폭행 은폐에 대해

가책을 느끼지 않을 수 있으며,

걸맞은 보상이 없는 봉사를

계속할 수밖에 없는, 그래서

진짜 불쌍한 것은

머리 싸매고 공부했던

자기 자신이라고 여기면서

보통 사람들보다 더 나은

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때를 쓰는 건 잊지 않고,

밥그릇을 줄일 위험 앞에서는

사람에 대한 존중을 버리며,

제 자신의 존중을 지키기 위해서는

비겁한 침묵으로 긍정하는

강약약강의 기회주의자인,

그런 내가 어쩌다 대한민국
의사여도 이상할 게 없다



이상하지 않은 것은,

나라가 그 '나'들로서

대표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아는 나라 안팎의

평범한 이들이

훨씬 많다는 것이다

그래서, 평범한 이들의

삶이 힘들다면

'사람'으로 살려고 해서

힘든 게 맞을 터다

'사람'으로 살기 힘든 나라,

그걸 사람이 만든다는 것을,

그래서 사람같은 사람이 아니라

'사람'을 찾아야 한다는 것을

이런 식으로 배워야 하나 싶은,

그게 슬픈 요즘이다


(그러나, 아무리 삶이 고돼도

당신의 사랑스러움을

즐기지 못할 이유는 없기에

때로 행복할 수 있어

다행인 것도 분명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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