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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뉘 Oct 06. 2023

하거나, 하게 되거나

생각편의점

하거나, 하게 되거나





더불어 살면서도 이기심을 

그대로 갖고 있는 인간의

기본에도 맞는 이야기입니다만,

사람대접을 받으려면

사람 구실을 하라거나,

사는 게 죽는 것이라거나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거나,

오는 게 있으면

가는 게 있다고 합니다 

작용-반작용 법칙을

뉴튼이 정리하기 전에

삶을 사랑했던 우리가 

익히 알던 건가 싶습니다


사랑도 다르지 않은데,

다만, 가는 만큼 오지 않고

오는 만큼 보내고 싶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 법칙을 들어보지 못한

네 살짜리 아이가 

뭔가를 기대하고 있다가, 

기대가 깨지면

세상이 주저앉은 듯

땅바닥에 누워 발버둥 치며,

군중 속에 선 제 어미가 

얼굴에 핏 칠을 하도록 

울어대는 것도 대개

이 법칙을 본능적으로

이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누군가 애정을 드러내면

생소한 관계라 해도

부담을 느끼게 되는 것도

'인사를 하면 받아야지'라는

어른의 강요에 익숙해져서 

인사를 받지 않으면 

'제대로 된 사람'이

되지 못할까 걱정하면서

성장한 탓이라고 봅니다


우리는 엄마의 젖을 빨려고

끊임없이 울면서 컸고,

그의 품이 필요하면

세상사 모르는 눈빛을

보여 주기만 하면 됐습니다

그렇게, '주면 받는다'는 건

내 의지로 배운 게 아닙니다


때문에, 그대 자신이 

자신의 행동에 대해 

반작용을 기대한다는 것은

비난거리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작용과 반작용의 물리를

거부하는 티라도 내어야

'나'라는 개인이 된다는 것도

성장하며 배웁니다

관계종속적인 삶에 머물지

않으려면 그래야 할 테니까요




"그저 사랑하라"

이 주문이 옳은 이유는
조건이 없기 때문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사랑해 버려라'입니다만,

그대가 사랑하면

그대가 사랑하는 것에 대한

그의 반작용이 일어나는 건

어쩔 수 없습니다

관계에 예속된다 해도

누구나 그렇게 생겨먹었습니다

그대의 사랑을 달라고

졸라 댄 적이 없어도

'나'는 기대를 갖습니다


하지만, 그가 

그대의 사랑을 받았다고

그대를 사랑할 당위가 없습니다

그는 그를 살고 있는데,

그의 삶에 끼어들어

그대 삶에 의미*가 되어달라고

그대가 애걸한 겁니다


훗날, 삶이 차분해진 뒤,

그리고 그대가 그를 잊어

그라는 인간이 그대에게

무의미해진 뒤에라도

그는 자신이 사랑받은 기억을

흐뭇하게 추억할 겁니다

그것이 반작용일지는 모르겠으나

그대와는 관계가 없습니다

사랑은 과거나 미래가 아니라

오롯이 현재를 대표하는

감정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의 현 상황과 마찬가지로,

사랑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이해한다면, 자신의 사랑을

삶의 덤으로 생각해도 좋을 겁니다


'사랑을 느낄 수 있어서 좋다, 그리고 

사랑스러운 그에게 고맙다'


사랑을 해버린 뒤, 그것으로 

그대 자신은 넉넉할 겁니다

사랑이라면, 그대가 

그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그대를 사랑하는 것은,

그가 하는 사랑으로,

그대가 관여할 게 아니니까요


그대에게 그런 감성이

살아있다는 것을 

일깨워준 건 그대가 아니라

그 사람입니다

이 메마른 시대에

그 감성은 꽤나 낭만적입니다

물론, 그대의 사랑을 그가

당장 받아들이면 더 낫겠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그대가 참견할 게 아닙니다




정치인에 대한 지지의 이유가

내가 그의 지지를 

돌려받기 위해서는 아닐 겁니다

그가 가진 삶과 

그 삶이 말하게 하는 철학,

그리고 하려고 하는 정치와

그 가치관을 지지하는 것일 겁니다

내가 보지 못한

그의 쓰레기 같은 면을

어쩌다 보고

배신했다고 하는 건, 그래서

그대의 억지가 맞습니다

그런 그를 모르고

그에게 한 표를 던진 건

그대 자신이니까요

그래서 지지표를 던지는 순간

그건 버렸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마치, 제대로 사랑하듯이 말이지요






*삶의 장노년을 지나면서 보인 시인의 한심한 정치행보(물론, 후에 그때의 처신에 사과했다)와는 별개로, 사물을 들여다보려 했던 젊은 시절에 발표한 시, '꽃'에 담긴 그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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