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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뉘 Jul 12. 2024

직선은 지루하다

생각편의점

직선은 지루하다



스페인 건축가

안토니 가우디의 말이 아니라도

직선은 예술입니다

의미심장하다는 게 아니라

사람이 '꾸민' 것으로

인공적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자연에는 없는 것이지요


우리는 직선을 좋아합니다

꾸밈을 좋아한다는 건데,

불굴과 개척이란 추상 개념에

큰 호감을 가지도록 키워집니다

아예 즐기지 않는 건 아닙니다만

바람을 피하기보다 거스르고,

고난을 견디기보다 극복하는

자신을 칭찬하도록 말입니다


자유분방한 인간에게는 곧

직선이 지루해지고 맙니다

사실, 우리가 가진 현실의 삶은

직선을 주지 않습니다

그 꾸밈과 타협하지 않으면

삶이 괴롭습니다

지루함을 참지 못하는 인간을

삶이 이해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자유분방한 사람, 그리고

지루함을 참지 못하는 사람이

자연인에 가장 가까운 겁니다

우리는 괜히 행복해도 좋다 싶습니다




얼핏 봐도, 행복은

불행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이 두 행은 서로 맞붙어 있습니다

논리적으로 우리는

불행만큼 행복할 수 있는 겁니다

삶이, 우선 그 불행을 헤쳐가야 하므로

인생을 고해라고 하는 게지요


어느 길을 가든,

우리가 가질 수 있는 행복과

불행의 총량은 같아야 하는 것이 됩니다

우리가 행복하다기보다 불행하다면,

행복을 찾는 재주가 모자라거나,

행복을 대단한 그 무엇으로 여기는

망상이나 한심함 때문일 겁니다



대체로 우리는, 예를 들면,

지위와 명성, 반려, 배우자,

얼굴, 거울, 주머니의 돈 등

이미 가진 모든 것을

행복에 포함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익숙해지면, 불행으로  

치부하는 데에는 주저하지 않습니다




고 노무현 대통령이 한 말 가운데,

가질 수 없는 것에 집착하기보다

현재 갖고 있는 것을 이용하여

최대의 효능성을 키우게 낫다는

현실주의자다운 말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은

그다지 합리적이지 않습니다

천을 가지면 천백에 안달하며

이 길을 가면서 저 길은 어떨까를

끊임없이 생각하는,

불행하기 쉬운 동물입니다


흔히 이야기하듯

좀 살아보니, 내가 왜

좀 더 행복해하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클 때가 있습니다


울어야 할 때 왜 실컷 울지 않았나,

그냥 울어 버렸다면, 우는 동안에 

어떤 슬픔이든 눈물과 함께 스러지

행복도 즐겼을 게 분명한데 말이지요


두 번 살 수 없는 길이고

내가 지금 가는 길뿐입니다

우리가 선택한 어떤 길에서든

행복할 수 있어야 할 이유입니다


내가 선택할 수 없었다고, 어쩔 수 없이

이 길을 선택했다고, 이 사회의

구조에 의해 강요받았다고

아무리 칭얼거려도, 우리가 가진 길은

지금 가는 길뿐이 분명하고,

그렇다면 그 길이 행복해야 합니다


다시 말하지만, 세상은

살아 있는 자의 것입니다

'내'가 사는 겁니다

강요이든, 자발적이든 길은

내가 가는 길이고,

결국 내가 세상을 갑니다


그런데 우리는 매 1초를 죽어가고,

가진 건 현재,  1초뿐입니다

기왕의 삶이 고해라면, 1초만 가진 삶이

불행이라기보다는 행복일 수도 있습니다


합리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은

있을 수 있어도 그렇게 사는

사람은 흔하지 습니다

우리가 아는 가장 행복하게 살았던

합리적인 사람이라면,

무소유의 삶을 유지하려 했던

법정스님이 아닐까 싶습니다


상대적으로 비싼 값을 지불하고 보는

아무리 재미없는 영화라도

적어도 한 가지,

끝이 있다는 즐거움을 줍니다


마침내 한 시간 사십오 분이 지나

엔딩 자막이 뜨고,

혀를 차며 영화관을 나설 때

홀가분함이 행복하지 않던가요?


홀가분함에서 행복을 느낄 수 없다면,

우리는 영화를 열심히 보지 않은 겁니다

공부한답시고 책상 앞에 앉아 있지만

휴대폰 들여다본 시간이 훨씬 많은 아이의

너무나 열심히 한 공부와 같습니다


삶도 그럴 겁니다

열심히 살았다면, 삶의 뒤꼍엔

홀가분함이 남을 것이고

그건 행복이 아닐 수 없을 겁니다


삶은 내게 무엇을 이루었느냐고

묻지 않습니다

세상 불행 다 짊어진 얼굴로 살다

기껏 모든 걸 그냥 버리고 가냐고,

비웃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만, 삶을 즐겼는가고

물어주면 고맙겠습니다




직선은 예술이며,

굳이 말하면 추상일 겁니다

구상에 비해서는

그리기가 좀 어렵습니다

제대로 그리려고 하면 피곤합니다

예술은 예술로 두고

자연을 사는 게 덜 피곤합니다

즐기지 못할 예술은 쓸데없습니다


"좀 휘기는 했지만,

곧게 걸으려고 노력했고, 하고 있다"


아무도 들여다보려 하지 않아도

'나'의 삶이 벌써 예술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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