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컷과 낙엽

생각편의점

by 어뉘

수컷과 낙엽




인간이 끼리끼리 모여 사는 건 나약해서가 아니면, 각자도생에 미숙해서일 겁니다.

무리를 이루는 것이, 자연의 섭리와는 거리가 있는 공생뿐 아니라 '양심'을 주장하기에도 유리하기 때문이겠지요.


그 가운데 식물을, 햇빛을 이용한 광합성으로 펼치는 그들의 화학적 재주를 이해하면, 인간만큼 삶의 처절함이 없는 듯하지만, 양심을 구걸하지 않고도 진지하게 산다는 걸 알 겁니다.




아무래도 나 같은 'F'에게는 화학에 비해서 물리가 시처럼 느껴집니다. 그래서 후자가 조금은 더 재미가 있기 때문인지 그들의 물리적 생태를 즐깁니다.


가장자리가 톱니를 닮은 잔가시 형태의 나뭇잎, 바람에 휘청거리는 나뭇가지, 매끄럽지 않은 겉껍질, 넓고, 깊게 펼친 뿌리 그리고 잎사귀의 독특한 모양까지 나무는 자연친화적입니다.


거기 나뭇잎은 햇볕을 한 줌이라도 놓치지 않기 위해 하늘을 보고 자랍니다. 마치 아장아장 걷는 아이를 맞이하는 어미처럼, 해를 포옹하려는 모양새지요.


햇볕 넉넉했던 여름이 가고 가을바람을 제대로 맞으면 물관을 통해 흐르던 수분과 영양분이 끊기면서 잎이 메마르게 됩니다. 나뭇잎은 그 바람에 버티지 못하고 땅으로 떨어집니다.

하늘을 향한 채 떨어진다 해도 마른 잎은 한 줌 바람에 뒤집히면서 땅에 엎드린 모양을 하지요


나뭇잎은, 그 거친 테두리로 땅을 붙잡고 웬만한 바람에 쉽게 날리지 않습니다. 나무 밑동을 덮어 나무뿌리가 얼지 않도록 보호합니다.


(동시에 그 낙엽 아래는 의외로 후끈해서, 야생으로서는 여러 곤충 애벌레의 겨울나기에 최적의 상태를 유지해 줍니다.)


"아휴, 참나, 얘들은 수컷인가 봐! 땅에 찰싹 붙어 쓸어도 쓸어지질 않네!"


끔찍하다는 듯 나뭇잎을 내려다보며 짜증을 내는 이가 혹시 마초인가 싶지만, 지난 늦가을 아침, 낙엽을 쓸고 있던 일흔을 넘은 여성이었습니다.


현상을 해학적으로 보는 노회 한 그의 여유가 즐겁습니다. 내가, 순간 뻘쭘했지만, 즉시 클클거리며 웃음을 터뜨린 것은, 자신의 정체성을 잊지 않은 그와 흔한 수컷에 관한 통찰에 공감을 해서였겠지요, 아마도! 나는 그렇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으니까요.


"앗, 그런가 봅니다!"


땅에 붙어 빗자루질이나 바람에도 떨어지지 않는 모습에 그가 떠올린 수컷의 종족보존 습성은 그의 삶과 나의 삶 어딘가에 서로 양해한 바가 있는 것이겠지요.




그런 자연을 두고 조화롭다 하는 것은 자연을 잘 모르거나 조화를 잘 모르는 겁니다.


사는 데에, 그리고 스러지는 데에 최적화되어 있는 자연은, 그 자체로써, 무엇이 자연이고 조화인가를 제시합니다


나무의 생각이나 철학을 모르는 나로서도 당신의 사람 사랑 역시 나뭇잎 같아야 한다고 봅니다.




겨울을 지나고 있어 당신에게 다시 말하는데, 내가 겨울을 좋아하는 이유는 나 자신을 겨울 외투로 폭 감쌀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외투라면 겨울바람 앞에 선 당신도 내 품에서 녹여 줄 수 있겠기 때문입니다. 제 삶을 다하고 있는 나뭇잎의 마음과 같은가 싶습니다.


인간에게 안겨 보면 알겠지만, 두 팔을 자유롭게 쓰는 우리는 서로를 포옹하는 데에 최적화되어 있습니다.

게다가 당신이란 '사랑'이 내 품에 안겨 따뜻함을 찾는 게 당신뿐 아니라 나를 즐겁게 할 게 분명하니까요..


서로에게 언제 버려질지 모르는 우리이지만, 내가 딱히 좋은 사람이 아니라도 오늘, 사랑이 시키면 기꺼이 그에 따르는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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