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던 계절이었다.
그날따라 하늘이 유난히 예뻐 보여서 친구와 함께 건물 옥상에 올라갔다.
바람은 선선했고, 해는 호수 끝 자락에 걸린 채 아직 뜨거웠다.
친구는 그날 집에서 부모님과 다툼이 있었는지 이런저런 말을 꺼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들으며 함께 공감하고, 함께 화내다가
마지막은 이렇게 말했다.
“어쩔 수 없지... 가족이니까.
우린 아직 경제적으로든, 정서적으로든 독립을 못한 건 맞으니까.”
내가 공감을 못한다고 느꼈던 걸까.
이야기가 잠시 끊긴 순간, 친구가 나를 보며 말했다.
“너는 진짜 드라마에 나오는 집에서 자란 애 같아.
화목한 가정에서 사랑 많이 받고 자란 애”
그 말을 듣고 가슴이 조금 아려왔다.
하늘을 보니 어느새 해가 지고 어둑해져 있었다.
나는 옅게 웃으며 왜냐고 물어봤다.
“그냥 분위기가 그래. 그런 게 느껴져.
항상 잘 웃고, 꼬이지 않은 그런 마음을 가졌잖아.”
그 말을 들은 나는 이상하게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연기자가 연기를 잘했다고 처음 대중들에게 인정받은 것처럼
나의 연기가 꽤 그럴듯했다는 뜻이니까.
하지만 동시에 그 말은 내가 얼마나 많은 걸 숨기고 살아왔는지도 조용히 드러내고 있었다.
사실 화목한 가정은 아니었다.
좋은 기억도 있었지만, 그보다 오래 남아 있는 건
쉽게 말로 꺼내기 어려운 시간들이었다.
그리고 그 시간들은 생각보다 최근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어느 순간부터 나는 친한 친구에게조차 진짜 나의 이야기를 말하고,
나의 감정을 솔직하게 바라보는 일이 조심스럽고 어려워졌다.
말 대신 더 웃었고, 더 괜찮은 척을 했다.
즐거운 이야기만 골라 말했고, 그러다 보니 나는 점점 잘 웃는 사람이 되어갔다.
그렇게 만들어진 표정은 어느새 나의 기본값이 되었고,
나는 점점 내가 어떤 얼굴로 살아가고 있는지 알 수 없게 되었다.
이 상황에 어울리는 표정인지, 그저 익숙해서 짓고 있는 표정인 건지조차 헷갈렸다.
지금 내 웃음은 무엇을 말하고 있을까.
또 하나의 연기일까 아니면 진심이 섞인 웃음일까.
혹은 누군가 알아봐 주길 바라면서도 끝내 말하지 못한 마음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