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첫 아지트

by 보통날

아지트는 사람들이 자주 어울려 모이는 장소를 의미한다.

그 뜻을 처음 알았을 때는 조금 의아했다.

나에게 아지트란, 누군가와 함께 있는 곳이 아니라

오히려 혼자 숨어들어갈 수 있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언제나 한 곳일 거 같던 아지트는 시간이 지날수록 바뀌어갔다.

어느 날에는 집 근처 공원의 의자였다가, 아파트 옥상이었다가,

시간이 지나서 동네 한적한 곳의 카페로 바뀌기도 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오래 기억에 남는 건 나의 첫 번째 아지트이다.


나의 첫 번째 아지트는 어릴 적 살던 아파트 안 중앙 놀이터에 있던 원형놀이기구였다.

속이 텅 빈 통 안에 들어가면 바깥소리가 희미해졌고, 몸이 웅크려지면서 자연스럽게 누워지곤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마치 엄마 배 속에 다시 들어간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마음이 편해졌던 거 같다.

학원을 빠지고 더 놀고 싶을 때도, 친구와 싸워 마음이 속상했을 때도,

비 오는 날 갈 곳이 없을 때도 나는 늘 그 안으로 들어갔다.

그곳은 어린 나의 작은 몸과 마음을 모두 숨길 수 있는 첫 아지트였다.


어느 날 저녁, 집으로 전화가 한 통 걸려왔다.

엄마가 받은 수화기 너머로 앞 동 사는 친구가 엄마에게 혼나고 집을 나갔다고

혹시 그곳에 있냐고 물어보는 전화였다.

엄마와 친구 어머니, 그리고 내가 함께 동네를 돌며 친구를 찾아다녔다.

어린 마음에 누군가에게 잡혀간 건 아닌지,

이대로 영영 친구를 못 보게 될까 봐 종종 거리는 발걸음으로 숨이 가쁘게 뛰어다녔다.


그러다 문득 생각이 났다.

‘나라면 어디로 갔을까.’

그리고 자연스럽게, 그곳이 떠올랐다. 나의 아지트.


역시나 친구는 그 원형 통 안에 있었다.

나를 보자 놀라 눈을 크게 뜨던 얼굴이 아직도 선하다.

무언가 물어보기도 전에 친구는 혼나서 집에 있기 싫었고,

멀리 가기엔 무서워서 여기로 왔다고 울먹거렸다.

나는 조금만 있다가 같이 가자고 말하며,

통 안에 몸을 구부린 채 함께 잠시 누워 있었다.


이후 우리는 성인이 될 때까지 같은 아파트에 살았다.

종종 그 원형 아지트를 보며 그날의 이야기를 꺼내곤 했다.


“너 그때 집 나갔던 거 기억나?”

“그럼! 어떻게 찾아왔냐. 나 진짜 깜짝 놀랐잖아.”

“거기 내 아지트였거든?”

“나도거든!!”


이제는 몸이 커서 들어가지지 않는 우리의 아지트.

우리가 아지트를 떠난 게 아니라 아지트가 우리를 보내준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다른 아이들의 숨을 곳이 되어주기 위해,

여러 놀이터들이 새롭게 공사를 했지만 그곳만은 조용히 그 자리에 남아있다.


그날을 떠올리고 나서야 나는 아지트라는 단어의 뜻을 조금 이해하게 되었다.

아지트는 혼자 있기 위해 만들어지는 공간이 아니라

누군가와 같은 이야기를 나누고, 추억을 쌓았을 때

비로소 완성되는 장소라는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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