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브랜드>를 읽고
6시 30분. ‘아이폰’에서 울리는 알람 소리를 들으며 눈을 뜬다. ‘삼분의 일’ 매트리스에 누워 새벽에 무슨 일은 없었는지 ’네이버’에 올라온 뉴스를 쭉 훑어보고,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을 켜고 혹시 내가 체크하지 못한 소식은 없었는지 확인한 뒤에야 비로소 침대에서 일어난다. 아! 잊지 않고 자는 동안 침대 옆에서 열심히 일한 ‘플러스 마이너스 제로’ 가습기와 ‘양키 캔들’의 캔들워머는 끄고 나서야 화장실로 향한다. SNS 광고에 현혹되어 산 ’바디럽’ 샤워기에서 물이 뿜어져 나오고, 얼마 전 큰 마음 먹고 산 '이솝' 바디클렌저로 샤워를 한다. 다른 사람들은 잘 알아채지 못할 정도로 듬성듬성 났지만 ’와이즐리’ 면도기로 수염도 깔끔하게 밀어준다. 샤워를 마치고 나와서는 ‘빌리프’의 토너와 에센스를 얼굴에 바르고, 부엌으로 자리를 옮겨 죽은 빵도 되살려준다는 ‘발뮤다’ 토스터에 ‘효자 베이커리’에서 사온 식빵을 넣고서 ‘프릳츠’에서 샀던 커피를 내린다. 간단한 아침을 먹은 뒤에는 ‘필리’에서 정기 배송해준 비타민을 먹는 것도 잊지 않는다.
오늘 아침, 채 1시간이 되지 않는 동안에만 무려 15개의 브랜드를 경험했는데 이 중에는 생략된 브랜드도 많다. 중요한 건 이게 브랜드를 경험할 시간이 어쩌면 가장 짧은 아침 시간이라는 것. 옷을 입고 밖에 나가 생활하는 동안에는 보통 이보다도 훨씬 많은 브랜드를 보고 듣고 경험한다. 또 어떤 날에는 새로운 브랜드를 소비하기도 한다. 어쩌면 우리는 브랜드로 채워진 어항 속에서 하루종일 헤엄치는 물고기일지도.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저마다 다른 브랜드의 제품들을 선택하고 소비할까? 당연히 뚜렷한 이유나 선호도 없이 구매한 브랜드 제품도 있겠지만, 나의 경우는 대게 그 브랜드가 좋았기 때문이다. 책의 글을 빌려 정확히 표현하자면 브랜드가 나에게 그 상품이나 서비스를 통해서 내 삶을 더 괜찮게 만들어줄 것이라 약속했기 때문이다. 내가 좋아하는 브랜드 스토리를 가진 제품을 소비하며 정체성과 자아를 표현하는 것이고, 다시 말해 브랜드라는 향수를 통해 내가 내고 싶은 향기를 조합하는 셈이다. 브랜드 소비적 관점의 취향(趣向)은 가질 취(取)에 향기 향(香)을 써 ‘取香’이라고 표기하는 게 더 알맞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취향을 통해 소비한 브랜드는 곧 나를 풍기는 수단이 된다.
자, 그럼 이 쯤에서 필생의 과제가 하나 던져진다. 향수는 향수일 뿐 온전한 나의 향일 수는 없기 때문에 직접 조향사가 되어 나만의 향을 만들어야 한다는 과제! 저자 역시 프롤로그에서 '이 책이 여러분에게 당신이라는 브랜드개발에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며 언젠가는 '당신™'이 되길 당부했으며, 표지 우측에도 '당신이라는 브랜드에게'라는 부제가 적혀있다. 흥미롭게도 트레바리 '팔리는 브랜드'의 클럽장이자 <드디어 팔리기 시작했다>의 저자 브랜드보이님 역시 일관적으로 여러분은 어떤 브랜드가 되고 싶은지 혹은 어떤 브랜드를 만들고 싶은지 질문해왔는데, 어쩐지 브랜드보이님의 인스타그램 계정 이름 옆에 표기된 ®이 오늘따라 더 또렷하게 보인다.
브랜드라는 향수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가 직접 브랜드를 만들거나 브랜드가 되어 특유의 향을 내야만 하는 과제는 추상적일 뿐만 아니라 분명 어려운 일이다. 마감기한도 없고, 레퍼런스 삼을 좋은 향수가 많다는 것이 그나마 위안이 될 뿐. 다만 나 역시 오늘 밤 당장 과제를 제출할 것은 아니기에, 내 체취가 나다운 향기로 그득할 날을 꿈꾸며 무지 잠옷을 주섬주섬 갈아입고 잘 채비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