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숙집 이모 Jun 18. 2021

말 더듬는 친구에게 전하는 응원

넌 진정성이 있다!

초등학생 때,

내 점심 도시락 콩자반 반찬을 염생이(염소) 똥!이라고 골려먹던 남자애와 말하기 시합을 했었다. 멈추지 않고 오래 말하기! 가 시합의 내용이었다. 내 콩자반을 염생이 똥이라고 골려 먹은 녀석에게 지고 싶지 않았다. 머릿속으로 다음 할 말을 생각하면서 쉬지 않고 말을 이어 나갔었는데, 어느 순간 녀석이 입을 떡 벌리고 날 쳐다보고 있었다.

그 상황, 이겼는데 부끄러웠다. 정말 부끄러운! 기억이다.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숨고 싶고 가능하다면 그날의 기억은 '삭제'시키고 싶다.


"말 좀 천천히 해!"

자주 듣던 말이다. 말이 빨라 '따발총, 오토바이'라는 별명도 있었다. 머릿속에서 생각나는 말들을 맘에 담아두지 못했다. 궁금한 것도 많고 하고 싶은 말도 많아 잠시도 조용히 있지 못했다. 


성인이 되고, 직장을 다니고, 업무로 사람을 대하면서 내 빠른 말씨가 신뢰성이 떨어진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천천히 말하는 연습도 했었다. 하지만 천천히 말하겠다는 생각, 아니 다짐을 해야만 보통의 속도가 되었고 아무 생각이 없거나 흥분을 하게 되면 다시 빨라졌다. 한심하게도 그걸 고치지 못해 여전히 말이 빠르다. 정말이지 나는 천천히 조신하게 말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같은 동리 반장님 댁 아들,

00 이는 말을 더듬었다. 첫마디의 첫음절은 꼭 두 번씩 반복했다. 성질 급한 나는 참지 못하고 답답한 아이라고 우습게 여겼었다. 


몇 해 전 몇십 년 만에 동창회를 가게 되었다.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들을 맨손으로 볼 수 없어 막걸리 2박스를 사들고 모임 장소로 갔다. 

주차장에 도착해서도 '괜히 왔나, 살던 대로 살걸, 이제야 친구들을 보겠다고 오는 게 어색하구먼.' 하는 생각이 멈추지 않을 때, 

야, 혜, 혜정이. 어, 어서 와라. 

00 이가 반갑게 뛰어나와 맞이해 주더니 막걸리 두 박스를 번쩍 들고 앞장서서 친구들에게 갔다. 

세상에나, 이 친구는 여전히 첫음절을 두 번 반복하고 있다. 듬직해진 느낌 말고는 변한 게 없이 그대로였다. 

그 친구의 반가운 행동과 그때 그대로인 말투 덕분에 금세 내 마음도 학창 시절로 돌아갈 수 있었다. 


같은 동리에 살다가 이웃 동리로 이사를 간 후로 그 친구의 소식은 다른 친구들을 통해서 듣고 있었다. 그런데 다른 친구들을 통해 들리는 소식이 잦았다. 친구들끼리도 참 신기하게 생각하는 것이 그것이었다. 여기서도 저기서도 그 친구의 소식이 들린다는 것이다. 


이유인즉, 

동창들의 집안에 상을 당할 때 꼭 참석하는 친구란다. 여자 동창들의 상가 방문 범위는 자기 살던 동네뿐인데 그 상갓집에서 마주치는 친구가 00이라는 것이다. 소식을 전하는 뒤에 의리가 있다는 말이 따라붙었다. 


이 친구,

내 책 '하숙집 이모의 건물주 레시피''굴욕감을 주는 도움을 당당히 거절하다'란 꼭지에 나오는 인물이다. 

불우이웃 돕기 대상자를 추천할 때 '이, 이혜, 이혜정을 돕자'라고 말하려다가 내게 심한 욕을 들었던 그 친구, 하루 종일 내게 욕을 먹고, 보이지 않을 때도 욕을 먹었던 *주다. 


책이 출간된 후, 

책에 네가 언급되는데 그런 사연으로 등장한다고 말을 전했다. 불우이웃 돕기 사건에 대하여는 동창회서 만나 이야기를 했을 때 기억이 없다고 해서 다행이었으나 책 속에 등장하는 것은 별게의 문제라 '내가 심한 욕을 했고 그대로 책에 실려있다'는 이실직고를 했다. 


그리고 며칠 뒤 

"책을 구입해서 읽었다, 일 년에 한 권의 책도 읽지 않는데 네 책은 이틀 만에 다 봤다, 재미있었고 내용이 배울게 많았다."며 과한 칭찬을 첫음절은 여전히 두 번씩 반복하며 전해 주었다. 


친구는 열심히 자신의 몫을 넘치게 하는 멋진 삶을 살고 있어서 자랑스럽다고 품앗이 칭찬을 해주었다. 이 말은 진심이었으나 이야기가 너무 진지해지는 것 같아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웃으며 말해주었다. 

"마 말도 잘하고, 새 생각을 글로 쓴다는 거 대단하다. 나 나는 생각을 말로도 표현하지 못하는데 말이다. 마 말도 자꾸 더듬거려서 창피하기도 하고 말이지."

"그러니까, 그게 있잖아, 말을 빨리 하는 게 사실은 좀 부끄러워. 예전에는 생각나는 대로 말을 다 해버렸는데 지금은 생각을 담고 있다가 글로 쓰기도 하고, 이제야 철이 드나 봐"

"조 좋겠다, 나는 말이라도 생각나는 대로 했으면 좋겠다."

"넌 말에 진정성이 있어서 좋아, 그래서 네가 하는 말은 집중해서 듣게 되잖니,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사람 드문데 그 드문 사람이 너야."

"그, 그렇게 말해줘서 고맙다, 그 그런데 깔보는 사람들도 있어, 사업상 하는 말도 자꾸 더듬거리며 나오니까, 이 일하는 것도 떠듬거리는 줄 아는 사람도 있다니까."

"나쁜 시끼들이네, 말은 뻔지르르 기름칠해서 하고 일을 엉망으로 하는 사람들에게 당해 보라 그래라, 네가 말을 더듬어도 진실되고 일도 흠 없이 하는 훌륭한 사람이란 거 그때서야 알 거다. 너는 훌륭해, 그러니까 그런 사람들에게 당당하게 대해, 알았지?, 힘내자."


친구는 자신에 대한 첫인상이 말 때문에 불리하다는 말을 했다. 사업 관련 수주를 받으려 해도 상대 업체 담당자가 함부로 대할 때가 있다고 했다. 말을 더듬는 것을 고치려고 많이 노력을 했는데 성격이 급해서 그런지 잘 안된다고 속상한 마음을 전했다. 


말을 잘하면 좋겠다는 맘 안다. 내가 말을 천천히 조신하게 하면서 신뢰를 얻고 싶은 맘과 비슷할 것이다. 하지만 나와 다른 것은 그 친구의 말에는 막걸리 두 박스를 번쩍 들어 올리는 힘보다 더 무거운 힘이 있고 행동엔 의리가 있는 친구란 걸 동창들 대부분이 알고, 일에나 사람에게 진실하다는 것 하늘도 땅도 안다. 말의 첫음절이 두 번 반복돼도 말의 내용과 행동이 일치하는 훌륭한 사람이란 걸 친구를 겪어보면 바로 알 수 있다. 


그래서 말이 빨라서 부끄러운 내가 말을 더듬어서 속상한 친구에게 응원을 보낸다. 

"너의 더듬거리는 말속에 담긴 진정성이 더욱 빛나기를 바란다, 아자 파이팅이다!!"


하숙집 이모의 책 소개

하숙집 이모의 건물주 레시피

http://www.yes24.com/Product/Goods/97388147




매거진의 이전글 거꾸로 쓴 이력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