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잠을 사랑하는 남편이 토요일 이른 새벽부터 부지런을 떨며 갱년기로 잠을 설쳐 비몽사몽 중인 나를 억지로 깨웠다. 3월이 되면서 토요일에 여유 있는 시간을 만들어 보자고 의기투합을 하고 금요일 늦은 밤까지 다음 주를 위한 큰시장을 보고 정리도 했다. 그러니까 난 조금 더 자야 했다.
맛있는 거 사줄게, 차에서 자, 처갓집에 가서 화덕 만들자! 비위를 맞추며 나를 일으켜 세웠다.
일단 잠에서 깨면 더 못 자는 성질 고약한 내가 졌다. 겨우 세수만 하고 남편을 따라 나섰다.
남편이 이렇게 하는데는 이유가 있었다.
1. 묘목을 사러 나무시장을 가야 하고,
2. 혼자 계신 아버님 찾아뵙는 당번 날이며,
3. 처갓집의 화덕을 다시 만들어 드리고 싶어서다.
1번은 남편의 취미생활이니까 혼자 가면 되는 일이고, 2번도 미리 준비해 놓은 음식 혼자 가지고 다녀와도 되는 일이고, 3번은 아주 급할 게 없어 보였다.
하지만 못 이기는 체 내가 따라나선 이유는,
요즘 대파값이 너무 비싸서 엄마 밭에 있는 쪽파를 뽑아오려는 욕심이 있었다. 그리고 엄마 집에 간 김에 파김치를 담그고, 고춧가루 같은 양념도 얻어 올 생각이었다.
여하튼 남편을 따라 나무시장을 다녀서, 시아버님과 점심을 먹고, 남편이 놀이터에서 온갖 과실수 심는 것을 구경하다가
시멘트와 몇 가지의 재료를 사서 친정으로 갔다.
참 신기한 일이 있다.
일터에서는 좋은 말로 말하면 세상 느긋한!, 나쁘게 말하면 세상 게으른! 사람이 처갓집만 가면 세상 부지런한! 사람이 된다. '시골에 가면'이 아니라 '처갓집에 가면'이 정확한 표현이다. 시골 본가에 가서는 낮잠도 자고 티브도 보면서 게으름을 부리는데 처갓집만 가면 '너무 부지런한 김서방'이 된다.
이번에도 처갓집에 도착하자마자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마당으로 나가서 화덕을 만들기 시작했다. 고민할 것도 없고 물어볼 것도 없이 후다닥 만들었다.
이전에 있던 화덕(이것도 남편이 엄마를 위해 만들어 놓은 것이었다.)은 드럼통을 반으로 나눠서 사용한 것이었는데 그동안 지펴댄 불에 부식되었고 솥도 바닥에 구멍이 뚫려서 더 이상 사용할 수 없는 지경이었다. 그것을 여러 날 전에 와서 보고는 새로 만들어 드리고 싶었던 것이다. 이번에는 '장모님 무거운 것 들고 다니실 때 잠시 내려놓을 곳이 마땅치 않아 위험해 보였다.'며 화덕 옆에 부뚜막도 올렸다. 굴뚝도 만들었는데 얼핏 첨성대 느낌이 난다고 칭찬을 해주었더니 너무 과장이 심하다 말하면서도 얼굴엔 기분 좋은 웃음이 가득하였다.
생각보다 화덕의 주변이 커져서 준비해 간 시멘트가 부족해 벽을 바르는 일을 못한 게 흠이기는 하나 당장 엄마가 사용하시기에는 아쉬움이 없어 보였다. 그래서 그것을 사용하실 엄마더러 구경하시라 했더니 뭘 그렇게 푸짐하게 만들어 놓았냐고 감탄을 하셨다.
시험 삼아 아궁이에 신문지와 마른 가지 몇 개를 넣고 불을 지펴 보았다. '뭔가 그럴듯해 보였다. 부뚜막이 예술이다.' 고 평가해 주었다. 내가 영혼을 듬뿍 넣어 칭찬을 했건만 뭔가 아쉬운 남편은 다음 주에 다시 와서 벽에 시멘트를 바르자고 했다. 나는 토요일은 여유로운 아침을 보내고 싶다고, 화덕 벽 바르는 것은 미뤄도 될 것 같으니까 그러지 말자고 했다.
자매들 톡에 작업현황을 올렸다.
언니들이 나보다 더 좋아했다. 김서방이 고맙다는 둥, 화덕 앞에서 불을 때며 앉아있고 싶다고도 했다.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집에서 보는 남편과 친정집에서 보는 남편이 같은 사람이란 사실이 신기하다. 집에서는 얄밉고 친정에서는 고마운 사람이다. 언젠가 엄마한테 잘하는 게 마누라가 이뻐서 그런 거냐고 말도 안 되는 질문을 한 적이 있다. '그것도 맞지만 처갓집엔 할 일이 너무 많이 보인다.'라고 대답했었다. 남편의 부지런함에는 그런 이유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