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는 사과를 따 먹을 수 있을 것이다

커지는 기대, 넓어지는 화단

by 하숙집 이모

작년 초 남편이 사과를 먹다가 씨를 따로 분리해 놓았다.

그걸 심을 거냐고 내가 물었다.

"나중에 사과를 따 먹어 보려고."

남편의 대답에 언젠가는 사과를 먹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씨앗을 며칠 동안 말렸다가 작은 화분에 심고 물을 주는 남편에게 어차피 물을 줄 건데 왜 말렸냐고 말했다.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 설명을 해 주었으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나는 남편의 화초 키우는 취미에 관심이 없었다. 그 말도 물었다기보다는 왜 일없이 말렸을까 하는 잔소리였을 것이다. 무슨 싹이 났는지 어떤 꽃이 피었는지 자랑을 하며 놀이터(옥상)로 놀러 오라는 언급이 있을 때 어쩌다 선심 쓰듯 커피를 들고 올라가서 구경만 하고 내려왔었다.


그러던 내가 변했다.

그냥 변한 정도가 아니라 180도 바뀌었다.

일 년에 대여섯 번 올라가던 옥상을 하루에 한 번뿐 아니라 두 번도 가고 있다.


처음엔 원룸으로 이사를 온 후 비좁은 방이 답답해서 옥상에 올라갔고 그 자리를 차지한 화초들을 구경하다가 남편의 공간을 간섭하기 시작했다.

"이걸 왜 여기다 놔요?, 저기 좀 치워요, 빈 화분은 한 곳에 모아요." 이런저런 잔소리가 더해질 때,

"당신 화단을 만들어 줄까?"

"싫어, 신경 써야 할 일이 생기는 게 싫어요, 그냥 계속 당신 놀이터 하세요."

"물도 내가 주고, 풀도 내가 뽑고, 분갈이도 내가 할게, 이름만 당신 화단으로 하자."

"그럼 약속하세요, 소유권만 내가 갖고 의무는 당신이 갖는 거로."

"알았어."

불평등 조약이 이뤄졌다.


내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남편은 못쓰는 책상 유리에 다리를 달아 다육이들을 따로 분리해 놓았다.

"이건 당신 화단이야, 그러니까 마음에 드는 화분을 가져다 놓고 예쁘게 가꿔봐."

"약속이 틀려요, 일은 당신이 한다고 했잖아, 난 소유권만 갖기로 한 거 기억 안 나요?"

"그랬지, 내가 하긴 하는데 당신이 관심을 갖고 키워보라는 소리지."

왼쪽은 내 화단 오른쪽은 남편의 놀이터 전경

그래서 한 평도 안 되는 내 화단이 생겼다.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는 장소에 유리 탁자를 만들어 내 화단이라는 이름만 달아주었을 뿐인데 공간에 애착이 생겼다. 그곳으로 사과나무 두 개를 옮겨 놓았다. 사과가 언제 열릴지는 모르겠지만 씨앗에서 싹이 나고 잎이 나고 키가 제법 자라서 나무 모양이 나기 시작한 그것을 내 것이라 하고 싶어 졌다. 작년에 심어 놓은 그대로 작은 포토에 있어서 '집이 작아 답답하겠다고 이사를 시켜줘야 하는 것 아니냐.'는 잔소리를 하다가 그 정도는 내가 해도 괜찮을 것 같아 적당한 크기의 화분에 분갈이를 해주었다.

사과씨앗과 새싹 그리고 내 것이 된 후 분갈이 한 사과나무

분갈이를 해 놓고 뿌리가 자리를 잡았는지, 몸살을 앓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어 시간만 나면 찾아가게 된 것이다. 다행히도 사과나무는 뿌리를 잘 내렸고 반듯하게 자리를 잡았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으나 내 사과나무에서 맛있는 사과를 따 먹을 수 있을 것이다라는 기대를 안고 내 화단 앞에서 쪼그리고 앉아 있는 시간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뿐만아니라 날이 갈수록 내 화단이 점점 넓어지고 내 할일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그러다 문득 '내가 왜 여기서 이러고 있지?'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하지만 화초를 바라보는 시간이 꽤 좋아서 그냥 남편의 놀이터 한 귀퉁이를 내 놀이터로 삼기로 했다.


하숙집 이모의 책소개

하숙집 이모의 건물주 레시피

http://www.yes24.com/Product/Goods/97388147


매거진의 이전글처갓집 화덕을 만드는 사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