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말까지는 낮시간에 못 채운 걸음을 인증하느라 잠옷을 입고 안방에서 거실로 주방으로 현관으로 아이방으로 걸어 다녔었다. 그런데 겨우 네 발짝 크기의 원룸 생활은 답답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51평 아파트에서 5평도 안 되는 원룸 두 개로의 이사,
버려도 되는 것은 다 버리고, 버리기 아까운 것조차 버렸는데 원룸까지 따라온 짐들이 너무 많았다. 방 한쪽 귀퉁이에 박스채 쌓고, 바닥에 앉은뱅이책상을 놓고 헹거에 옷가지를 걸어 놓았더니 좁은 방이 더 비좁아져 울화통이 터질 지경이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형편이 나빠진 것도 아니고 아파트가 팔렸는데 멀리 이사 갈 처지는 안되고 원룸은 공실이 생기고 이런저런 이유로 내가 선택한 생활이건만 답답한 마음과 내 결정은 서로 연관이 없는 일처럼 타협이 되지 않았다.
울화를 풀어낼 대상이 필요했다. 답답한 마음을 남편에게 쏟아냈다. 일을 미뤄서 시간이 없다는 둥, 늦게 일어나서 내가 정신이 없다는 둥, 쉬게 해주지 못하고 계속 일을 하게 한다는 둥..... 방에 대한 언급은 없이 전혀 엉뚱한 것에 트집을 잡고 성질을 피웠다.
남편도 나와 다를 바 없었다. 내 속도 그 속도 간장 종지기처럼 좁고 오목해졌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우리가 사용하는 방이 두 개라 아파트에서처럼 각방을 쓸 수 있다는 것이었다.
아무 말 없이 밥만 같이 먹고 각자의 방으로 들어갔다.
그러던 차에 명절을 며칠 앞두고 둘째 아들이 내려왔다.
자식 앞에 속없는 나는 아들 곁에서 놀고 싶었다. 남편의 방에만 침대가 있던 터라 그 방에서 쉬고 있는 아들에게 갔는데,
어. 어.. 어......,
남편이 지게를 만들고 있었다. 지푸라기로 등짐 끈을 새끼 꼬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이쁘다~."라고 해버렸다. 아직 삐져 있어야 하는 건데 생각할 틈도 없이 말이 나와버렸다.
"흠. 지게 바구니도 만들어야겠네요." 정신을 차리고 투박하게 말했다.
아들이 비스듬히 누워 있는 침대로 올라가 장난치고 농담하면서도 눈은 남편이 만들고 있는 지게만 보였다.
스르르, 속이 풀리는 소리가 들렸다.
지게,
남편이 지게를 만들고 있다는 것은 화해를 하고 싶다는 신호다.
브런치 발행 글 중 '정임이의 막걸리'를 써 놓고 지게 사진을 넣고 싶었으나 마음에 드는 것을 찾지 못했었다.
그림처럼 이쁜 지게를, 꽃잎이 날리는 풍경 속 지게 사진을 글 속에 넣고 싶었었다. 결국 맘에 드는 사진이 없어 막걸리 사진을 넣었다가 관광지에서 찍은 지게 사진으로 바꾸어 놓고도 마음에 차지 않았었다. 그 글에 애착이 많다는 것을 아는 남편이 나중에 이쁜 지게를 만들어 주겠노라고 약속을 했었다. 그리고 바쁜 생활 속에서 아주 잊은 줄 알았었는데 한옥학교에서 실습하고 버려지는 나무를 다듬어 성질부리는 아내를 달래기 위해 지게를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다음날,
시골 아버님 댁 마당에서 남편은 칡넝쿨로 지게 바구니(바지게)를 만들었다.
바지게를 만드는 남편, 완성된 지게, 지게 다리도 바지게와 같은 색상으로 바꿨다.
완성된 지게를 마당에 세워 놓고는 한마디 한다.
"이쁘지? 그러니까 화내지 마."
"지게가 이쁘단 거야, 당신이 이쁘단 거야?"
"둘 다."
"알았어요. 이뻐서 봐줄게."
"내가 이쁘단 거야, 지게가 이쁘단 거야?"
난 손가락으로 남편의 손등을 툭툭 건드리며,
"지게 이뻐요. 언니 거랑 이모 꺼도 해줄 거지?"
눈웃음을 치면서 청탁도 했다.
"여러 개 만들려면 칡넝쿨을 더 잘라와야겠는데 산에 갈까?"
"흐흐." 지게 선물에 화가 풀렸다. 사실은 지게를 본 지난밤에 이미 풀렸었다. 아니다. 화낸 것을 미안해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