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멋있다

남편 칭찬하기

by 하숙집 이모

이 책 읽어봐요.

읽고 싶은 사람이나 보셔.


그만 자요.

쉴 때는 그냥 내버려 두면 좋겠네.


자전거를 타고 대청댐에 다녀올 거야.

입으로 대청댐 가는 거면 나도 가겠네요.


무슨 말을 해도 엇박자였다.


그렇게 덜커덩 거리는 상태로 봄, 여름 지내고 가을을 맞이하였다.

나는 책 '움직이는 힘'을 읽으며 운동이 하고 싶어 졌다.

그날이 9월 20일이다. 일단 100일을 작정하고 아침 운동으로 달리기와 걷기를 시작했다.

두 주가 지나자 남편이 따라 나오더니 그다음 날부터 10분 먼저 일어나 나를 깨우는 부지런을 떨었다.

난 그런 남편의 행동이 고마워 토요일과 일요일은 자전거를 타자고 했다.

처음엔 왕복 합 20킬로미터 정도를 탔고 조금씩 늘려 나갔다.

10월 한 달 동안 새벽 시장을 가는 날을 제외하고는 아침운동을 함께 하며 사이가 퍽 좋아졌고 남편의 "자전거 타고 대청댐까지 다녀오겠다."는 공약을 이루어 주고 싶어졌다.


대청댐 한 번 가시죠.

좋지. 그런데 당신은 어려워서 안돼.

나는 차를 타고 가고 당신은 자전거를 타고 대청댐을 가요, 내가 중간중간 대기하고 있다가 간식도 같이 먹고 잠깐씩 쉬었다가 대청댐에 먼저 가서 기다렸다가 당신이 도착하면 함께 차 타고 돌아오는 걸로 하자.

그것도 괜찮은 방법이네.

우선 편도로 연습을 하고 괜찮으면 다음에 완주할 계획을 품고 11월 두 번째 토요일(14일)은 대청댐에 가보기로 했다.


11월 7일 토요일, 다음 주 대장정에 앞서 예행연습을 하기로 했다. 둘이 자전거를 타고 세종시 지인의 집까지 다녀오기로 한 것이다.

공주보를 기준으로 세종보를 지나 세종 3 생활권의 제일 끝 지점에 사는 지인의 집까지 왕복하면 대략 60킬로 정도가 된다고 남편이 설명을 하며 무리하지 말고 아무 때든 힘들면 돌아오자고 했다.

간식으로 먹을 과일과 빵과 커피를 가방에 넣고 헬멧 쓰고 마스크 쓰고 오전 7시 30분 공주 우리 집에서 출발을 했다.

날씨도 좋고 바람도 좋고 경치도 좋고 컨디션 또한 좋았다.

금강 옆으로 나 있는 자전거길을 달리며 아, 좋다, 소리를 수백 번은 했는데, 초보 라이더인 우리에겐 고글이 없어 날파리가 눈으로 날라 들어오는 공격을 받아야 했다.

그래서 실눈을 뜨고 페달을 밟아야 했으나 그동안 주말마다 연습한 덕에 언덕을 올라가는 것이 비교적 수월해졌다. 어렵지 않게 세종보 근처에 도착해서 준비해 간 커피와 빵을 먹으며 1차 휴식을 즐겼다.


이야, 야외에서 먹는 커피는 집에서 먹던 커피보다 10배는 맛있다.

그 커피가 어제 먹던 커피와 같은데 장소가 다르다고 이렇게 맛있을 수가 있냐고, 자전거 타고 놀러 나오는 게 이렇게 좋은 걸 왜 이제야 했는지 모르겠다고, 이제부터는 자전거 타고 가끔 야외로 나가자며 맞장구를 치고 노닥거렸다.


잠시 쉬고 세종시의 지인댁 근처까지 단번에 달려서 도착을 하긴 했는데 주말 오전에 남의 집을 방문하는 행위는 민폐가 되겠다. 그래서 자전거를 타고 일단 대청댐으로 가보자고 했다. 남은 거리가 대략 30킬로미터! 편도로 계산하면 거의 반은 온 것이다. 준비 없이 나왔으니 가다가 힘들면 콜벤을 타고 미련 없이 집으로 돌아가자고 했다. 그렇게 둘이 겁 없는 합의를 하고 대청댐으로 향했다.


가다 보니 지난여름 비에 길이 끊겨 다리 위로 올라가서 강을 건너야 한다는 안내문이 있다.

허걱, 가장 힘든 코스다. 경사도 높고 길이 구불구불하다. 남편이 앞서 올라가서 기다리고 있고 나는 기어 변속을 하며 낑낑거리고 겨우 올라가는데 내 뒤를 따라 올라온 꽁지머리 여자분이 나를 지나쳐 씨잉 앞으로 달려가 버렸다. 입을 떡 벌리고 그녀의 멋짐에, "와, 와~~" 저절로 감탄이 나왔다.


세종시 야영장을 지나고 대전이라는 이정표가 보였다. 신탄진을 지나 청주로의 이정표가 또 보이는데 이때부터는 거리가 좁혀지지가 않았다. 이정표가 계속 거짓말을 했다. 자전거길의 작은 이정표는 대청댐 17.5킬로미터 지점이라고 쓰여 있는 것을 보았는데 한참을 달리다 본 다른 이정표엔 대청댐 18킬로 미터 지점이라고 쓰여 있다. 또 8킬로미터 지점이라고 쓰인 것을 보고 열심히 달려왔건만 이번엔 8.5 킬로미터 지점이라고 쓰여 있다. 뭐냐, 앞으로 왔는데 거리가 늘어난 거냐, 자전거가 뒤로 간 거냐, 힘이 들기 시작하니 엄한 이정표에 화풀이를 했다.

여하튼 대청댐과의 거리가 한자리로 바뀌기 시작했고, 다리의 힘도 풀리기 시작했고, 다음날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어쩌다 여기까지 왔으니 대청댐은 가봐야 했다. "괜찮냐?"라고 자꾸 묻는 남편에게,

당신은 괜찮냐고 앵무새처럼 대답해 주었다.

대청댐이 가까워 오자 남편이 앞서 가다 뒤에서 따라오다를 반복하며,

야, 우리 마누라 엄청 이쁘네, 와 진짜 이쁘네를 남발했다.

알아요, 나도 알아, 내가 미친 거.


처음에 그렇게 이쁘던 경치를 즐길 틈이 없다. 마음은 대청댐으로만 향했다. 일단 도착해서 생각하자. 내가 미쳐서 여기까지 오기는 했지만 갈 때는 콜벤을 부르자고 나를 달래며 겨우 대청댐에 도착을 했다.


와~ 도착했다. 흐흐흐,

계속 웃음이 나왔다.

'어쩌다 나는 여기까지 온 거냐.'

후들거리는 다리를 진정시키고 화장실로 가려는데, 웬 여자분이 남편 이름을 불렀다.

엥, 이곳에서 초등학교 동창을 만나다니, 마스크를 쓰고 있는데 얼굴을 알아보신 그분의 눈썰미가 훌륭하시다.

대전에서 사신다고 그래서 가끔 자전거를 타고 대청댐엘 오신다나, 그곳에서 동창을 만난 것이 신기하다고 둘이서 신이 났다.


화장실을 다녀오고 먼 경치를 구경하느라 잠시 걸으니 다리가 풀리기 시작했다. 여기까지 온 것 나름 대견하고 자랑스러워 여기저기 단톡에 인증샷을 날리며 자랑을 했더니, 한 지인의 답변이 재미있다.

"야, 바보야, 택시 타고 와, 너 내일 죽었다."


준비해 간 사과와 감을 깎아 주며 남편이 계속 웃었다.

야, 마누라 이쁘네, 어떻게 이렇게 건강해졌지! 아침 운동을 하더니 진짜 건강해졌네,

에휴, 이제 어떻게 해요?

내 머릿속은 온통 집에 돌아갈 걱정뿐이었다.


오후 12시 30분이 넘었다. 집에서 7시 30분쯤 출발했으니 5시간을 넘겨 버렸다.

배가 고파서 서둘러 내려왔다. 언덕 아래에 호떡 파는 곳이 있다. 점심 전이지만 그냥 지나칠 수 없다. 호떡 4쪽을 사서 비축 식량이라며 자전거에 매달았다.

그리고 아까 전에 찜해 두었던 보리밥집으로 향했다. 잠깐 왔는데 도착이다. 대청댐을 향해 갈 때보다 내려올 때의 거리가 짧게 느껴졌다.

이렇게 가까이 있었단 말이지!

(왠지 거리가 짧아진 이 느낌! 그걸 무시했어야 했다)


밥을 주문한 후 조금 뒤에 나왔다. 보리밥에 고추장을 넣고 쓱쓱 비벼 한입 가득히 먹는데 꿀맛이다. 된장찌개도 맛있다. 이 정도면 점심식사는 합격이다. 맛있는 밥을 먹어서 그런지 기운이 돌아왔다.


일단은 가보는 걸로, 가다가 힘들면 그때 콜벤을 불러요.

그럼 서둘러 출발하자, 요즘은 날이 빨리 어두워진다.


밥을 먹은 뒤라서 그랬는지 정말이지 힘이 났다. 대청댐으로 가던 길은 끝없이 멀었는데 돌아오는 길을 그새 익숙해져 짧아진 느낌이다. 청주에서 신탄진을 지나 대전을 넘고 이정표에 세종이나 공주의 남은 거리가 보였다. 31킬로 지점, 그래, 갈 때까지 가보자.

사실은 이때 포기해야 했다. 무릎 관절이 시큰 거리기 시작했고 허벅지 앞쪽이 팽창되며 통증이 왔다.

마음속 두 소리가 옥신각신 난리가 났다.

택시 불러, 안돼, 내일 죽어, 설마 죽겠어, 별것도 아닌 것에 고집부리지 마, 포기할 거면 아까 했지 지금 하면 억울해.

남편도 나랑 비슷한 상태인지 자꾸 갈만하냐고 물어왔다. 마음속 말과 다르게 대답했다.

난 괜찮아요. 당신은 어때요?

나는 진짜 괜찮은데, 정말 괜찮겠어? 택시 부를까?

으이씨, 말하지 마요.

그러니까 괜찮냐고?


대답도 안 하고 그저 입을 악물고 페달을 밟았다. 세종시에 도착, 오후 4시가 넘었다. 지인의 아파트 단지가 보이는 곳에서 호떡을 먹으며 겨우 한마디 했다.

저기서 그냥 놀았어야 하는데....


이제부터는 택시 소리를 할 수가 없다. 끝까지 가야 한다. 자전거를 끌고 가는 한이 있어도 택시는 탈 수 없다. 말이 없어졌다. 윗니로 아랫입술을 물었다. 언덕을 오를 때는 자전거에서 내렸다. 페달을 밟을 힘이 없다. 남편은 이제 앞서지 않았다. 혹시 힘들어서 그런가 하고 물어보면 내가 걱정돼서 앞서 갈 수가 없단다.

그래서 남편 걱정시키지 않으려 마지막 힘을 내기로 했다.

날이 어두워졌다. 그동안 간간히 보이던 사람들도 보이지 않았다. 자전거 도로 위에는 희미한 조명이 있다.

그거라도 있어서 다행이었다.

공주의 다리가 보였다. 반갑다. 아파도 집에 가서 아프기로 하고 있는 힘을 다해서 페달을 밟았다. 둔치가 눈앞에 보였다. 거의 다 왔다. 이렇게 힘들 줄 알았더면 자동차를 둔치 주자장에 두고 갈걸 하는 후회가 밀려왔다. 도로 위로 진입하기 위해 자전거를 끌고 올라왔다. 그리고 다리를 넘고 한참을 지나서 우리 집에 도착했다.


집에 도착했음을 대청댐 위에서 소문낸 여기저기의 단톡 방에 알리고 막내아들이 미리 주문해준 치킨을 먹고는 뜨거운 물을 받은 욕조 속에서 몸을 풀어준 후 누워버렸다.

잠을 들기는 했는데 시간 단위로 깼다. 온몸이 아파서 잠이 오질 않았다. 맨스래담 로션을 덕지덕지 바르고 방의 온도를 높이고 누웠는데도 덜덜덜 떨렸다.

입술이 다물어지지 않고 자꾸 떨어졌다. 붙었다 하며 으드드 으드드 소리를 냈다. 그러면서 걱정이 되었다. 저 사람은 괜찮은 거야? 내일 아프다고 하면 어쩌지? 각 방을 쓰고 있어 상황을 알 수 없고 걱정은 되지만 내 몸이 너무 아파 남편 방으로 가볼 여유가 없다.

그렇게 끙끙 앓는 밤을 보내고 잠깐 잠이 들었는데 남편이 내방으로 들어와서 물었다

괜찮아, 잘 잤어?

아니, 죽을 것 같아요, 당신은 괜찮아?

나야 잘 잤지, 아픈데도 없고 괜찮지, 그래서 일찍 준비하고 아버지께 다녀올까 하는데.

헐, 시골 아버님 댁에 다녀오겠다고, 정말 안 아파요?

그동안 낮 시간에 자전거 타고 언덕 넘어 다니는 연습을 해서 그런가 하나도 안 힘들어, 오늘 또 갔다 오라고 해도 갈 수 있을 것 같은데.

와, 당신 멋있다. 그동안 대청댐 가려고 연습 많이 했었구나.



*공주보에서 대청댐까지의 거리는 대략 56킬로미터 왕복 112킬로미터이다. 우리 집을 기준으로 하면 그보다 약간 더 멀다. 우리는 정말이지 계획도 없이 무모하게 자전거를 타고 대청댐을 다녀왔다. 남편의 목표를 이룬 것이 기쁘고 좋기는 하지만 앞으로 절대 이런 무모한 일은 안 하기로 했다.

토요일, 일요일, 월요일, 화요일까지 잠도 못 잘 만큼 아팠고, 온몸에 파스를 덕지덕지 발랐으며, 진통제까지 먹으며 지내다 수요일 목요일 그리고 금요일은 틈만 나면 잠을 잤다. 일하다 쉬는 시간에도 자고 퇴근하고 씻기만 하면 자고 아침 운동하고 남편과 아들을 내보내고 출근하기 전까지 또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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