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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숙집 이모 Oct 29. 2021

누구랑 함께 계세요?

그가 누구라고 말해줄 수 있나요?

아들의 친구 엄마와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전화가 왔는데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가 익숙했습니다.

나와도 친밀한 사이인 그녀였습니다. 통화 중인 두 사람은 친구 사이고 저는 어리지만 모두 잘 지낸다고 생각하는 사이였어요.


보통 통화의 내용들,

어디냐? 집이다.

뭐하냐? 아는 사람이랑 차 마시는 중이다.

저와 마주 앉은 상태에서 가벼워 보이는 몇 마디의 대화를 더 주고받았습니다.


그날 저는 기분이 조금 이상했습니다. '누구 엄마랑 있다.'든가, '혜정이랑 있다.' 그렇게 이름을 말해주면 될 텐데 아는 사람이라는 소개 덕분에 두 사람이 통화하는 동안 숨소리도 내면 안 될 것 같은, 내 존재를 숨겨야 할 것 같은 불편함을 느꼈습니다.


많은 날이 지나고 어느 날,

친밀한 그녀와 함께 있을 때 전화벨이 울렸습니다.

"미안, 잠깐 통화할게."

"어, **야, 나 지금 혜정이랑 놀고 있어."

둘의 대화도 별게 없어 보였습니다. 상대방의 목소리가 들리지는 않았지만 미루어 짐작할만한 그냥 보통의 몇 마디를 나누고 밤에 다시 전화하겠다고, 흔히 나누는 그런 말로 통화가 끝났습니다.

"언니, 누가 나를 알아요?"

"어, **이."

네, 아들 친구 엄마였습니다.

그날 저의 기분이 괜찮았습니다.


친구와 차를 타고 이동을 하는 중이었습니다. 친구의 딸이 전화가 왔고 운전하던 친구는 블루투스를 연결해서 통화를 했습니다.

엄마가 아는 사람이랑 어디를 가는 중이다. 운전 중이니까 밤에 통화를 하자.

저는 또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네, 아는 사람 맞습니다. 그 딸아이가 태어나기 전부터 알던 그런 사이거든요.


그렇게 말하고도 한참을 더 이야기하더군요. 밥은 뭐 먹었냐, 아침에 일찍 일어나라, 어제 뭐했냐, 보통 엄마의 질문에 톡톡 튀는 사랑스러운 딸의 즐거운 대화였습니다. 저는 그냥 아는 사람이라 중간에 웃음이 나오는 것 겨우 참으며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야 했습니다.


저는 저를 아는 사람이 아닌 저라고 소개한 사람에게 마음을 더 엽니다. 모두에게 소개되고 알릴 필요는 없지만 웃음 소리나 숨소리를 감춰야 하는 사람 앞에서 속 마음을 드러내는 일은 조심스럽습니다.

아는 사람으로 말한 사람 입장에서는 마음을 더 열고 닫는 게 무슨 큰 대수겠습니까?

다만 제가 그들의 이름을 아들 친구 엄마 누구에서, 내 친구 누구에서 아는 사람으로 묶어 저장하게 될까 봐 조금 서글퍼지는 거죠!

나이가 들면 주변 사람의 범위는 좁아지지만 관계는 친밀해진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저는 반대로 생각했습니다. 나이가 들면 세월이 쌓인 만큼 주변이 넓어지고 관계도 유연해지는 게 아니냐고 말이죠.


이 글을 쓰게 된 이유는 이것입니다.

친밀한 그녀는 그녀가 함께 있는 사람을 말해 줍니다. 그녀의 친밀한 범위의 사람들을 만난적이 없어도 오래 사귄 느낌입니다. 그녀처럼 자신을 열어 준다면 나이가 들면서 주변을 확장할 힘은 없어도 유연한 관계는 깊어질 수 있을 겁니다.


지금 누구랑 함께 계시나요? 그 사람이 누구인지 말해 줄 수 있나요?


추신: 당신의 사생활이 궁금한 게 아니에요. 그냥 편하게 웃고 숨 쉬는 사이가 되고 싶다는 이야기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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