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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숙집 이모 Jul 09. 2020

2만 원으로 한 달 살기

1990년 두달 체험 후 짠순이가 되었다.

초급대학을 엉터리로 졸업하고 언니들이 있는 서울로 올라갔다. 직장을 구한 것은 아니지만 차차 구하면 될터였다. 신문의 구인광고를 보면서  전공과 상관없는 곳에 열심히 이력서를 썼다. 면접을 보러 오라는 곳이 있어 면접을 보고 나면 며칠 뒤에 연락을 주겠다고 했으나 다리던 연락은 받아 보지 못했다.


그렇게 시간을 소비하다 사촌오빠가 소개해준 25분 사진현상소에서 알바를 했다. 몇 달간 알바를 해서 번 돈으로 해외선교 여행을 다녀왔고 다시 구직자 신세에 빈털터리가 되었다.

언니들이 나를 한심하게 여겼다. 직장도 없는 주제에 선교를 빙자한 해외여행을 하고 온 것을 못마땅해했다.


처음의 백조 생활은 그런대로 할만했다. 무슨 자신감인지 취직이 될 수도 있겠다는 희망을 가지고 지냈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희망이나 자신감은 힘을 잃어 어느 순간 주저앉아 빈둥거리고 있었다.


열심히 사는 언니들의 눈에 그런 내가 철없어 보였는지 용돈을 중지해 버렸다. 알아서 살라고 했다. 잘못하면 시골로 쫓겨날 수도 있을 상황이었다. 어떻게 알아서 살아야 하나 걱정하다가 꾀를 내었다. 언니들은 직장생활을 해서 힘들 테니 청소하고 밥하는 것은 내가 맡겠다. 대신 용돈을 달라고 했다. 그러겠노라고 언니들의 승낙이 떨어졌고 2만 원 받기로 했다. 두 언니 모두에게 한 달에 2만 원씩 받는 것이 아니라 한 달은 큰언니 다음 달은 작은언니가 부담하기로 한 것이다. 1만 원짜리 지하철 정액권을 사면 한 달 동안의 이동은 해결되었지만 어쩌다 친구들과 밥을 먹는 것도 허용되지 않았다.


2만 원 용돈 합의가 되자 고맙게도 큰언니가 컴퓨터 학원에 등록을 시켜 주었다. 돈이 없다 보니 학원의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았다. 언니에게 미안했지만 정신 차리고 공부하기에는 컴퓨터 언어들은 외계어였다. 머릿속으로 기호들이 제멋대로 뒤죽박죽 되어 행여 컴퓨터가 고장 날까 봐 함부로 자판을 누르지도 못하고 한 달을 보냈다. 큰언니가 이번에는 타자 학원을 보내주었다. 학원은 타자를 치는 방법을 가르쳐도 주었지만 직장 알선을 하는 곳이었다. 타자는 배울만 했다. 컴퓨터보다 열심히 배웠고 재미있었다.


어쨌든 두 달 동안 2만 원으로 살아냈다. 배고프면 집에 와서 밥을 먹고 차비가 부족하면 걸어서도 다녔다. 옷을 산다든가 차를 마신다든가 하는 사치는 꿈도 꾸지 않았다. 가끔씩 꼭 필요한 개인용품을 사는 것 이외의 돈은 소비하지 못했다. 외모가 딸렸으나 외모로 평가받고 싶지 않아 당당하게 지냈는데 어느 날 우연히 지하철역에서 예쁘게 차려입은 동창생을 만났고 그녀의 눈이 나를 위에서 아래로 훑어 내려갈 때 그 눈으로부터 숨고 싶을 만큼 부끄러웠던 기억은 여러 날 동안 나를 기죽게 했었다. 그때의 부끄러움이 약이 되었다. 외적인 것에 신경을 쓰지는 않았지만 내적인 부분은 조금씩 다듬어갔다. 특히 면접을 볼 때 겸손한 태도로 응대했다. 면접을 보러 가야 할 땐 둘째 언니가 옷을 빌려 주었다.


결국 작은 회사에 취업을 하게 되었다. 일을 하고 있으면 다른 기회도 찾아온다. 얼마 후 지인의 소개로 좀 더 나은 곳으로 이직을 하였다. 그 당시 첫 회사의 월급은 30만 원대였고 이직한 곳의 월급은 50만 원에 보너스 400% 탔으나 여전히 2만 원으로 살던 지난날의 훈련을 기억하며 최대한 아꼈다.


점심은 도시락으로 준비하기도 하고, 그게 안 되는 날은 라면을 사 먹었다. 여전히 옷도 사지 않았다. 둘째 언니가 주는 옷을 입었고, 둘째 언니가 사준 구두를 신었다. 둘째 언니가 이제 너도 옷을 사서 네 것을 입으라 했을 때까지 버티다 명동의 보세 옷집에서 가격별로 분류해 놓은 것 중 가장 싼 것을 골라왔다. 그렇게 짠순이 직장생활을 2년 하고 천만 원을 모았었다.

그때는 무작정 돈을 쓰지 않았다. 결혼을 하고 어려움도 겪고 난 후 어떤 돈을 아껴야 하는지, 어떤 돈은 써야 하는지를 배우게 되었다.

그래서 다음 이야기는 어떤 돈을 아꼈는지를 써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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