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경험을 찾는 역설적인 방법!
주변을 이루고 있는 것들에 대한 경험적 관점으로 글을 쓰다 보니 어느새 나는 주변의 불편한 경험을 찾는 것에 혈안이 돼버렸다. 불편한 경험을 하게 되면 기분이 나쁜 게 아니라 오히려 보물을 발견한 듯 기쁘다. 와 이 불편함! 어떻게 개선하면 좋을까! 유레카!
프로불편러. 생각해보면 경험 디자이너는 프로불편러가 맞다. 물론 목적 없이 그저 불평을 위한 불만을 늘어놓는 프로불편러와는 엄연히 다르다. 불편한 경험을 찾아 개선하는 것을 목표로 경험디자이너는 늘 불편함을 찾아 헤맨다. 불편함이 보이지 않는다면 오히려 불편한 게 경험디자이너다. 이렇게 완벽 할리가 없을 텐데? 불편해!
사용자에게 어떻게 좋은 경험을 전달해야 할까 고민하기 위해선 좋은 경험이란 무엇일까 정의해야 한다. 정말로 순수하게 이런 건 좋은 게 좋은 것이야! 하고 특정 경험이 정의될 수도 있지만 객관성이 뒷받침되지 않을 확률이 높다. 그래서 나는 좋은 경험의 대척점에 있는 나쁜 경험이 뭔지를 찾아본다. 좋은 경험은 주관적이고 발견하기 어렵지만 나쁜 경험은 객관성 확보가 상대적으로 어렵지 않고 발견하기도 쉽기 때문이다.
다른 친구들에게는 적극적이면서 유독 나에게만 투덜대거나 소홀한 이유가 있다. 나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라고 연애 관련 유투버가 말하더라.
우리는 좋은 경험에 대한 표현은 소극적이지만 나쁜 경험에 대한 표현은 적극적인 경향이 있다. 식당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다 보면 종종 셰프나 식당 주인이 테이블을 돌며 음식 맛이 어떤지 물어보는 경우가 있다. 사람들이 신이 나서 이것도 맛있고 저것도 맛있어요 하고 감탄하며 셰프나 주인하고 대화하는 경우는 드물다. 대부분 수줍게 입을 가리고 아.. 네 맛있어요..! 정도로 그친다. 당사자가 스스로 자신의 작품을 평가해 달라고 질문하는 것 자체가 굉장히 부담스럽다. 그래서인지 셰프나 주인들도 손님 만족도 조사를 위해 질문하는 게 어렵다.
그래도 누군가 맛이 어때요? 라도 물어라도 보면 좋은 감정을 소심하게라도 표현할 수 있다. 반면 누군가 묻지도 않았는데 나서서 식당 주인이나 셰프를 불러 정말 맛있다고 표현하는 경우는 정말로 드문 일이다. 누군가 정말 자신이 느끼는 좋은 감정을 신이 나서 표현하면 오버 리액션 혹은 투마치인포메이션, 투 마치 토커라는 부정적인 프레임을 씌워버리기 마련이다.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사람에게 공감하기보단 그 사람을 시무룩하게 만드는 걸 즐기는 이상한 사회. 좋은 감정에 대해서는 억제하고 또 절제하는 것이 미덕이라 여겨지는 듯하다.
반대로 불편한 감정에 대해서는 물어보기도 전에 오히려 먼저 손을 들고 아 이거 좀 별로인데요, 아 이거 좀 덜 익었는데요? 이거 맛이 왜 이래요? 주인 바뀌었어요?라는 식으로 당당하게 표현한다. 불편함은 참는 게 바보. 너무 착하면 당한다는 프레임이 존재하기 때문일까. 너 왜 이렇게 착해?라는 말을 들으면 기분이 좋은 게 아니라 엥 이거 반어법인가?라는 생각이 드는 사회이다.
사용자는 편안함보다 불편함을 쉽게 또 주도적으로 드러낸다.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조금 더 직접적인 사례가 있다. 사용자가 존재하는 모든 서비스에는 사용 후기가 있기 마련이다. 후기는 고객에겐 소통의 창구이면서 마케팅에 있어선 하나의 광고 수단이고 경험 디자이너에겐 제품 개발 방향에 대한 피드백이다. 사람들은 불편하고 부정적인 경험에 대한 후기는 공짜로 표현하지만 편안하고 긍정적인 경험에 대한 후기는 상품권이나 추가 서비스, 돈을 줘야지만 표현하는 것 같다.
프랜차이즈 미용실에 가보면 마지막에 꼭 리뷰 작성을 부탁드린다고 헤어 디자이너가 수줍게 말하는 경우가 있다. 아예 대놓고 눈앞에서 리뷰 간단하게 작성해달라고 요구하기도 한다. 리뷰 작성 대가로 포인트 지급이나 서비스 제공을 약속하는 게 보통이라 이제는 대가 없이 좋은 후기를 작성하는 게 손해 보는 것 같기도 하다.
퇴근 후 매우 늦은 시간 마지막 타임으로 미용실에 가보면 헤어 디자이너들끼리의 업계 이야기를 흘려들을 수 있다. 대부분 퇴근 전 수다를 떨거나 남은 시간을 이용해 서로서로 머리를 잘라주거나 시술해주며 나누는 이야기들이다.
그때 누군가 "저는 고객한테 리뷰 작성해달라고 요청하는 게 너무 부담스럽다."라고 이야기했다. 그랬더니 선배 디자이너가 그래도 해야 한다고 똑 부러지게 이야기하더라. 그 이유가 상당히 명쾌해서 기억에 남는다.
리뷰 작성을 요청하지 않을 때는 고객이 스스로 후기를 쓸 확률이 50대 50이라면 리뷰 작성해달라고 요청을 하면 “좋은” 후기를 쓸 확률이 50대 50이라고. 어차피 리뷰 작성 부탁드린다고 말하나 안 하나 고객이 리뷰를 작성할 확률은 반반으로 똑같다. 이왕 같은 확률로 리뷰가 달릴 거 좋은 후기가 달리면 좋은 거라고 하더라.
고객이 아무리 좋은 경험을 했더라도 스스로 리뷰 작성을 하기 위해서는 추가적으로 일을 수행해야 한다. 시간을 들여 리뷰를 쓴다고 딱히 이로울 것도 없다.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리뷰 작성은 굉장히 귀찮다.
그래서 업체가 포인트나 서비스로 후기 작성 유인책을 마련한다. 애초에 좋은 경험을 전달하는 게 중요하지만 그 좋은 경험이 그대로 공유되기 위해서 업체가 추가적으로 서비스 대가를 제공하는 것이다. 좋은 리뷰들이 모여 서비스 경쟁력이 강화되기 때문에 리뷰 작성의 대가로 추가 서비스를 제공하는 게 밑지는 장사는 아니다. 값비싼 인플루언서 광고 시장은 바로 이런 틈새를 공략했다 할 수 있다.
반면 고객은 나쁜 경험은 대가가 없어도 어떻게 해서든지 공유하고 싶어 한다. 나쁜 경험을 한 고객은 스스로 이미 인플루언서로 빙의해 여기저기 경험을 공유하기 시작한다. 이미 불이익을 당한 고객은 보복 심리이던 인류애던 부정적인 후기를 공유하면서 어느 정도 화가 가라앉는다. 나쁜 경험을 표현하기 위해 에너지를 사용하도록 감정적 보상이라는 유인책을 스스로에게 제공한다고 볼 수 있다. 애초에 서비스 주체가 고객에게 나쁜 경험을 선사하면 안 되지만 어쨌든 사용자의 나쁜 경험은 이렇게 공짜로 쉽게 표현된다. 그래서 좋은 경험이 무엇인지 정의하기 위해 오히려 나쁜 경험을 찾아보는 방법이 경제적으로도 효율적이다.
좋은 경험보다 나쁜 경험을 찾는 게 효과적인 또 다른 이유로 객관성의 확보를 이야기했다. 좋은 경험은 상대적으로 객관성 확보가 어렵고 나쁜 경험은 객관성 확보가 용이하다.
배달앱을 통해 음식을 주문하는 경우를 예로 들어보자. 우리가 만약 치킨을 먹고 싶다고 하자. 나 같은 경우 교촌 치킨 허니 레드 반반 콤보를 진리라고 생각하지만 그전에 늘 다른 치킨집을 기웃거리거나 교촌 안에서도 신메뉴를 고민하곤 한다.
우리는 한 끼 한 끼 소중하기에 배달앱에서 업체와 메뉴에 대해 진지하게 검증한다. 바로 리뷰를 훑어보는 일인데 여기서 재밌는 경험이 발생한다. 우리는 치킨 메뉴의 리뷰를 훑어보면서 맛있다고 한 사람의 말은 그냥 넘겨버린다. 그리고 맛없다고, 치킨이 식어서 왔다고 혹은 머리카락이 나왔다는 후기가 있나 눈에 불을 켜고 스크롤을 내린다. 어느 정도 스크롤을 내려도 나쁜 후기가 없다면 음 괜찮겠네 하고 치킨을 주문한다. 하지만 머리카락이 나왔어요 하는 후기 단 한 개만 보여도 우리는 주문하기가 망설여진다.
이런 현상을 Saleince Bias(눈에 띄는 소수의 두드러진 특징이 다른 것들보다 큰 의미로 다가오는 현상) 라거나 Bandwagon Effect(다른 사람들 의견에 편승하는 현상), Negative Effect(부정적 정보에 더 큰 비중을 둬서 정보를 처리하는 현상) 등등 다양한 심리학 용어로 설명할 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그런 어려운 것보다 우리가 부정적인 배달 리뷰에 왜 꽂히는지 단순히 생각해보자. “맛있다”라는 말은 맛에 대한 근거가 전혀 없거나 근거가 있어도 그건 네 생각이지 라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그래서 “맛있다”는 공감대 형성이 어렵다. 물론 한 개의 맛있다는 이렇게 의구심을 자아내지만 100개의 맛있다 리뷰는 어느 정도 집단지성으로 받아들여져 공감대를 형성한다. 그래도 여전히 뭐 그런가 보다 하는 수준이다.
사실 맛없다도 마찬가지이다. 왜 맛없는지 근거가 전혀 없거나 있어도 타인의 주관적인 판단일 뿐이다. 그런데 보통 맛없다가 아니라 식어서 맛이 없다고 했다면? 따뜻한 음식이 식으면 상대적으로 본연의 맛이 사라진다는 사실에는 객관성이 확보되어 있다. 더욱이 애초에 음식이 식어서 온다는 건 당연한 게 아니기에 이미 식었다는 말에 상당한 무게감이 실려있다.
따뜻해서 맛있다라는 표현을 보자. 맛있다는 건 주관적이어서 따뜻하다는 말만 객관적 사실로 다가온다. 따뜻하다는 사실 자체가 배달 음식의 기본 전제 조건이기에 큰 무게감이 없다. 따뜻하면 맛있을 수 있는 건 진짜 그냥 당연한거다. 머리카락이 없어서 좋았다는 말도 머리카락이 없는 게 당연한 것이기에 굳이 표현하지도 않을뿐더러 특별한 사실로 다가오지 않는다.
부정적인 감정 자체는 주관적일지라도 부정적인 감정을 불러온 근거는 객관적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긍정적인 감정 역시 주관적이지만 긍정적인 감정을 불러온 근거는 너무 당연해서 오히려 객관성 확보가 되지 않는다.
물론 너무 매워서 별로였어요 처럼 나쁜 감정 경험도 그 근거가 주관적이라 객관성 확보가 어려운 경우가 있다. 이런 부정적인 경험은 그 대척점이 좋은 경험이라고 하기도 애매하다. 너무 안 매워서 좋았어요 라거나 진짜 매워서 좋았어요 등이 대척점에 있을 수 있는데 맵다는 기준 자체가 상당히 주관적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관적인 나쁜 경험을 찾는 건 어느 정도 유효타가 있다. 우리는 이제 맵다 라는 주관적인 기준 자체가 불편함을 초래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됐기 때문이다. 그래서 맵기의 단계를 세 단계로 나누고 보통의 맵기에 대한 기준에 객관성을 제시하기 위해 신라면 정도의 맵기입니다라고 혹은 스코빌지수가 몇입니다라고 표현해낼 수 있게 된다. 주관적이어도 나쁜 경험을 통해 서비스를 보완해 좋은 경험을 제공할 폭을 넓히게 된 것이다.
사용자에게 좋은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서 우리는 사용자가 제품과 상호작용하는 다양한 모습을 다양한 방법으로 면밀히 관찰해야 한다. 오늘 이야기한 불편한 경험을 찾는 것에 집중하는 것은 그런 다양한 시도 중의 한 가지일 뿐이다.
일이 지루하다가도 누군가 제품에 대해 불편함을 느꼈다고 하면 정신이 번쩍 든다. 그것을 어떻게 좋은 경험으로 역전시킬지 고민하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르겠다. 정말로 좋은 서비스, 좋은 제품을 만들고 싶다면 그런 마음가짐으로 프로불편러가 되어보는 건 어떨까. 아 치킨 먹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