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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을 보고 싶으면 결국 날아오르게 된다.

사실 우주로 가고싶지만.

by 민근

연말이 지나고 새해가 시작되면서 회사마다 다양한 방식으로 역량평가가 진행되는 듯하다. 누군가는 1년 동안 자신이 한 일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노력한 바에 걸맞은 성취를 했을 수도 있지만 누군가는 내가 1년 동안 무얼 했는지 모르겠어서 누군가 포장해주기 전엔 스스로를 치하하지 못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최근 지인이 스스로 역량평가를 써내라 하는 ‘과제’에 골머리를 앓고 있더라. 자신이 한 일과 회사와 팀의 방향성에 그 일들이 얼마나 부합했는지 그리고 회사와 팀의 목표, 방향성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서술하는 항목이 있다고 했다.


설문의 목적성에 따라 꽤나 까다롭고 부담스럽게 여겨질 만했다. 나는 단순하게 되물었다. 팀에서 하고자 하는 게 뭔지 알 테니까 거기서 자신이 무슨 역할을 했고 앞으로 어떻게 해서 목표달성에 기여할 것인지 쓰면 되지 않나?


이에 대한 UX/UI 디자이너 지인의 대답은 이랬다. “너는 기획 쪽에 가까우니까 그런 큰 그림을 알겠지만 나는 그냥 시키는 것만 해서 구체적으로 잘 모른다. 나는 그냥 자기소개서 쓰듯이 막 꾸며 써야 한다. ”


개인적으로 굉장히 실망스러운 대답이었다. UX가 붙어있는 직무인데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고객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에 대한 자부심이나 목표의식이 없다니.


물론 조직 규모가 클수록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윤곽을 잡기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조직의 규모와 자신의 위치를 핑계로 수동적으로 일하는 사람이 내 회사에 팀원으로 있다고 생각한다면 단순히 “그럴 수 있지, (토닥토닥) 힘내!” 하고 끝낼 일은 아니라 생각한다.


전문가는 자신이 속한 조직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전문성을 발휘할 수 있다. 모든 조직장은 각각이 전문가인 구성원에게 능동적이고 책임감 있게 업무를 수행하기를 요구하고 자신의 전문성으로 목표를 완수하기를 바라지만 자신이 조직의 대표가 아닌 이상 책임감과 오너쉽을 가지고 장기간 능동적으로 전문성을 발휘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자신이 속한 조직이 제공하는 복지라던가 연봉 수준도 퍼포먼스에 매우 큰 영향을 끼친다. 그래서 만약 현상유지가 개인의 가장 큰 목표라면 그 사람에게 능동성과 책임감을 기대하기가 사실상 쉽지 않다.


전문가로서 가장 중요한 자질은 자신의 전문성을 갈고닦아 스스로의 가치를 높이는 자아실현을 추구하고 있느냐 아니냐인 것 같다. 이런 사람들은 돈을 위해서 일하기도 하겠지만 일 자체가 동기부여고 재미있다. 그래서 더 잘하고 싶고 잘하고 싶으면 공부하게 되고 공부하면 어떤 비전이 보인다.


비전이 보인다는 건 큰 그림, 숲을 볼 수 있다는 뜻이라고 생각한다. 그저 누가 시킨 일의 부분만 보고 적당히 해내는 것이 아니라 일의 맥락을 따라 전체 퍼즐판을 보고 적절한 답, 퍼즐 조각을 찾아내어 주는 것.


잘한다 못한다라는 실력은 혼자서 마음만 먹으면 다 해낼 수 있다고 스스로 생각하거나 남에게 인정받는 것이 아니라 전체 일의 방향성을 알고 스스로의 항로를 알고 있느냐 없느냐 에서 나오는 것 같다. 아무리 손이 빠르고 실무 경험이 많다고 해도 내가 맡은 이 일이 누구를 위해 어떻게 만들어져야 하는지 스스로 알지 못하면 스스로에게 동기부여가 안되어 수동적인 일도 잘 해내지 못하게 된다.


동기부여. 숲을 내려다보고 싶으면 자연스레 하늘을 날게 된다. 굳이 숲을 보고 싶지 않고 하늘에 있는 사람이 지도를 그려줘도 거들떠보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질문할 수밖에 없다. 나와 다른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그저 하늘에 관심이 없는 것인지.

방향성이 다르거나 비전이 없거나 어쨌든 팀으로 함께 하기 힘들다. 나는 개인이 혼자 일하는 게 아니라 조직에서 일하기로 했다면 어쨌든 조직이 함께 쳐다보는 하늘은 어떻게 생겼는지는 그 하늘 아래 숲은 어떤지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직접 날지 못하면 누군가 전망대라도 데려다줄 때만이라도 열심히 광활한 들판을 바라보고 영감을 얻을 수 있는 자세가 되어 있는 사람들이라면 열정의 크기가 다르더라도 함께 할 수 있지 않을까.


바라보고 있는 하늘이 완전히 같지 않더라도 만약 잠시 머무르는 조직의 하늘을 넘어 개인의 우주가 지향하는 점이 같다면 역시 서로 시너지 효과가 날 수 있다.

어쨌든 결국 땅에서 출발한 나는 전문가로서 인정받기 위해 항상 지면을 굳게 디디고 있는 동시에 숲이 궁금하다. 작은 언덕이라도 올라가 보고 또다시 내려가본다.


누군가 내가 하는 일이 뭔지 내가 하는 일이 왜 중요하고 조직에서 어떤 기여를 하고 있는지 물어본다면 적어도 내가 언덕에 올라가기 위해 한 것과 거기서 본 것들을 신이 나서 이야기할 수 있다. 사실은 그 언덕 위에서 나만의 천체망원경으로 우주를 보고 있지만 그러다 언젠가 날아가 새로운 행성은 아니라도 새로운 땅에서 나만의 숲을 가꿀 수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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