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디오스오디오 롤링홀 단독공연 후기
늘 그렇듯 12시 30분 회사 점심시간이 된 지도 모르고 엉망진창인 전날의 결과들과 오늘의 계획들을 바로잡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어느새 사무실이 조용하다가 전자레인지 돌아가는 소리가 띵 하고 들리길래 핸드폰을 보니 13시 16분. 잠금화면에 여러 광고 메시지 알림과 함께 반가운 카톡이 와있더라.
"대 오민근 디자이너님 안녕히 지내고 계십니까? 오는 4월 2일 새롭게 정비된 저희. 아디오스오디오의 올해 첫 단공이 롤링홀에서 있어서 오자이너님과 동행을 희망하시는 분들 초대해드리고자 하는데 혹시 의향이 있으신지요?"
밴드 아디오스오디오(AdiosAudio)의 키보드, 호재 형이었다. 나이도 한참 어린 나를 언제나처럼 "대 오민근 디자이너님" 하고 존칭으로 불러주며 아디오스오디오 2023년 첫 단독공연에 초대한다는 내용이다. 카톡을 받고 갑자기 생각해 보니 내가 벌써 호재형과 보컬 호정(마호) 님의 밴드를 안지가 10년이 되었더라. 그동안 팬이라 자처하면서도 공연에 가지도 못하고 응원도 제대로 못했다.
남은 점심시간은 약 15분. 대충 편의점 다녀올 수 있는 시간이었지만 곧바로 예매 링크에 접속해 아디오스오디오의 2023년 첫 단독콘서트를 예매했다. 초대를 받고 그냥 무료로 공연에 갈 수도 있었지만 정말 오랜만에 찾아가는 공연이라 직접 표를 구매하고 싶었다.
예매를 하고 나서도 회사일로 정말 바쁘게 살다 보니 공연날이 다가오는지도 모르고 있었다. 공연 당일 홍대 롤링홀 앞에 붙어있는 포스터를 보고서야 아 내가 진짜 공연을 보러 왔구나 하고 설레더라. 그리고 정말 많은 관객들. 화려한 조명 속에서 내 기억 속 10년 전 그 목소리, 그 모습, 그 에너지 그대로 아디오스오디오의 공연이 시작됐다.
10년 전 친구 따라 처음으로 보게 된 라이브 공연의 뒤풀이에서, 대학교 1학년, 꿈이 가득했던 나는 디자인이 아직 뭔지도 모를 때 스스로를 디자이너라고 소개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키보드 호재형은 나를 대 오민근 디자이너님이라고 불러주었다. 오랜만에 공연에 찾아가도 첫 만남때와 똑같이 나는 여전히 대 오민근 디자이너였다. 나는 어느새 10년 전인 2013년, 홍대 프리즘홀 앞 골목에서 밴드를 처음 만난 날의 꿈, 열정 충만한 20살로 돌아가 있었다.
현실에 나는 10년 전 내가 꿈꿨던 '대 오민근 디자이너'로 살고 있지 않다. 내가 현실에 타협했다고 생각하고 싶지는 않지만 나를 위한 현실을 살고 있는지에 대한 자신감은 점점 희미해지는 것 같다. 그렇게 방황하며 더 이상 내가 스스로를 디자이너라고 부르지 않게 되는 동안 아디오스오디오 역시 멤버 교체도 겪고 힘든 시기를 겪었다. 그래도 언제나 그 자리에서 그렇게 꾸준히 꿈을 노래하고 있었다.
그리고 공연 당일, 보컬과 키보드 멤버가 실제로 각자의 꿈을 이루었다.
"처음 서울에 올라왔을 때 홍대 롤링홀에서 공연하고 싶어서 롤링홀 근처에 살았다. 롤링홀에서 공연하는 게 꿈이었다. 그리고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 드디어 롤링홀에서 오늘 처음으로 공연하게 되었다. 오늘은 그 꿈을 이룬 날이다."
- 호정(MAHO), 아디오스오디오 보컬
엄브로와 비건타이거에서 협찬받은 공연 의상을 수줍게 자랑하는 아디오스오디오. 특히 축구를 좋아하는 키보드 호재형. 축구할 때 모두가 나이키, 아디다스만 착용하며 엄브로를 무시하던 때부터 엄브로 한 길만 팠다던 호재형. 드디어 자신이 좋아하던 브랜드에서 의상 협찬을 받는 꿈을 이루었다.
밴드는 이렇게 그날 오랫동안 꿈꿔 온 꿈을 하나 이루고 이제 더 큰 꿈, 더 나은 내일을 새로 꿈꾸고 있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밴드가 꿈을 이룬 오늘의 단독공연을 마지막으로 드러머 승준 님은 반대로 밴드를 떠나 개인적인 꿈을 향해 나아가게 되었다.
승준 님을 처음 본 건 내가 2015년 10월 말 겨울에 육군 만기 전역하고 복학생이 되어 2016년 다시 홍대의 라이브 공연에 찾아갔을 때였다. 내가 군 입대 전에는 웁스나이스라는 이름이었던 밴드는 드러머 승준 님의 합류와 함께 아디오스오디오로 새로운 시작을 알리고 있었다. 공연 끝나고 땀범벅이 된 승준 님과 굉장히 수줍게 인사를 나눴던 2016년 그날이 용돈 받던 대학생으로서 나의 마지막 라이브 공연 방문이었다.
이제 월세와 카드값에 시달리는 직장인이 되어 약 7년 만에 다시 온 아디오스오디오 공연이 아쉽게도 승준 님의 공식적인 마지막 공연이 되었다. 승준 님과 처음 만났었던 그때처럼 공연이 끝나고 여전히 땀범벅인 승준 님에게 7년 전에 인사했었던 팬이라고 다시 수줍게 안녕을 악수했다.
어떻게, 진짜 진짜 진짜 마지막 공연을 하게 되어 좋습니까? -호정, 보컬
네애애앳! - 승준, 드러머
그날 드러머 승준 님에겐 새로운 내일을 꿈꾸는 아디오스, 굿바이로써 안녕이었지만 동시에 새로운 드러머, 준현 님이(이준현, Zune) 안녕! 하고 반가운 첫인사를 건넨 날이기도 했다. 아디오스오디오의 2년 만의 신곡 '핑' 녹음을 앞두고 급하게 드럼을 요청했을 때 흔쾌히 수락하고 밤새워 녹음을 준비해 참여해 줬다는 준현 님. 새 드러머 준현 님의 드럼 솔로는 아디오스오디오라는 영화의 새로운 씬(Scene)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이렇게 아디오스오디오의 2023년 롤링홀 첫 단독공연은 나에겐 정말 감상적인 포인트가 많았던 뜻깊은 공연이었다. 공연 이후에 정말로 정말로 오랜만에 호재형과 만났다. 여전히 나를 오자이너라고 두 팔 벌려 환영해 준 호재형. 환하게 웃어 본 기억이 가물가물해지고 있던 30살의 나는, 다시 10년 전 20살의 내가 되어 환하게 웃을 수 있었다.
공연 이후 다시 쳇바퀴 같은 현실로 돌아와 그날의 감동이 희미해져 갈 때 즈음. 점심시간을 조금 넘겨서 제일 싼 편의점 도시락을 빠르게 돌려먹고 답답해서 뛰어간 회사 근처 노들섬 한강대교 위에서 그날의 공연이 다시 떠올랐다. 그날 공연에서 내가 가장 좋았던 곡, '꿈꾸는 바다'를 들려주기 전 보컬, 호정님이 했던 말.
"여러분들이 꿈꾸는 바,
다 이뤄지기를 꿈꾸는 바다,
그렇게 꿈꾸는 바다,
오늘의 꿈꾸는 바다."
그리고 맴도는 가삿말.
난 꿈을 꾸네.
꿈을 꾸네.
AdiosAudio, 꿈꾸는 바다
13시 29분,
회사로 힘차게 달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