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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근 Aug 04. 2023

가장 인간다운 도구, 유형3

나만의 도구를 얻기 위한 여정

*삽입한 이미지는 모두 생성형 AI를 '도구'로 제작했습니다.


인간의 가장 큰 특징은 도구를 사용하는 것이라고 한다. 내가 볼 땐 다른 동물들도 자신의 신체와 별개의 사물을 생존에 활용해서 도구라는 건 일차원적인 사물의 개념은 아님을 일찍이 인식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도구란 무엇일까. 나는 제한적인 신체의 연장이라고 정의해 본다. 신체의 한계를 뛰어넘게 해 줄 수 있게 사물을 나에게 맞게, 목적에 맞게 커스터마이징하여 신체에 연결하는 것. 내 몸과 연결된 맞춤 변형/가공된 사물. 그래서 돌은 도구가 아니고 뗀석기는 도구인 것이다.  


뗀석기가 무조건적으로 날카롭기만 해서 좋은 게 아니다. 그래서 주먹도끼가 생겨났을지도 모른다. 그냥 돌을 쪼개는 것보다 내 주먹에 맞는 적절한 크기로 부시고 갈아 만든 나만의 맞춤형 뗀석기. 남의 손에 맞게 만들어진 주먹도끼는 별로 손에 쥐고 싶지도 않고 내 손 안에서는 100% 제 성능을 내지 못할 테다.



아더왕의 전설에서 강철도 자를 수 있는 전설의 무기, 엑스칼리버는 겉보기에는 그냥 검이다. 바위에 누가 꽂아놓았는지는 모르겠는데 왕이 될 자격이 있는 사람만 이 검을 뽑을 수 있다고 한다. 아서왕이 검을 뽑아 엑스칼리버를 손에 쥔 순간 모든 사람들로부터 왕으로의 정당성을 인정받았다. 물론 검을 뽑기 이전에도 왕의 면모를 갖추고 있을지라도 그 검을 손에 쥐게 되었다는 이유만으로 반대파도 어라? 찐이었네 하며 무릎을 꿇은 것이다.  


주먹도끼처럼 내 손에 맞는 돌조각을 찾아 만드는 도구의 유형이 있고 엑스칼리버처럼 내가 도구에 맞게 자격을 갖추어야 할 때가 있다. 아버지의 어릴 적 테니스 수업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상한 나무로 만든 테니스채로 연습했다고 하더라. 그런 이야기를 듣고 보니 내가 테니스를 배우려고 했을 때 그냥 집에 있는 옛날 라켓을 아무렇게나 들고 갔었다. 실력도 없는데 좋은 테니스채를 써봤자 테니스채가 아깝다 생각했다.


어릴 때 검도장에서 특정 수련 레벨 이상이 되어야 가검을 사용할 수 있었다. 그깟 검 그냥 처음부터 가검으로 연습하면 안 되나 싶었다. 어쨌든 도장에 들어서서 제일 먼저 하는 일은 벽에 걸려있는 공용 목검 중에 제일 멋지고 강해 보이는걸 누구보다 빠르게 선점하는 일이었다. 우선 주먹도끼를 고르듯이 내 몸에 맞는 적절한 길이의 목검으로 1차 필터링을 거친다. 그런데 개중에 손잡이에 용조각이 새겨진 흑단목검이 있었는데 가장 멋진 목검이으나 처음에 들었을 때 너무 무거워서 몇 번 휘두르면 팔이 아팠다. 그래서 검도를 배운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내 목검의 색은 대나무 속껍질 색과 같이 흰색에 가까운 색이었다. 그게 가장 가벼웠기 때문이다.


나중에 레벨이 올라 자연스레 점점 나무 색이 검붉은 빛으로 짙은 목검을 사용할 수 있었다. 점점 무게가 어느 정도 있는 묵직한 검을 찾기 시작했고 어느새 가검을 가볍게 손에 쥐었을 때 내 가검 칼집의 색도 붉은 자줏빛인 게 만족스러웠다. 나중에 흑단목검은 비싸서 굳이 안 샀다.    


내가 스스로 도구를 내 몸에 맞추거나 내 몸과 정신을 도구에 맞춰야 하는 경우 모두 인간과 도구가 서로 평등하고 주체적이며 자연스러운 관계를 맺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를 각각 유형 1의 도구와 유형 2의 도구라고 해보자.


마지막 유형 3의 도구는 어쩌면 매우 불평등하면서 수동적이고 부자연스럽다. 내가 도구에게 맞출 필요도 없고 도구가 나에게 맞출 필요도 없다. 대신 '돈'만 맞춰주면 된다. 나는 이 부분의 도구 발달이 자연에서 인간을 다른 동물과 다른 부자연에 속하는 '인간'으로 정의하지 않나 싶다.


학창 시절에 최신 게임이 나올 때마다 그 게임을 하고 싶어서 컴퓨터를 사달라고 부모님께 조른 경험이 다들 있을지 모르겠다. 어쩌면 최신 게임을 할 수 있는 도구를 갖추고 싶은 것보다 최신 게임을 할 수 있어야 반 친구들에게 소외당하지 않을 수 있다는 생존 본능에 따라 생존의 도구를 요구한 것이 아닐까 싶다. 학교 다닐 때 반에서 가장 부잣집에 산다는 친구는 늘 최신 게임을 자랑했는데 그 친구는 부러움의 대상이었지만 최신형 피시를 살 형편이 없어서 담배연기 나는 PC방에 가는 애들은 나쁜 학생으로 여겨졌다. PC방 가게 1000원만 까지 해야 했던 아이들은 진짜 나쁜 학생이 되어버렸다.


내가 가진 자질과 관계없이 너무나 쉽게 돈으로 엑스칼리버를 얻는 것에 열이 뻗친 적이 있었는데 바로 한강에서였다. 나는 당시 자전거를 너무 좋아했는데 자전거 종류가 뭐고 이런 건 잘 몰랐고 그냥 집에 있는 자전거를 신나게 타고 다녔다. 내 기억에 집에 10만 원 정도 하는 자전거 하나와 주유소에서 경품으로 받은 자전거가 있었다. 흔히 말해 철티비라고 불리는 가장 저렴하고 무거운 철로 만든 프레임을 가지면서 기어 단수도 5단 미만의 자전거였다. 중학교 때까지 신나게 타고 다녔는데 자전거에 맞게 신체를 단련해서 그런지 몰라도 그 자전거가 나중엔 그리 무거운지도 불편한지도 느린 건지도 몰랐다.



동네에서 학원 다닐 때나 타고 다니다가 어느 날 새해맞이로 혼자 한강으로 가 여의도까지 달려갔다 와봐야지 생각했다. 그때까지 한강에 가서 자전거를 오랫동안 탄 경험이 없었다. 삼성역 쪽 탄천합수부에서 출발해 여의도공원까지 네이버 지도에서 16km, 자전거로 1시간 5분이 찍힌다. 철티비로 신나게 동네를 타고 다녀 자전거 타기에는 도가 텄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 보니 동네에서는 차도 복잡하고 인도에 사람도 많고 언덕도 많아 전속력으로 질주할 수 있는 길도 없었거니와 끽해봤자 3km 안에서 왔다 갔다였다.


그래서 3km 정도 지나자 여의도까지 갈 수 있나라는 물음표가 다리 근육에 하나 둘 박히기 시작했다. 최고 기어 5단에서 점점 페달링이 느릿느릿 해지는데 제한속도 시속 20km 표지판이 있더라. 아니 누가 자전거로 20km 이상을 달리지라고 물음표가 종아리에 몇 개 더 박힐 때 갑자기 뒤에서 비켜! 하면서 쫄쫄이를 풀장 착한 누가 봐도 국대 같은 복장의 인물이 쌩하고 지나갔다. 엄청나게 빠르게 멀어지는 와중에 그 사람이 짜증 난다는 표정으로 나를 휙 돌아보더라. 순간 열이 팍 받아서 저걸 따라잡겠다고 미친 듯이 발을 굴렀는데 분명 내 자전거의 최대 페달 속도를 냈음에도 이미 앞 차는 사라진 뒤였다.


그때 나는 고가의 자전거 세계와 자전거에 따른 속도 차이를 깨닫게 되었다. 물론 몇 백만 원하는 자전거를 사진 못했고 부모님께 엄청나게 졸라서 50만 원짜리 자이언트 자전거를 샀다. 어처구니가 없었던 게 50만 원이 자전거 입문자가 타는 거라고 자전거점에서 제대로 봐주지도 않더라. 50만 원짜리를 왜 고민하면서 사지라는 그런 분위기. 나는 10만 원 정도 자전거가 제일 비싸고 좋은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자전거를 탈 줄만 알면 돈만 들이면 한강의 아서왕이 될 수 있더라. 그전까지 돈의 힘에 대해 크게 느끼는 건 친구는 게임머니를 들이부을 수 있고 나는 아니다 그 정도밖에 없었는데 이 자전거 사건은 나에게 굉장히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자기의 수련 정도에 맞는 마땅한 검의 종류가 있고 자신이 노력하면 내 실력을 딱 알맞게 발휘하게 도와주는 도구를 얻는 게 당연하다. 반대로 내가 찬 검에 따라 내가 검술을 보여주지 않아도 검을 차고 있다는 자체만으로 도장에서 내 실력과 권위도 인정받았다. 그런데 자전거 레이스 한판이 도구에 대한 나의 생각을 완전히 바꿔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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