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인을 위한 변명』 (이학사, 8,000원) 서평
한국대학은 취업 준비기관으로 변질했다. 대학에 진학한 학생 중 대다수는 학문을 위한 공부가 아닌 취업을 위한 공부를 한다. 의무교육부터 이어지는 구시대적이고, 수동적인 교육방식은 학생들이 잘 먹고 잘살기 위한 수단적 공부에 매몰되게 만든다. 그리고 그들 중 대부분이 배운 지식을 “개량주의자”가 되기 위한 목적으로만 사용하였음을 뒤늦게 깨닫고, 결국 ‘오천만 원짜리 영수증(학위증)의 빚 갚기’에 한탄할 뿐이다. 『지식인을 위한 변명』 (이학사, 8,000원)은 대학진학을 예정 중인 학생, 현재 대학에 재학 중인 대학(원)생, 그리고 대학을 거쳐 전문가라고 불리는 직업을 가진 이가 스스로 지식인이라 말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을 던진다. ‘당신은 지식인인가? 신자유주의 시대의 대학다운 대학의 부재는 어떤 지식인을 만들어냈는가?’ 이에 관한 물음을 가지고 사르트르의 지식인론을 음미하다 보면 21세기의 우리는 어떤 지식인이 되어야 하는지 알게 될 것이다.
『지식인을 위한 변명』은 “프랑스의 문학가, 극작가, 평론가, 실존주의 철학자로서 20세기를 대표하는 세계적 지성인”으로 알려진 사르트르가 50년 전 일본에서 한 강의를 바탕으로 정리한 책이다. 책은 오래전에 발표된 내용을 담고 있지만, 지금까지도 저널을 통해 지식인들에게 언급될 만큼 영향력 있는 고전이다. 이 책은 첫째 날 강연부터 셋째 날 강연까지 지식인의 상황과 지식인에 대한 설명, 그리고 지식인의 모순과 역할, 작가는 지식인인지 등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생생한 강연 현장이 담긴 문체가 비교적 어렵게 느껴질 수 있으나, 번역자가 중요한 용어마다 친절하게 주석을 달아 책의 이해를 돕고 있다.
저자에 따르면, 지식인은 부르주아지의 성장과 함께 그들의 필요에 의해 고용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중간계급에 속한 지식인은 부르주아지로부터 받는 혜택 때문에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를 지지하지 않고 보편성을 추구하기 힘든 모순적 상황에 존재한다. 여기서 모순을 극복하지 못한 지식인은 결국 “자본주의체제 안에 머물면서 급격한 변혁을 피하되 자본주의의 모순과 결함을 점진적으로 개량하려는 태도를 지닌 개량주의자”가 된다. 하지만 진정한 지식인은 스스로 피억압자임을 인식하고 자신의 모순을 해결하고자 실천적인 지식을 탐구하는 보편주의자가 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사르트르가 말하는 지식인이다. “자신과 무관한 남의 일에 쓸데없이 참여하는 사람”, 진정한 지식인의 역할은 자신이 지배계급에게 선택받은 프티 부르주아이자 피억압자임을 인지하고, 모든 사람이 자유롭고 평등한 사회의 보편성을 가능해지도록 실천하는 것이다.
저자가 말하는 지식인의 정의가 와 닿는가? 21세기에 『지식인을 위한 변명』이 전하고자 하는 바는 거대 자본주의의 지휘 아래 펼쳐지는 소외와 착취, 환경오염, 불평등의 상황 속에서 자신의 모순을 파악하고, 모순의 해결을 위해 보편화 운동을 유기적으로 실천하라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 지식인들은 자본주의의 현실에서 “돈”을 위해 자신이 추구하는 것들을 기꺼이 포기한다. 뚜렷한 목적 없이 사회가 정해놓은 시스템을 안전하게 따라가는데 급급한 신자유주의 시대에서 우리가 살아남기 위해 보편성을 포기하는 것은 통상적인 일이다. 하지만, 책을 통해 독자 스스로 지식인인지, 혹은 지식인이 되고 싶은지 사유해본다면 앞으로 마냥 주어진 것을 따르는 사람이 되기 어려울 것이다. 이 책을 집어 든 당신은 주어진 시스템에 불합리함을 느끼며, 자신의 해방을 위해 “만인을 위한 인간의 미래”로 나아가는 것을 조금이라도 꿈꾸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지식인의 변명』을 통해 독자는 시대를 통용하는 지식인의 역할을 알고, 스스로 지식인인지 점검해보며 사회와 자신의 모순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이 사회에 어떤 존재로 위치해 있는지, 혹은 사회가 나를 어떻게 존재시켰는지 사유해봄으로써 자기성찰과 사회 성찰의 계기를 마련하는 이 책은 끝에 우리를 보편적인 지식인으로 만들어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