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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시가 노래로 읽기

고전시가 노래로 읽기 1

김인겸의 일동장유가(日東壯遊歌)에 나타난 위트(wit)와 그로테스트 리얼리즘

그로데스크란
grotesque(프랑스어)서양 장식모양의 일종.  '그로트'에서 유래된 말로
괴기한 것, 극도로 부자연한 것, 흉측하고 우스꽝스러운 것 등을 형용하는 말.
 

김인겸의 일동장유가에서 리얼리즘이라 이름을 붙인 이유는 폭풍에 전복된  일행을 태운 함선의 잔해를 너무나 담담하게 서술하는 단락 때문이다.
ㅡㅡㅡㅡ
슬프다. 우리의 가는 길이 어디란 말인가?
함께 떠난 다섯 척의 배는 간 곳을 모르겠도다.
사방을 두루 살펴보니 이따금 물결 속에
부채만한 작은 돛이 들락날락하는구나.

 

배 안을 돌아보니 저마다 배멀미를 하여
똥물을 다 토하고 까무라쳐서 죽게 앓네.
다행하도다. 종사상은 태연히 앉았구나.

ㅡㅡㅡㅡ
참혹한 현장과 일행의 죽음 앞에  딱 3글자 "슬프다."나 선실에 배멀미하는 일행 묘사는 불편하기까지 하다.

 그로테스크 리얼리즘이란 시적화자가 시적 상황 묘사를 할 때 최대한 대상과의 감정 이입을 피하고 거리를 두고 표현 기교다.
기형도의 시 '엄마 걱정"에서 열무 30단 메고 장에간  엄마를 기다리는 유년의 나는 "배추잎같은 엄마 발자국 소리 안 들리네."하는 표현으로 배고프고 춥고 무서운 방안에 웅크리고 엄마를 기다린다고 노래한다.

  

생활 밀착형 기행가사 일동장유가 랩과 포크 송의 경계를 넘은 재미를 책임지다

노래는 재미져야 한다.  코믹함을 더해야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나고, 내가 웃는 게 웃는 게 아닌 비극의 극대화가 가능하다.
공주시 무릉동이 고향인 김인겸(1707~1772)은 어린 시절 부친을 잃고 어렵게 살다 47세에 진사에 급제했으며, 57세였던 1763년(영조 39) 8월부터 이듬해 7월까지 11개월간 통신사의 수행원이 돼 일본을 다녀왔다.
그가 지은 기행가사는 총 4책으로 8천여 구나 되는 장편 기행 가사이며, 조선말 외국 기행가사로서 홍순학의 <연행가>와 쌍벽을 이루고 있으며, 기행가사의 백미에 속한다.
 정확한 노정(路程)과 일시를 적고, 날씨, 자연환경, 일어난 사건, 작자의 느낌 등을 과장 없이 묘사했을 뿐 아니라, 도처에 날카로운 비판과 유머가 곁들여 있어 읽는 재미가 뛰어나다.
가사의 형식은 3·4 또는 4·4조의 연속체, 8·8조의 연속체 등으로 되어 있어 자유롭게 작가들이 만들어 가사를 통해 작가의 희로애락을 한눈에 표현한다. 시행(詩行)의 규칙적인 배열, 후렴구의 반복적인 사용 등은 근대적인 자유시에 가까운 고전시가 형식 중에 난데없는 가창 형식이 가사다.
 말하고 싶은데 한시처럼 압운을 맞추거나   3장 6구 45자 내외의 글자수로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모두 담아야 하는 시조의 단점을 보완해서 생겨난 게 가사다. 하고 싶은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평시조 1수를 무한정 늘린 가사라는 노래 양식.
 김인겸의 일동장유가의 가창 형식리 가사인 이유는 11개월간의 조선통신사로서의 일본 여정이 할말도 많고 전할 내용도 많았기 때문.
 이런 맥락에서 보면 ‘일동장유가’는 가사라는 노래 형식과 판소리의 아니리와 같은 사설이 섞인 엔틱 스타일의 랩(lap)처럼 읽힌다.
 정철의 관동 별곡이 부루기 위한 시가 형식 중 제법 길다고 하지만 일동장유가는 8천여 구니까 1행이 2구로 모두 4000행이 넘는 노래다.

이 노래를 처음부터 전부 부를까? 그건 아니라고 본다. 춘향가 ‘어사도 옥에 갇힌 춘향이 면회간 대목’이런 식으로 상황별로 나눠 불렀으리라.  
부산항에서 출발한 배가 폭풍우를 만나 이름 그대로 풍전등화의 상황을 묘사하는 구절은 이 “노래의 압권이다.
선실의 요강과 타구가 자빠지고 엎어지고 상하 좌우에 있는 선실의 널빤지는 저마다 소리를 내는구나.”
학생들에게 고전시가를 가르치며, 요강, 타구가 등장하는 양반 시가는 아마도 이 작품이 처음인 듯  싶다.

 

거센 바람에 돛을 달고 여섯 척의 배가 함께 떠날 때,
악기 연주하는 소리가 산과 바다를 진동하니
물 속의 고기들이 마땅히 놀람직하도다.
부산항을 얼른 떠나 오륙도 섬을 뒤로하고
고국을 돌아보니 밤빛이 아득하여
아무 것도 아니 보이고, 바닷가에 있는 군영 각 항구의
불빛 두어 점이 구름 밖에서 보일 듯 말 듯하다.

 

선실에 누워서 내 신세를 생각하니
가뜩이나 마음이 어지러운데 큰 바람이 일어나서,
태산 같은 성난 물결이 천지에 자욱하니,
만 석을 실을 만한 큰 배가 마치 나뭇잎이 나부끼듯
하늘에 올랐다가 땅 밑으로 떨어지니,
열두 발이나 되는 쌍돗대는 종이로 만든 옷처럼(나뭇가지처럼) 굽어 있고
쉰 두 폭으로 엮어 만든 돛은 반달처럼 배가 불렀네.
큰 우렛소리와 작은 벼락은 등 뒤에서 떨어지는 것 같고,
성난 고래와 용이 물 속에서 희롱하는 듯하네.
선실의 요강과 타구가 자빠지고 엎어지고
상하 좌우에 있는 선실의 널빤지는 저마다 소리를 내는구나.

 

이윽고 해가 돋거늘 굉장한 구경을 하여 보세.
일어나 선실 문을 열고 문설주를 잡고 서서,
사면을 바라보니 아아! 굉장하구나,
인생 천지간에 이런 구경이 또 있을까?
넓고 넓은 우주 속에 다만 큰 물결뿐이로세.
등 뒤로 돌아보니 동래의 산이 눈썹만큼이나 작게 보이고
동남쪽을 돌아보니 바다가 끝이 없네.
위 아래 푸른 빛이 하늘 밖에 닿아 있다.
슬프다. 우리의 가는 길이 어디란 말인가?
함께 떠난 다섯 척의 배는 간 곳을 모르겠도다.
사방을 두루 살펴보니 이따금 물결 속에
부채만한 작은 돛이 들락날락하는구나.

“만 석을 실을 만한 큰 배가 마치 나뭇잎이 나부끼듯
하늘에 올랐다가 땅 밑으로 떨어지니,
열두 발이나 되는 쌍돗대는 종이로 만든 옷처럼(나뭇가지처럼) 굽어 있고
쉰 두 폭으로 엮어 만든 돛은 반달처럼 배가 불렀네.
큰 우렛소리와 작은 벼락은 등 뒤에서 떨어지는 것 같고,
성난 고래와 용이 물 속에서 희롱하는 듯하네. ”

                                -김인겸의 ‘일동장유가’ 서사-

풍랑에 흔들리는 상황을 비유적으로 잘 표현한 이 부분은 실제 배 안에 앉은 듯.
심지어 속이 울렁거리는 거 같았다.
마치 관찰 예능을 보는 거 같다.
노래라고 하기엔 너무나 긴 8000여 구의 장편 가사 일동장유가는 속사포처럼 퍼붓기도 하고 호흡을 가다듬고 차분하게 흐르기도 하는 리듬이 글밥에 녹아 있다.

고전시가 노래로 읽기 2
김인겸의 사행가사 <일동장유가>
엉뚱하기도 하고 허세도 느껴지는 집안이 가난해서 과거 시험으로 관직를 얻은 나이가 이미 40살이 넘었는데, 마치 자신이 벼슬살이에 뜻이 없었던 듯이 너스레를 떨고 있다.

일생을 살아감에 성품이 어설퍼서 입신 출세에는 뜻이 없네.
진사 정도의 청렴하다는 명망으로 만족하는데 높은 벼슬은 해서 무엇하겠는가?
과거 공부에 필요한 도구를 모두 없애 버리고 자연을 찾아 놀러 다니는 옷차림으로
전국을 두루 돌아다니며 명산대천을 다 본 후에,
음풍농월하며 금강 유역에서 은거하고 지냈는데,
서재에서 나와 세상 소식을 들으니
일본의 통치자 토쿠가와 이에시게가 죽고 우리 나라에 친선 사절단을 청한다네.

김인겸은 자신을 벼슬에 나아가 공명을 날리는데 뜻이 없어 강호에서 한가롭게 군자의 덕를 쌓다가 하는 수 없이 정사 조엄의 계미년 통신사 일행으로 나섰다고 쓰고 있다. 아마도 글쓰는 머리는 뛰어난데, 시험 울렁증이 있었거나 그때나 지금이나 책값 비싸고 과외 받아야 과거 급제를 하는 풍조가 있는데, 타고난 흙수저라 시험 문턱 넘기가 힘겨웠던지, 암튼 “성품이 어설프거나 입신 출세에 뜻이 없어서” 벼슬을 늦게 받은 건 아닌 듯.

고전 문학에서 운문을 서정시가와 서사시가로 나누는데, 이 기행가사는 서사보다는 서정이 더 맛깔나게 쓰여져 있다.
떠났다가 돌아오는 귀로형 기행가사는 주로 견문과 여정이 주 포인트다. 그런데 이 시가는 조선통신사라는 공적 여행에서 다루면 안되는 정황과 다분히 주관적이고 감정적이 김인겸 자신의 정서를 다루고 있다.

”이윽고 해가 돋거늘 굉장한 구경을 하여 보세.
일어나 선실 문을 열고 문설주를 잡고 서서,
사면을 바라보니 아아! 굉장하구나,
----중략------
함께 떠난 다섯 척의 배는 간 곳을 모르겠도다.
사방을 두루 살펴보니 이따금 물결 속에
부채만한 작은 돛이 들락날락하는구나.“

지난 밤 풍랑에 5척의 배과 전복된 처참한 풍경을 이리도 심플하고 격조있게 표현하다니!
해돋이의 장관과 언제 폭풍우가 쳤는가 싶게 잔잔한 바다 위에 산산조각으로 흩어진 나머지 함선들의 흔적을 ”이따금 물결 속에 부채만한 작은 돛이 들락날락하는구나.“라고 노래한 김인겸의 표현은 진짜 ”so cool!.“ 이다.

 

거센 바람에 돛을 달고 여섯 척의 배가 함께 떠날 때,
악기 연주하는 소리가 산과 바다를 진동하니
물 속의 고기들이 마땅히 놀람직하도다.
부산항을 얼른 떠나 오륙도 섬을 뒤로하고
고국을 돌아보니 밤빛이 아득하여
아무 것도 아니 보이고, 바닷가에 있는 군영 각 항구의
불빛 두어 점이 구름 밖에서 보일 듯 말 듯하다.

 

선실에 누워서 내 신세를 생각하니
가뜩이나 마음이 어지러운데 큰 바람이 일어나서,
태산 같은 성난 물결이 천지에 자욱하니,
만 석을 실을 만한 큰 배가 마치 나뭇잎이 나부끼듯
하늘에 올랐다가 땅 밑으로 떨어지니,
열두 발이나 되는 쌍돗대는 종이로 만든 옷처럼(나뭇가지처럼) 굽어 있고
쉰 두 폭으로 엮어 만든 돛은 반달처럼 배가 불렀네.
큰 우렛소리와 작은 벼락은 등 뒤에서 떨어지는 것 같고,
성난 고래와 용이 물 속에서 희롱하는 듯하네.
선실의 요강과 타구가 자빠지고 엎어지고
상하 좌우에 있는 선실의 널빤지는 저마다 소리를 내는구나.

 

이윽고 해가 돋거늘 굉장한 구경을 하여 보세.
일어나 선실 문을 열고 문설주를 잡고 서서,
사면을 바라보니 아아! 굉장하구나,
인생 천지간에 이런 구경이 또 있을까?
넓고 넓은 우주 속에 다만 큰 물결뿐이로세.
등 뒤로 돌아보니 동래의 산이 눈썹만큼이나 작게 보이고
동남쪽을 돌아보니 바다가 끝이 없네.
위 아래 푸른 빛이 하늘 밖에 닿아 있다.
슬프다. 우리의 가는 길이 어디란 말인가?
함께 떠난 다섯 척의 배는 간 곳을 모르겠도다.
사방을 두루 살펴보니 이따금 물결 속에
부채만한 작은 돛이 들락날락하는구나.

 

배 안을 돌아보니 저마다 배멀미를 하여
똥물을 다 토하고 까무라쳐서 죽게 앓네.
다행하도다. 종사상은 태연히 앉았구나.
선실에 도로 들어와 눈 감고 누웠더니
대마도가 가깝다고 사공이 말하거늘
다시 일어나 나와 보니 십 리는 남았구나.

 

- 일동장유가(日東壯遊歌)-김인겸-

 

 일동장유가가 조선 후기 시가 중에 대중적인 음악 코드로 사랑받았다면 그와 비슷한 리얼리티 생활시가로 현대에는 장기하의 ‘싸구려 커피를 마신다’라는 노래가 있다.
처음 이 노래를 들으며, “이 게 무슨 노래야.”하는 생각이 들었다.   
 
 대중가요 중에도 장르 파괴, 생활 밀착형 시가가 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장기하와 얼굴들’이라란 이름의 인디 밴드의 대표작 ‘싸구려 커피를 마신다’가 있다. 노래인 듯, 랩인 듯, 장난인 듯, 포스트 모던 팝인 듯.
 한국 최초의 랩 음악으로 알려진 홍서범의 '김삿갓'의 경우 다소 뜬금없는 노래 제목과 가사 때문에 간과하기 쉽지만, 엄밀하게 보자면 '한국 최초의 힙합 음악'이라 부를 수 있다.

김삿갓 김삿갓 김김 삿갓삿갓 김김 삿갓삿갓
김삿갓 김삿갓 김삿갓 김삿갓 삿갓삿갓 삿갓삿갓

1807년 개화기에 태어나 어렸을때부터
글공부를 좋아하여 10살 전후에 사서 삼경독파
하고 이십세 전에 장원급제 했네
안동 김씨에 본명은 김병연 어머니를 모시고
아들 둘에 처 하나 중국의 이태백 일본의
바쇼 그렇다면 보여주자 대한민국 김삿갓

백일장 과거에서 조상을 욕한죄로
하늘이 부끄러워 삿갓을 쓰고 이름도 버리고
가정도 버리고 욕심도 버리고 양반 또한 버렸네
그후로 한평생 삿갓을 쓰고 삼천리 방방
떠돌아 다니니 사람들은 그를 보고
김삿갓 김 삿갓 삿갓이라 하네
ㅡㅡㅡ중략 ㅡㅡ
진정한 의미의 퓨전 가사가 난 홍서범의 이 노래인 거 같다.

특히 "삿갓쓰고/ 죽장짚어/ 비람 부는대로/
3움보의 민요 리듬과
"백일장/ 과거에서/ 조상을/ 욕한죄로/"

이런 전형적인 3글자, 4글자의 가사체 운율이 그의 노래에 녹아 있다.
우리 민족들이 즐기는 그루브(griive)는  변형과 변조다.
'일동장유가'를 작곡을 붙여 부르라 하면 나는 메인 장르는 컨추리송과
포크 그리고 힙합 랩을 섞어 부르고 싶다.

  김인겸의 ‘일동장유가’는 노래다.

그런데 노래로만 부르기엔 장형가사의 운율을 3글자 4글자를 연속적으로 반복한 리듬으로 부른다는 건, 노래 특성상 지루하다.
밀고 당기고 끊고, 연결하는 스토리텔링과 문장의 호흡을 통해 포그 송에 가까운 가창과 아니리를 섞은 퓨전 랩의 가창 형식을 섞어 부른다면, 현대적으로도 변형되어 불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해 본다.

 김인겸의 일동장유가를 읽다 보면, 폼나게 조선통신사로 나랏일 하러 다녀온 일본 시찰 보고서가 아니고 노래로 지어진 것은 말밥과 글밥을 섞어 널리 퍼뜨리고 싶은 공명을 초월한 싱어송라이터 김인겸의 고집이 느껴진다.
오늘날에도 김인겸과 같은 인디 밴드가 있으니 바로 ‘장기하와 얼굴들’이 있다. 그의 대표작 ‘싸구려 커피를 마신다’는 은근 중독성 있는 리듬과 라임으로 스토리텔링을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싸구려 커피를 마신다
미지근해 적잖이 속이 쓰려온다
눅눅한 비닐장판에 발바닥이
쩍 달라 붙었다 떨어진다
이제는 아무렇지 않어
바퀴벌레 한마리쯤 쓱~ 지나가도

비가 내리면 처마 밑에서 쭈그리고 앉아서
멍하니 그냥 가만히 보다보면은
이거는 뭔가 아니다 싶어
비가 그쳐도 희끄므레죽죽한
저게 하늘이라고 하기에는 문가 너무 낮게
머리카락에 거의 닿게 조그만 뛰어도 정수리를
쿵!하고 찢을거 같은데
벽장속 제습제는 벌써 꽉차 있으나마나
모기 때려잡다 번진 피가 묻은 거울을 볼때마다
어우! 약간 놀라
제 멋대로 구부러진 칫솔 같다 이빨을 닦다 보면은
잇몸에 피가 나게 닦아도 당췌 치석은 빠져 나올줄을 몰라
언제 땃는지도 모르는 미지근한 콜라가 담긴
캔을 가져다 한모금 아뿔사 담배 꽁초가
이제는 장판이 난지 내가 장판인지도 몰라
해가 뜨기도 전에 지는 이런 상황은 뭔가

싸구려 커피를 마신다
미지근해 적잖이 속이 쓰려온다
눅눅한 비닐 장판에 발바닥이 쩍 하고
달라붙었다가 떨어진다

 -장기하와 얼굴들  ‘싸구려 커피를 마신다’-
 
 눅눅한 비닐 장판 위를 걷는 꼬질꼬질한 청춘의 감성이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긴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스스로 “88만원 세대를 대변하기 위해 음악한 건 아니”라 하고, “재미 외에 밴드가 그 이상의 무슨 덕목을 갖춰야 하는지” 궁금해 하는 이 ‘재미지상주의자’의 가벼운 태도는 그의 음악에 공감하진 않아도 즐길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두었고 삶은 곧 스토리텔링이라는 생각이 들게 했다. 이 노래를 듣다 보면 어느 틈에 발바닥에 쩍쩍 달라붙는 비닐 장판의 끈쩍임이 소름끼치게 전해진다.
송대관의 히트 곡 ‘쨍하고 해 뜰 날 돌아온단다“가 장기하의 노래의 청춘들에게 들려주는 정오의 희망곡인 거처럼.

“꿈을 안고 왔단다  내가 왔단다 슬픔도 괴로움도 모두모두 비켜라 안되는 일없단다 노력하면은 쩅하고 해뜰날 돌아온단다 쨍하고 해뜰날 돌아온단다
뛰고 뛰고 뛰는 몸이라 괴로웁지만 힘겨운 나의 인생 구름 걷히고 산뜻하게 만든날 돌아온단다 쩅하고 해뜰날 돌아온단다.“

  -송대관 ‘해뜰 날’-

 나는 스토리텔링의 완성을 노래 부르기라고 생각한다. 본 것, 들은 것, 느낀 것을 설명, 묘사, 인용, 감상, 그리고 이동 경로에서 본 것과 들은 것에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전하는 감상, 이 모든 요소가 갖춰진 기행가사는 이야기를 노래로 풀어내는 서정시가의 백미라 할 수 있다.
특히 김인겸이 조선통신사로 11개월 동안의 기행을 노래한 ‘일동장유가’는 연행가의 최고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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