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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에 봄이 들어 더 빠쁜 황희 정승



                                                                                   이미경






 조선 전기 양반 시가 문학의 키워드는 ‘충신연주지사’ 혹은 ‘연군지정’이다. 그러니깐 “앉으나 서나 임금님 생각 우우우”. 이런 메시지를 깔고, 자연도 노래하고 성리학적 세계관도 강조하는 강호한정가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날이 좋아서 날이 좋지 않아서 모든 순간이 임금님과 함께한 순간이 모두 좋았을까? 이런 물음이 떠오르는 조선의 명재상이 있으니 그가 바로 황희(黃喜 1363~1452) 정승이다. 

쉬고 싶어도 절대 쉴 수 없었던 늙은 신하 황희. 그는 세종임금과 신하들간의 갈등을 조정하고 타협점을 찾아 주는 믿음직한 집사(매니저급)였다. 황의 정승이 87세로 치사(致仕·나이가 많아 벼슬을 사양하고 물러남)할 때까지 무려 10여 차레가 넘는 사직서를 제출하나 세종은 윤허하지 않았다고 한다. 87세가 넘은 고령의 나이로 향촌으로 귀향한 그가 시조를 지으며, 강호에 봄이 들어 한가하옴이 역군은이샸다 라고 노래하고 싶어 하지않았으리라.

실록 평가를 보면, 세종 13년 9월 10일, 황희가 관직에서 물러나기를 청했으나 윤허하지 않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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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에 봄이 드니 이몸이 일이 하다.

나는 그물 깁고 아이는 밭을 가니

뒷뫼에 엄 기는 약은 언제 캐려 하나니.”

-황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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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자연과 함께 숨쉬는 농촌 생활의 목가적인 모습의 한 조각을 그리고 있다.

평소에 놀아 보지 못한 황희 정승은 강호에 봄이 드니, 부지런히 일을 찾아 한다.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 늙어지면 못 노나니...

80세가 넘어 명예퇴직을 하고 고향으로 귀환한 황희는 고향 강촌 풍경이 봄빛이 완연하니 이것 저것 해야 할 일이 늘어났다고 투덜거리신다. 

 자신은 뚫어진 그물을 기우고, 아이는 밭을 갈며 부지런을 떨어도, 턱도 없이 일손이 부족한 상황이라며, 이러다가 뒷산에 움이 돋아 커가는 약초를 빨리 캐야 한다 하며 재촉을 하는 전원사시가다.

고전시가에는 원래 자연이랑 단어가 없다. 옛날에는 '사랑'이란 단어가 몸을 나누면 '얼우다. 얼다' 라고 쓰고 마음으로 아끼거나 충성스런 신하의 임금을 향한 마음을 '괴다'라고 하듯이.

 그래서 '자연'이란 단어 대신  ‘강호(강과 호수), 청산(푸른산), 청풍명월(맑은 바람과 밝은 달), 연하일휘(안개와 노을과 빛나는 햇살) 등과 같은 자연 속의 일부를 선택해 쓰면 으레 현재 우리가 아는 자연이란 단어와 같은 맥락으로 이해했다.

‘강호에 봄이 드니’란 구절에서 ‘강호’는 자연의 대유법이다. 김소월의 시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에서 ‘강변’이 좋은 곳, 즉 해변, 강변, 숲속, 전원, 등등을 다 말할 수 없으니 콕 짚어 ‘강변’이라 쓴 거처럼 고전시가에 가장 많이 쓰인 자연을 대표하는 키워드는 ‘강호(江湖)’다.

즉 강호는 속세와 단절되어 은자(隱者)로서의 삶을 누리는 공간으로 형상화되기도 하고, 속세와 단절되지 않은 연장선상에서 만족스러운 삶을 향유하는 공간으로 형상화되기도 한다. 그러나 작가가 벼슬에서 은퇴한 사대부이든 정치 흐름에서 도태되어 자연으로 돌아온 사대부이든 향촌에서 농민과 함께하던 사족(士族)이든 자연을 긍정적이고 이상적인 공간으로 그렸다는 점에서는 공통적이다. 

노동하지 않고 멋지게 사는 걸 목표로 하는 조선시대 양반들은 사화나, 당쟁와 같은 격동의 공간을 빗겨나 속세를 벗어난 자연으로 달아나고자 한다. 

양반 시가의 주제가 자연친화적인 강호가도나 안빈낙도, 안분지족인 것은 벼슬에서 물러난 혹은 과거 시험에 낙방해 반쪽짜리 양반으로 살아가는 향촌 양반들에겐 위로가 되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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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목정정(伐木丁丁)*이랬더니 아람도리 큰 솔이 베혀짐즉도 하이 골이 울어 멩아리 소리 쩌르렁 돌아옴즉도 하이 다람 쥐도 좇지 않고 묏새도 울지 않어 깊은 산 고요가 차라리 뼈를 저리우는데 눈과 밤이 조히보담 희고녀! 달도 보름을 기달려 흰 뜻은 한밤 이 골을 걸음이랸다? 웃절 중이 여섯 판에 여섯 번 지고 웃고 올라간 뒤 조찰히 늙은 사나이의 남긴 내음새를 줏는다? 시름은 바람도 일지 않는 고요에 심히 흔들리우노니 오오 견디랸다 차고 올연(然)히* 슬픔도 꿈도 없이 장수산 속 겨울 한밤내 "

― 정지용 '장수산' ({문장} 2호, 193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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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모더니즘 대표 시인 정지용 역시 '장수산1'이나 '인동초', '춘설'이란 시에서 몸은 칩거의 공간인 서재에 두고, 영혼은 장수산 깊은 계곡 암자에 머물게 한다. 

 떠나지 않았으면서 떠난 척하기를 통해 자연친화와 몰아일체를 꿈꾸던 고전 시가 작가들의 창작 행위는 마치 퇴근 후 돌아온 가장이 TV 리모컨을 독점하고 이리 저리 채널을 바꿔 가며 방송 프로그램과의 물아일체와 방송친화를 지향하는 거와 유사하다.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의 동굴의 우화 속의 동굴 시민이 바로 퇴근 후 TV 시청이란 동굴에 앉아 우두커니 '멍을 때리는 리모컨 일심동체 가장들이다.

정지용은 '장수산'이란 시에서 능청맞게도 자신이 깊은 산속에 칩거하고 자연친화적 삶을 산다고 거짓말을 한다. 그가 이 시를 통해 전하는 것은 무욕과 인내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믿음으로 일제 말 무단통치기의 핍박을 견디는 정신 승리법을 시를 쓰며 이루는 것이다.

그가 이르고자 하는 경지는  장기를 무지하게 잘 두는 윗절 암자 노승이 무료함을 달래는 '장기두기'에서 무려'여섯 판에 여섯 번 지고도 웃고 올라가는 조찰히 늙은 사내의 뒷모습에서 우러나는 '아우라'다. 

'무욕'과 '초연'이라는 2개의 키워드가  정지용이 현재의 시련을 견디는 '바로미터(barometer)다. 

시인은  일제 말 운신의 폭이 좁아지지 새로운 시 형식을 추구한다. 즉 우리의 고전을 빌어 와 본인이 추구하는 예술세계를 그리고자 하였다. 고전 중에 산수시를 미학적 원천으로 삼았는데 이것은 내용에 비해 형식의 제약을 덜 받기 때문이었다. 

  친일도 배일도 하지 못한 상황에 그는 불안정한 현실 극복하고자 우리 국토를 여행하면서 현실의 시공간을 뛰어넘어 현실도 과거도 아닌 초월적 시공간을 취한다. 결국 지용은 친일과 변절을 강요당하던 일제의 압력 속에서 자신을 지키기 위해 시간과 공간을 무화시켜 '산수시'란 형식으로 강호한정을 한 것이다.

시간과 융합된 공간은 ‘사실 그대로’를 넘어 ‘구성된 사실’로서 형상화 된다. 이러한 산수시의 세계는 정지용에게는 유토피아이다. 그러나 유토피아는 현실 어느 곳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지용은 산수자연에 파묻혀 시간과 공간을 무화시킴으로써 영원성을 추구하고자 했다.

그러면 고전시가의 작자인 양반들은 왜 산수시를 쓰며, 자연친화적 삶의 환타지를 그린 것일까?

 그들 역시 삶이 녹록치 않아서 자연친화를 꿈꾸고,   자연과 하나되는 물아일체 소망한 것이리라.

솔직히 말해 양반은 과거 시험 공부, 급제 후 벼슬살이, 은퇴 후, 혹은 강퇴 후 혼자서 가난하게 놀기. 이것들 외엔 선택할 경우의 수가 없었다.

성리학적 세계관을 온몸에 두르고 사는 것과 풍류를 즐기기는 것이 그들의 덕목인 것이다.

양반은 신분을 칭하는 이름이 아니고 관직에 있음을 밝히는 용어다.

유교경전을 공부해 벼슬을 하면 '문반'과 무술 실기와 병법를 필기 시험으로 치러 벼슬을 하는 무반.

이렇게 둘을 합쳐 양반이라 부른다. 벼슬에 나아가 임금님께 충성하거나, 초야에 묻혀 후진 양성을 하거나 가짜 어부 놀이를 하며 혼자 잘 노는 척하면서 언제고 다시 임금님의 사람으로 쓰임 받을 날을 위해, 놀면서도 그들은 임금님 덕분이라고 치하한다.

노는 것도 용기가 있어야 하고, 노자 돈이 두둑해야 하는데, 떠나지 못하는 양반 작가들은 떠나지 않고도 떠난 척하기를 지인들과의 술자리에서 시조창으로 완성한다

  그래서 그런지 양반 시가 텍스트에 단골로 등장하는 단골 동식물이 조류는 갈매기(백구), 접동새, 두견새, 까마귀, 백로, 참새, 제비, 백송골이 있고, 식물은 소나무, 대나무, 매화, 난초, 철쭉, 국화, 패랭이꽃들이 있다. 지금 소개한 동식물은 고등학교 문학 텍스트에 자주 등장하는 것들이다.

어쩜 고전시가에 등장하는 정철의 사미인곡, 속미인곡이나 양반시조의 제재인 서경 공간은 작가들의 실제적 체험 공간이 아닐 수도 있다. 

윤선도의 유배지인 절해 고도 보길도나 정약용의 탐진촌요에 나오는 강진, 퇴계 이황의 도산 서원처럼 실제 거주했던 공간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 아닌 다음에야, 아마도 대다수의 강호한정가(자연 속에서 한가롭게 누리는 정서를 그린 노래)는 방구석에서 쓰여진 노래가 아닐까 싶다. 

예나 지금이나, 중. 장년 세대들의 은퇴 후 소망은 전원 생활이다. 양반 시가 작품들이 대개 자연의 순환의 질서 속에서 자연을 심미의 대상, 소박한 삶의 공간, 노동의 삶이 드러나는 생활 공간 등으로 인지하고 그 속에 자신의 생활을 합치시키고자 하는 양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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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江湖)에 가을이 드니 고기마다 살져 잇다

소정(小艇)에 그물 실어 흘리 띄워 던져 두고

이 몸이 소일(消日)해옴도 역군은(亦君恩)이샷다“

-맹사성,「강호사시가(江湖四時歌)」<추(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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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사시가 계열 연시조로 맹사성이 벼슬에서 강호 자연에서 계절별로 느끼는 흥취와 여유로움을 드러내고 있는데, 여기에서의 자연은 유교적 인식을 바탕으로 한 이상적인 공간으로 그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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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江湖)에 봄이 드니 미친 흥이 절로 난다

탁료계변에 금린어 안주로다

이 몸이 한가하옴도 역군은(亦君恩)이샷다 “

- 맹사성 '강호사시가' 중 '춘사(春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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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사성은 고려 말, 조선 초의 재상으로 호는 고불(古弗)이다. 27세인 고려 우왕 12년(1386)에 과거에 들어 벼슬을 시작하여 조선조에 들어서도 여러 관직을 두루 거쳤고 세종대에 좌의정에까지 올랐다. 

두 왕조를 섬겼지만 정치적인 시련이나 갈등은 별로 없었던 듯하다. 그가 지은 시조 「강호사시가」(江湖四時歌)는 “강호에 겨울이 드니 눈 깊이 자히 남다 / 삿갓 빗기쓰고 누역으로 옷을 삼아 / 이 몸이 춥지 아니함도 역군은(亦君恩)이샷”고 하여 임금의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만이 가득하다. 

벼슬 자리에 머물러도 임금에게 충성을 다하고, 벼슬 자리를 떠나 있어도 임금에게 매사에 감사하는 메시지를 전하는 양반 시조.

그들의 애뜻함은 문인화에 자주 등장하는 바슷비슷한 수묵화 속에 짜안하게 그려진다.

멀찍이 선 절벽 끝에 척추를 뒤틀며 늘어진 소나무, 나뭇잎처럼 나룻배에 장대을 물속에 내리고 배를 조정하는 작은 배 위에 갈대풀로 였은 썬캡을 쓴 늙은 어부의 모습이 아주우 작게 그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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