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쑥대머리 잡가와 화장

춘향은 사랑을 잃고 절규한다. 나 가거든

작자미상  쑥대머리 조선시대 문인 신흠이 지은 시조에 “노래 만든 사람은 시름이 많아 말로다 다 못해서  노래로 부르는가 보다”란 구절이 있다. 조선시대 문인 신흠이 지은 시조에 노래 만든  사람은 시름이 많아 말로다 다 못해서 노래로 부르는가 보다란 구절이 있다. 시는 악보 가 없이도 부를 수 있는 노래라면 노래하면 노래는 이야기를 품은 삶이다. 양반가사 작품의 소재가 충과 효를 두드러지게 하는 자연물이라면 서민들의 글감은 그 냥 삶이다. 일상 생활의 소소한 이야기를 자신만의 삶의 가락으로 엮어 흥이면 흥 한이 면 한 경계를 나누지 않고 부르고 즐겨왔다. 양반시가의 단골 소재는 지조와 절개를 상징하는 사군자나 강호한정가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갈매기, 두견새, 꾀꼬리는 자연친화를 증명하는 자연물이다. 일상의 공간을  노래할 때는 우물가나 빨래터 근처에 흔하게 볼 수 있는 살구나무, 앵두나무, 동백나무 가 노래의 소재가 된다. 강호한정가의 절정에 이르면 자신이 머무는 공간이 무릉도원이고 그럼즉 자기는 신선인  듯하다는 억지를 부린다. 이럴 때는 도화, 즉 복숭아꽃잎이 계곡물을 따라 흐르는 것을  근거로 삼는다. 강호한정가의 절정은 도화, 즉 복숭아꽃잎이 계곡물을 따라 흐르는 것 을 근거로 자신이 머무는 공간이 무릉도원이고 그럼즉 자기는 신선인 듯하다는 억지를  부린다. 강가의 갈대는 가을 풍경을, 비온 뒤 파릇하게 자란 풀은 여름 풍경을 드러낸다. 강 가의 갈대나 가을 풍경을 비온 뒤 파릇하게 자란 풀은 여름 풍경들 드러낸다. 그런데  나물류에 속하는 쑥이 등장하는 고전시가가 있다. 판소리 춘향가 옥중가의 한 대목 의 쑥이다. 신라시대 향가 에도 득오가 화랑 죽지랑을 그리며 죽어 서 다북쑥 우거진 마을에 잘 밤이 있으리라고 하는 구절이 있다. 그 쑥과 의  가 우리가 나물로 먹는 쑥이다. 이 쑥이 옛노래에서 어떤 개연성을 가지고 쓰이나 궁금해 찾아 봤더니 예사풀이 아니 었다.단군 신화에선 단군왕검의 어머니 웅녀가 100일 동안 쑥 한다발과 마늘 20개(아마도  20접)만 먹고 사람이 되니 영험한 풀이다, 원래 쑥은 가뭄에 허기를 달래는 구황작물이 라고 한다. 문학 작품에서 다북쑥은 봉애 혹은 봉초라고도 불린다. 여기서 봉이 무더기를 의미하 는 한자다. 주로 무덤 주변에 자라는 쑥을 다북쑥이라 한다. 다른 말로 다북쑥 우거진  마을을 버려두어 거칠고 쓸쓸한 마을 즉, ‘황촌 (荒村)’ 이라고도 부른다. 대개 역병이  돌아 페쇄되거나 들짐승이 출몰해 사람들이 떠난 마을엔 버려진 무덤 주위로 쑥 무더기 가 군집하는데 그런 무덤이 있는 마을을 다북쑥 우거진 마을이라고 한다. 저승 세계나 무덤의 비유되는 쑥더미가 춘향가의 란 제목과 연결하면 춘향 의 죽음을 복선으로 깔고 있다. 춘향은 옥중의 자신의 몰골을 “쑥대머리”가 되었다고  한탄한다. 여기서 쑥대를 한자어로 봉두라고 하고 흉측하게 엉클어진 머리를 봉두난발 이라 한다. 춘향이 옥중에서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절규하는 대목의 후렴에 반복적으로 붙는 “쑥대머리”가 판소리계 퓨전 노래에 여음인 셈이다. 직역하면 헝클어진 머리인 쑥대머리는, 자신을 떠난 소식없는 이몽룡에게 “죽을 날  받아 놓았다”고 외치는 원망의 노래다.   원망과 미움의 키워드로 읽기 는 춘향이 모진 매를 맞고 옥에 갇혀 있을 때 자신의 비참한 신세를  한탄하고 이 도령에 대한 그리움을 노래하는 와 춘향이 꿈속 에서 황릉묘에 가서 이비(二妃), 녹주(綠珠) 등을 만나 정절을 칭송 받는 로 짜여 있다. 에는 , , ,  등이 있는데, 창본에 따라 다르다.   중에 에는 죽음에 임박한 처절한 춘향의 모습을 닮은 귀신들이  등장한다. 형장 맞아 죽은 귀신, 태장 맞아 죽은 귀신, 난장 맞아 죽은 귀신, 횡사 즉 사 오사 죽은 귀신 등 온갖 귀신들을 빗대어 춘향의 몰골을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임방울 버전의 에도 “쑥대머리 구신형용 적막옥방으(의) 찬 자리여 (에) 생각난 것이 임뿐이라”라는 단락에 형편없이 망가진 춘향의 모습을 짐작케 해준 다. 원망의 키워드로 를 부른다면 이 노랫말에 주된 정서는 죽음을 각오한 사 랑일까? 아님 몽룡에 대한 그리움일까?  조선 시대 여류작가들 사이에 유행하던 장르가 있다. 규방의 여인들이 지었다 해서  ‘규원가’, 남자를 원망하는 노래라 해서 ‘원부가(怨婦歌)라 불리는 이 노래는 조선 중기 에 허난설헌이 지은 규방 가사의 제목이다.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규방에서 속절 없이 눈물과 한숨으로 늙어 가는 여인의 애처로운 정한(情恨)을 자연물에 빗대 남자를  대놓고 흉보는 노래다. 지렁이 무성한 쑥쑥대머리 귀신 형용 적막 옥방 찬 자리에 생각난 것이 임뿐이라 보고지고 보고지고 한양 낭군 보고지고 --중략--- 추우오동엽락시에 잎만 떨어져도 임의 생각 ---중략---- 내가 만일에 임을 못 보고 옥중 원혼이 되거드면  무덤 근처 있는 나무는 상사목이 될 것이요  무덤 앞에 있는 돌은 망부석이 될 것이니 생전사후 이 원한을 알아 줄 이가 뉘 있더란 - 김연수 창본 이 노랫말을 주된 정서는 신의없는 님에 대한 원망과 미움이다. 말을 이해하는 꽃과  같다고‘해어화(解語花)’불리는 기생 춘향이가 귀신같은 형상에 봉두난발한 머리라니, 서 방님은 한양 간 지 소식도 없고 죽을 날 받아 놓고 애타는 심정을 노래에 싣는다. 춘향의 신분이 기생이 아니라는 설이 있기도 하지만 판소리 에서는 춘향을 관청 소속  노비인 기생으로 설정하고 있으니. 춘향의 죄명은 관청 소속 노비의 암묵적인 몸보시인 수청을  대놓고 거부한 “괘씸죄”다. 수청기생은 관원의 수발을 드는 역할뿐 아니라 잠자리 수발까지  드는 것이 관례였다고 한다. 그런 춘향이 죽기를 각오하고 수청을 거부하니 명목상  ‘직무유기’고, 이면에 숨은 죄명은 ‘항명’이다. 그녀는 이 노래를 부르며 억울하고 창피했을  것이다. 과거 시험을 핑계로 자신을 버렸을 지도 모르는 이몽룡이 미치게 그리워하는 자신의  비루한 사랑이. 춘향은 사랑을 잃고 절규한다. 반복되는 후렴구 “쑥대머리”를 목이 터지라 부르며  조만간 죽어서 다북쑥 우거진 마을 무덤에 묻히게 된 안타까움도 노래에 담는다. 옥중에 춘향은 를 부르며 한양 낭군에게 자신의 처지를 전하고 싶은데 필 기구도 없으니 “손가락에 피를 내어 세세한 사연을 적어 보낼까”, 그도 아니면 “간장(여 기서는 억울하고 분해서 썩어 문들어져 가는 내장)썩은 눈물”로 기억이 까무룩한 “임의  얼굴을 떠올려 그려볼까나.”라고 노래한다. 는 제목이 지닌 죽음의 복선과  살아도 사는 게 아닌 옥중에 춘향의 처지가 더해 춘향의 유서와 같은 노래가 아닌가 싶 다.이 노래의 마지막 단락에서 춘향은 죽어서라도 내 사랑 도령님 곁에 머물겠다는 선 언한다. 지금 이대로 님 한번 못 보고 죽으면 무덤 곁에 돌은 망부석이 될 것이고 무덤  옆에 나무는 상사목이 될 터이니 제발 우리 낭군 얼굴 한번 보고 죽게 해 달라고 애원 한다. 보고지고 보고 싶은 이몽룡을 기다리다 돌이 되는 거야 그러려니 하는데, 연리지 나 무인 상사목이라니 애증이 엇갈린 춘향의 원부가  가락이 가슴을 후려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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